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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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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를 읽고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다. 하늘이 파랗고 흰 구름 떠있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는 이렇게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면서 기쁨이 절로 피어난다. 살아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시리도록 높고 푸른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싸하게 아파 온다. 이런 맑은 날에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어른들 돈 욕심에 맑고 밝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아파하며 죽어 갈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남부 도시에 큰비와 큰바람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신문에서는 이 사실을 며칠 동안 중요 사건으로 알렸다. 그런데 지금 지구에는 물을 못 먹어 죽는 아이들이 하루에 5천 명이 넘고 배고픔, 어른들이 벌인 전쟁, 질병으로 죽는 아이들까지 더하면 하루에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고 있어도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비행기 사고로 3백 명이 죽으면 그날 신문 머리 기사로 실리지만 5살 이하 아이들이 비행기 100대 분량으로 오늘도 죽고 어제도 죽었고 내일도 죽어 가는데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렇게 죽어 가는 아이들이 모두 가난한 사람들 자식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민중의 세계사'를 읽고 나서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잘못된 것은 다시 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갖기 위해, 자신들이 믿는 신을 남들에게 강제로 믿게 하기 위해, 명예를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 뿌리내린 욕망을 더 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삶을 살아왔다.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 머물러 산 것은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서로 다투는 삶을 살았다.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은 자연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았지만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삶을 살았다. 수 만년 동안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을 섬기고 서로 도우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살았다.
그런데 한 곳에 머물러 살면서 먹을거리를 모아 두게 되고 먹을거리를 모아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힘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끼리 뺏고 뺏기는 다툼이 일어났다. 돌을 가지고 산 사람들은 청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이길 수 없었고 청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철로 만든 무기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금 나라들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다 죽이는 무기를 서로 많이 갖기 위해 애쓴다. 이런 속에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 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에 지구 목숨이 짧아지고 있다. 지구는 지금껏 50억 년을 살았고 앞으로 50억 년 이상 더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지금처럼 지구를 못살게 한다면 그 목숨이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이 아프면 열이 나고 으슬으슬 춥듯이 지구도 열이 나면서 추워지는 빙하기가 다시 오려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지금껏 기계 문명을 만들며 살아 있는 것을 마구 죽이는 삶을 살았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땅과 물, 공기를 맑게 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 일을 앞에서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말없이 궂은일을 하는 노동자, 땅을 일구는 농사꾼들이 아닌가.
갈수록 세상은 배부른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들을 못살게 하고 있다. 사람 목숨뿐 아니라 지구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바로 올곧게 사는 사람들이다. 땀 흘려 일하는 착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 사람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민중의 세계사'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어둠이 걷고 따뜻한 아침 햇살이 내릴 때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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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 책갈피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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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중적 혁명정당 건설'이라는 무거워 보이는 정치 주제를 그토록 재미있고 명쾌하게 주장한 저자의 글쓰기에 반했을 것이다. 뒤이어 같은 저자의 <렘브란트와 혁명>(책갈피)까지 읽고 나면 좀 놀랍다. 딱딱한 인상의 마르크스주의자가 인간 사회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 준다.

이 책들을 쓴 사람은 영국 포츠머스 대학 예술사와 철학 교수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인 존 몰리뉴다. 한 마디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기쁘게도 그의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됐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는 존 몰리뉴가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Socialist Worker)에 연재한 칼럼들을 묶은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다.

이 책의 장점을 알고 싶으면 목차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있을까?"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다 똑같이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사회주의가 되면 민주주의는 없어지지 않을까?"

"무조건적 그러나 비판적 지지란 무엇일까?"

"어쨌든 세계 동시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사회주의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봤음직한 의문과 토론거리들을 다루고 있다.

가끔 보면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학자들은 일부러 구름 잡는 듯한 말을 하고 자기들끼리만 알아 듣는 언어를 사용한다. 상투적 통념에 지나지 않는 주장을 일부러 어려운 일어식 한자어로 치장하고, 단 몇 쪽의 문서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수십 쪽의 논문, 심지어 수백 쪽의 책으로 내놓곤 한다.

존 몰리뉴는 교수이지만 결코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주장이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재미있는 비유들이 많다. 예컨대,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과 질서"가 중립적이기는커녕,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

"법이 자본주의 사회의 소유 관계들을 반영하고 나아가 그것을 강화해 주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라. …… 만일 법관들이 한밤에 혼자 다니는 여자가 강간을 당해도 법이 보호해 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듯이, 대낮에 '롤스로이스' 같은 최고급차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는 백만장자들이 강도를 당한다 해도 그것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의 판결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새 세대를 위한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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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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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역사학자 A J P 테일러가 “혁명을 기록한 모든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은 이 유명한 책을 나는 최근에야 완독했다.

이 책의 최대 미덕 중 하나는 기자 특유의 생생한 묘사다. 존 리드는 혁명 러시아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와 그 주변 도시들, 혁명의 두 번째 격전지였던 모스크바까지 곳곳을 누비며 이 책을 썼다. 열흘 간의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라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레닌, 트로츠키 같은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참호의 병사들, 공장 노동자들, 비참한 처지의 농민들까지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또한 존 리드는 미국인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귀족, 반혁명 장군들의 노골적 속내에서부터 케렌스키,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같은 ‘온건’ 사회주의자들의 은밀한 고백까지 담아낸다.

쿠데타?

역사를 가르친다는 수많은 교수들은 1917년 10월 혁명이 “볼셰비키의 쿠데타였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부 좌파들 - 특히 네그리 같은 자율주의자들 - 도 이런 가정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좀 다르다. (기자답게 존 리드는 이 책에서 자기 주장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이런 주장들을 반박하는 데 유용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한다. 아마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신의 지적 타락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볼셰비키가 주도한 10월의 무장 봉기는 분명히 노동자, 병사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점은 봉기 직후, 존 리드가 인터뷰한 사회혁명당원의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당시 사회혁명당은 볼셰비키에 반대해 반혁명을 도모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대중이 따르고 있는 것은 볼세비키죠. 우리에게는 추종자가 없습니다.…우리에게는 동원할 만한 병사들이 없어요.”

존 리드의 표현에 따르면, 볼셰비키당은 “대중 의지의 궁극적, 정치적 표현”이었다. 무장봉기를 결정하는 과정은 인위적이지도, 그렇다고 매끄럽지도 않았다. 봉기 보름 전에 열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대한 묘사는 매우 충격적이다.

“지식인들 중에는 오직 레닌과 트로츠키만이 봉기를 지지했다.…투표 결과,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은 일단 기각됐다! 그때 한 노동자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떨고 있었다.…‘페트로그라드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몇몇 병사들이 그에 합세했다.…그래서 투표가 다시 이뤄졌고, 결국 무장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이 통과됐다.”

존 리드의 묘사에 따르면, 10월 혁명은 러시아 노동자, 병사 들의 민주적 결정이었다. 혁명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을 벌이는 한 장갑차 부대 병사들에 대한 묘사는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병사들은 고민하며 눈썹을 찌푸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과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사의 얼굴을 한 위대한 거인들처럼 보였다.…넓디넓은 러시아 각지에서 수많은 노동자, 병사, 수병 들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결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마침내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결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바로 그것이 러시아 혁명이었다.”

스탈린

이 책은 1980년대에 ≪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처음 출간된 바 있다.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의 검열 때문에 생략됐던 내용들이 이번에 완전 복원됐다. 1백 페이지 분량의 부록과 후주가 되살아났고, 12장 농민대회 부분이 추가됐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생략됐던 부분을 복원해 페이지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두려워한 것은 단지 우리나라 군사 독재 정권만이 아니었다. 레닌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추천”한 이 책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도 금서가 됐다! (실제 혁명 과정에서 별로 한게 없는) 스탈린 자신이 등장하지 않아서였을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러시아 혁명은 결국 실패해 끔찍한 독재로 끝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평가절하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이 책은 감동적이다. 즉, 러시아 혁명은 "고통 받는 민중을 이끌고 역사에 뛰어든, 또 민중의 광범하고 소박한 희망에 모든 것을 내건, 인류가 시도한 가장 경이로운 모험"이었다는 사실이다(존 리드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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