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 - 경이롭고 감동적인 동물과 과학 연구 노트
장구 지음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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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는 클라스'와 '책 읽어주는 나의 서재'에 출연해 동물과 과학 특강을 진행했던 서울대 수의학과 장구 교수의 동물 과학 에세이 <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를 읽었다. 사실 나는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길에서 강아지를 만나면 보고 반가워하는 아이들과 달리 입마개를 했는지부터 살피고 아이들에게 길 한쪽으로 피하게 하거나 막내를 안아올리기 바쁘다. 어디선가 고양이 링웜 사진을 보고 나서부터 고양이는 더욱더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동물의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는 걸 동물 과학책 <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는 많은 것을 일깨워주었다. 당뇨병 치료제 개발에 큰 도움을 준 개, 시험관 아기 탄생의 밑거름이 된 쥐 등 과학의 발달에 물심양면(?)으로(자의는 아닐지라도) 도움이 되어준 연구실의 동물들이 있다는 걸 말이다. 



 

동물 과학책 <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세상을 바꾼 동물학자의 연구실에 숨은 주역으로서 동물의 흔적들을 더듬어본다.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개, 인류에게 최초의 백신을 선물한 소, 질병 연구 모델이 되어준 낙타, 신약 개발에 임상실험 대상으로 큰 역할을 했던 원숭이 등 실험동물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다. 과학 연구실의 숨은 주역인 동물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2부는 세상을 바꿀 동물학자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긴다. 세계 최초로 사람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한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3부에는 수의사로서 저자가 만났던 반려동물과 반려동물의 보호자와의 감동어린 이야기가 담겼다. 



우리는 인슐린뿐 아니라 많은 질병 치료제를 개와 소, 돼지 등 동물들로부터 얻어왔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인류는 많은 동물 유래 단백질을 이용하면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동물의 질병 발생을 관찰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대단히 많습니다. 따라서 동물을 보살피고 그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단순한 동물 치료를 넘어서, 사람의 질병 치료와 예방을 위한 자료로도 쓰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장은 사람의 치료와 관련이 없어 보여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 중에서


과학기술 선진국으로서 우리나라는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연구 결과들을 내왔지만, 유전자 변형 생물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산업화가 승인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항체 치료제, 바이러스 치료제, 유전자 변형 세포 치료제 등 다양한 단백질 의약품에 대해서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죠. 최근에는 외부 유전자를 도입하지 않고도 우리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동물과 식물들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많은 국가가 관련 제도를 다시 정비했습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미 제도를 완비했고, 2021년 가장 먼저 제품(토마토 및 참돔)을 출시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새로운 규정을 만들고 인식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을 돌보고 연구합니다> 중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과학 이면에 숨은 주역, 실험동물들. 하지만 여기에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이다. 첨단과학 기술의 발달에 불가피한 동물 실험은 놀라운 연구 결과들을 냈지만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쓴다는 것 자체로 부정적인 시선이 뒤따른다. 실험동물의 수를 줄이고, 가급적 동물을 이용하지 않는 다른 실험으로 대체하며 실험 현장에서 동물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는 대목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든 생명은 같은 무게를 가지고 동일한 가치가 있다. 동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동물의 존재와 그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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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주성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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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가 나의 젊은 시절을 소환해 준 덕분에 며칠 동안 행복했지만 또 슬프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참 행복했다. 홍콩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다시 떠올리니 지금의 나도 따라 행복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내 슬퍼졌다. 언제고 다시 홍콩을 찾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때 그 시절로는 돌아갈 수는 없겠지. 새벽 1시 뜨겁던 란콰이퐁의 클럽 거리, 끝없이 길게 이어지던 미들 레벨 에스컬레이터 위에 올랐을 때의 근사함, 아쿠아 루나에서 바라보던 화려한 심포니 오브 라이츠, 빅토리아 피크에서 맞던 서늘한 여름 바람. 홍콩의 그 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헤어진 이도, 잃어버린 나 자신도 홍콩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한때 홍콩을, 홍콩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여행에세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를 소개한다. 이 여행책으로 추억을 더듬어보길!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는 '홍콩' 그리고 '홍콩 영화'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영화평론가 주성철의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의 개정판이다. 홍콩에 갈 때면 늘 찾던 이곳저곳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천천히 홍콩을 거니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안부를 건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홍콩 여행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는 코즈웨이베이, 센트럴, 셩완, 애드미럴티 등 아무 곳이나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 여행책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 캔맥주를 따게 됐다. 맥주 한 캔과 홍콩 여행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이 주는 행복이라니 :) 오래도록 열어보지 않았던 여행 폴더도 열어 홍콩의 사진들을 보며 아련한 추억에 젖었다.



 


여행 에세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의 저자는 홍콩 영화에 빠져 홍콩 여행까지 떠나게 되었는데 나는 그 반대의 경우다. 휴가차 떠난 홍콩의 매력에 흠뻑 빠진 뒤부터 홍콩 영화들을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홍콩의 거리, 음식점, 카페 들을 영화 속 장면으로 만나면 또 감회가 새로웠다. 당장이라도 홍콩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홍콩 영화로 꾹꾹 눌렀다. 





<중경삼림>의 모든 주인공들은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내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경찰223(금성무)은 허탈한 마음에 자정이 지나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막 뛰어오른다. 매일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며 술에 의지하는 금발머리 마약밀매상(임청하),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며 매일 똑같은 곳을 순찰하는 경찰 663(양조위), 경찰 663의 단골 식당에서 이라며 그의 맨션 열쇠를 손에 쥔 페이(왕정문) 모두 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스치는 인연을 반복한다.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p.87



 


 

홍콩의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 최장 에스컬레이터로 800미터에 달한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건물과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은 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지만 그중에서 영화 <중경삼림>은 빼놓을 수가 없다. 아쉽게도 <중경삼림>에 나오는 양조위의 집이나 코크레인 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미들 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왕정문처럼 각양각색의 건물을 구경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설렘에 가득 차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나 카페, 바를 발견하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달려가곤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린드허스트 테라스에 가면 늘 들렀던 타이청 베이커리 에그 타르트도 그립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 주윤발, 장만옥, 유덕화 등 내가 애정하는 배우들은 그야말로 추억의 배우들이 돼 버렸고 골드미스로 평생 자유롭게 살 줄 알았던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언젠가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책 한 권을 들고 홍콩 영화의 흔적을, 그리고 그들에 열광하던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헤어진 이'는 다름 아닌 홍콩과 홍콩 영화에 열광하던 나의 젊은 시절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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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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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소통할 때 나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 마음을 표현하기에 '언어'라는 그릇이 작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단어들을 골라보지만 가끔 언어로는 내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할 때가 있고 또 그로 인해 오해가 빚어지는 경우도 많다. 언어의 부족함이 만들어내는 불통과 오해 사이에서 '거시기'나 '머시기'라는 무한한 확장의 언어는 얼마나 근사한지! 무엇이라 단정짓기는 좀 애매하지만 말하는 이나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력과 상상력, 공감력까지 무한히 끌어올리는 환상적인 언어다. <거시기 머시기>라는 근사한 제목의 이 책은 그 이름 자체가 그의 정의이자 수식어인 '이어령' 선생이 여덟 곳에서 했던 강연의 내용이 담겼다. 책의 부제로도 알 수 있듯이 이어령이 80년 동안 읽고, 쓰고, 발화한 그 모든 행위가 담긴 책이다.





이미 알고 있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가 ‘거시기’이고 언어로는 줄 긋기 어려운 삶의 의미를 횡단하는 행위의 술어가 ‘머시기’다. (...) ‘거시기 머시기’나 ‘카오스모스’는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암호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생각 장치라 할 수 있다.

<거시기 머시기> p.9


그의 생명은 이미 스러졌지만 그가 지녔던 말의 힘, 글의 힘은 더 큰 힘과 빛을 발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더 그럴 것이다. 사실 <거시기 머시기>를 편집하던 중 이어령 선생이 영면에 들게 되어 책의 머리말을 쓰지 못하셨지만 201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주제 강연인 '집단 기억의 잔치 카오스모스의 세상'을 머리말 대신 실었다고 한다. 편집자의 후기가 아니었더라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책의 전체적인 내용과 머리글이 절 어우러졌다.




언어적 소통과 비언어적 소통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곡예의 언어인 거시기와 머시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상태까지 껴안는다.이미 알고 있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가 거시기이고 언어로는 줄 긋이 어려운 삶의 의미를 횡단하는 행위의 술어가 머시기라고 정의했다. 더 나아가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암호이자 그것을 실행하는 생각 장치라고 했다. 




이 세상에는 똑같이 생긴 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벽돌 하나가 부서지면 규격이 같은 다른 벽돌로 갈아 끼울 수 있지만 돌 하나가 깨지면 그 자리만큼 지구는 비어 있게 됩니다.(...)

어느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나’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 시요,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 법, 경제에서는 ‘베스트 원’을 추구하지만 문학과 예술의 세계에서는 ‘온리 원’을 지향합니다. 장미를 맨 먼저 미녀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이지만 그것을 두 번째 말한 사람은 바보입니다

<거시기 머시기> p.18


언어의 세계에는 인간의 창조적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요. 절대 변화가 불가능한 자연법칙이 아닌,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word’로 ‘world’를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희망이 넘치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거시기 머시기> p.180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어령 선생이 언급한 word가 world를 바꾸는 것을 증명하는 대사가 나온다. 구씨와 미정이 대화하는 장면이다. "가짜로 해도 채워지나? 이쁘다, 멋지다. 아무 말이나 막할 수 있잖아?"라는 구씨의 말에 미정이 답한다.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될텐데? 모든 말이 그렇던데. 해봐요, 한번. 아무 말이나."라고 대답한다. 말하는 순간 진짜가 되버리는 것, 절대 변화가 불가능한 자연법칙이 아닌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언어의 세계 속에서 얼마든지 나의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자랑과 희망을 품어도 된다고 타일러준다. 책의 힘, 말의 힘, 글의 힘을 믿자. 80년 동안 이어령 선생 그 자체와 그가 남긴 글, 말 그리고 그것들을 엮어낸 책이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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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외로운 선택 - 청년 자살,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김현수 외 지음 / 북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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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치기까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가장 외로운 선택>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세상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높은 낭떠러지 위에 올라서 결국 스스로 몸을 내던져버리는 이미지가 떠올라, 한동안 책에 손도 댈 수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불행과 좌절만 보려고 했다. 너무 이기적이게도 말이다. 한때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어른'의 자리를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서 받은 가르침과 다정한 마음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늘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부채를 성실하게까지는 아니어도 일부라도 조금씩 상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장 외로운 선택>을 펼쳤다. 청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아픔과 불행에 공감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사망하는 원인 중 단연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자살'이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야 할 나이의 청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가장 외로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외로운 선택>은 정신건강의학자, 인류학자, 보건학자, 사회복지학자, 상담사, 사회역학자 총 여섯 명의 전문가들이 청년 자살 문제를 바라보고 그 원인을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보고서 형식의 책이다.



만일 적지 않은 청년이 삶의 기쁨과 의욕을 갖지 못하고, 다수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고통받으며, 자살률이 증가하는 추세라면, 우리는 과연 지금 세상이 이들에게 어떠한 면에서 살 만하지 못한 곳인지, 나아가 어떻게 해야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라서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는 누구나 태어나면서 당연히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살아가는 환경 속에서 서서히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그들이 죽겠다고 외치고 있는데,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좋은 사회일수록, 다음 세대에게 더 살 만한 세상을, 의미 있는 삶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곳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외로운 선택> p.20~21


90년 생들이 사라지고 있다. 청년들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더더욱 경악스럽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살아가기 어렵다고 한다. '삶의 의미'는 태어나면서부터 내재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활하는 환경 속에서 서서히 습득하게 되는 관념이다. 결국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나 목적을 찾지 못하고 고립된 채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가장 외로운 선택>은 청년 자살의 원인부터 세대별 특징, 사회 구조 문제, 코로나 관련 이슈, 계층과 성별이 미치는 영향과 청년 자살률을 완화할 수 있는 예방 대책까지 하나씩 짚어나간다.



한 청년의 죽음을 향해 보이는 사회의 무기력한 반응 자체가 청년들에게 더 무기력을 안기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가장 외롭고 우울한 죽음의 시대를 살아내는 초기 세대가 아닌가 합니다

<가장 외로운 선택> p.45



청년은 사회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한두 개 정책이나 서비스만으로는 청년의 자살 고위험을 낮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청년 자살률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 사회가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합니다. 청년의 불행이 여성들만의, 남성들만의 불행일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의 절망은 모든 세대의 불행으로 상호 확산됩니다. 마치 감염된 절망감처럼 모두에게 편하지 않은 사회, 아무도 경청해 주지 않는 삶으로 표현되는 이 시대 청년의 일상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하루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가장 외로운 선택> p.143


청년 자살률은 그 사회를 반영하는 수치다. 청년 자살률이 높은 곳은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그 사회가 살기 어려운 곳임을 나타낸다. 2020년 기준 한국의 20대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살로 스러졌다. 이는 고통받는 청년을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미비하다는 방증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전혀 살만한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성세대로부터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 청년들, 청년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기성세대들 사이의 간극을 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로 인해 삶의 기반이 흔들려버리고 정신적, 정서적으로 고립된 청년들을 구출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외로운 선택>은 청년들이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밝혀 더 나은 내일을 가져올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그들이 더 이상 외로운 선택을 하지 않도록 미약하지만 우리의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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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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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한쪽 면에 희망과 반대편에 절망이 등을 대고 붙은 동전 같은 것이다. 희망과 절망은 놀랍도록 가까이 있으며 한쪽에서 그 반대쪽으로의 전복은 우스울 만큼 쉽다. <파이 이야기>는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한 소년이 벵골 호랑이 한 마리와 227일간 태평양에서 지내는 절망적이지만 희망적인 시간을 담았다.


 


<파이 이야기>는 맨부커상 수상작 중 역대 최대 베스트셀러이며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되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나는 소설책보다 영화로 먼저 이 이야기를 만났는데, 몽환적인 느낌의 동화 같은 영화는 매 장면마다 잊을 수 없는 감각을 선사했다. 망망대해 위에 한 소년과 커다란 호랑이가 갑판 위에 나란히 선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롭고도 아름다워, 경탄을 금할 수 없었던 때가 새록새록 기억난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이다. 새로운 소설 쓰는 것을 갈망하던 작가가 신을 믿게 할 이야기가 있다는 한 노인을 우연히 만나고 그에게서 '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을 소개받는다. 파이는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환상적인 동물원에 대한 이야기, 자애로운 어머니와 형과 함께 했던 유년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파이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고 동물들까지 모두 커다란 화물선에 오른다. 항해를 시작한 지 나흘째에 화물선이 침몰한다.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 고아가 되어 홀로 떠 있었다. 몸은 노에 매달려 있고, 앞에는 커다란 호랑이가 있고, 밑에는 상어가 다니고, 폭풍우가 몸 위로 쏟아졌다. 이성적으로 이런 상황을 보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물에 빠져 죽기를 바라리라. 하지만 노를 방수포에 끼우고 안전하다는 생각이 밀려든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동이 트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힘껏 노에 매달렸다. 그냥 매달렸다. 왜 그랬는지는 하느님이나 아시겠지.

 p.163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사건으로 파이는 목숨을 건져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나머지 가족의 생사는 알 수가 없다. 대신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 그리고 벵골 호랑이까지 네 마리의 동물만이 살아남았다. 네 마리의 동물들은 야생의 본능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놓고 다투고 결국 배 안에 남은 것은 소년 파이와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뿐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동물원을 관찰하며 배운 대로 파이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난 죽지 않아. 죽음을 거부할 거야. 이 악몽을 헤쳐 나갈 거야. 아무리 큰 난관이라도 물리칠 거야. 지금까지 기적처럼 살아났어. 이제 기적을 당연한 일로 만들 테야. 매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하다면 뭐든 할 테야. 그래, 신이 나와 함께하는 한 난 죽지 않아. 아멘.”

 p.219


“사랑한다!”

터져 나온 그 말은 순수하고, 자유롭고, 무한했다. 내 가슴에서 감정이 넘쳐났다.

“정말로 사랑해. 사랑한다, 리처드 파커. 지금 네가 없다면 난 어째야 좋을지 모를 거야. 난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그래, 못 견뎠을 거야. 희망이 없어서 죽을 거야. 포기하지 마, 리처드 파커. 포기하면 안 돼. 내가 육지에 데려다줄게. 약속할게. 약속한다고!"

 p.339



파이가 호랑이와 보내는 시간들은 절망과 희망, 두 개의 면을 가진 동전과도 같았다. 망망대해에 온 가족을 잃고 홀로인 파이는 언제고 자신을 먹어치울 수 있는 맹수 호랑이와 단둘이다.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그런 상황에서 호랑이는 소년의 목숨을 위협하는 절망이자 소년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삶을 살아나가는 희망의 근원이었다. 파이는 227일간의 표류 끝에 마침내 육지에 도착한다. 화물선 침몰 원인을 조사하러 나온 선박회사 직원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듣고 쉽게 믿지 못한다. 그러자 파이는 이야기한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인생이 이야기라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절망인가, 희망인가. 나의 인생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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