아이가 유전법칙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혀말기를 해보라고 엄마는 우성인지 열성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혀말기를 해보이며 엄마는 우성이야 라고 말하고 우쭐한 저를 보며 이건 이럴 일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그래서 우성과 열성이라는 단어 때문에 우성이 우월하다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그냥 나타나는 형질이 우성이라는 뜻이야 알지? 라는 말을 아이에게 했습니다. 인간은 유전자를 처음 발견하고 어떤 것에는 '좋은 유전자', 또 다른 것에는 '나쁜 유전자'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피부색에도 인종의 다름에도 말입니다. 과학이라는 이름아래 우생학이 생겼고 인종주의가 더 확대 되었죠. 그런데 이런 것이 유전자를 발견한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일까요 아니면 과학의 힘을 빌려 인간이 마음대로 정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지만 혀말기를 해보이며 나는 이런 동작이 되는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쏙 올라 오는 것은 왜일까요?인종차별은 과학과 이성이 아직 자리 잡지 못했던 미혹의 시대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성과 계몽의 시대에 이르러 과학은 인종차별을 없앤게 아니라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근거를 제공하며 인종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과학은 객관적이며 가치중립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 판단에 힘을 실어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학은 차별의 알리바이가 되어준다. <나쁜유전자 49쪽>과학의 힘에 기대어 다름을 틀림으로 구별해서 정치에 삶에 이용하며 살아 왔던 우리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과학의 힘을 삶에 적용하는 문제에서는 분석과 판단 그리고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대로 받아드리기 보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유전자는 실제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유전자가 행동의 기초가 된다는 말과 우리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는 말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나쁜유전자 340쪽>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에의해 완성된 존재여서 유전자의 계획대로 삶이 살아지는 것이라면 사실 살아갈 의미도 없지 않을까요. 우리는 점차 변모해가는 '과정으로서의 인간‘ 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요. 유전자가 나를 도와 줄 수도 내 삶을 방해하는 존재 일 수 도 있지만 우리는 내가 만들어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유전자여 너는 가끔 내 삶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만 있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