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주성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평점 :

여행에세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가 나의 젊은 시절을 소환해 준 덕분에 며칠 동안 행복했지만 또 슬프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참 행복했다. 홍콩에서 느꼈던 행복감을 다시 떠올리니 지금의 나도 따라 행복해지는 것 같았지만 이내 슬퍼졌다. 언제고 다시 홍콩을 찾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때 그 시절로는 돌아갈 수는 없겠지. 새벽 1시 뜨겁던 란콰이퐁의 클럽 거리, 끝없이 길게 이어지던 미들 레벨 에스컬레이터 위에 올랐을 때의 근사함, 아쿠아 루나에서 바라보던 화려한 심포니 오브 라이츠, 빅토리아 피크에서 맞던 서늘한 여름 바람. 홍콩의 그 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헤어진 이도, 잃어버린 나 자신도 홍콩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한때 홍콩을, 홍콩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여행에세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를 소개한다. 이 여행책으로 추억을 더듬어보길!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는 '홍콩' 그리고 '홍콩 영화'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영화평론가 주성철의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의 개정판이다. 홍콩에 갈 때면 늘 찾던 이곳저곳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천천히 홍콩을 거니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안부를 건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홍콩 여행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는 코즈웨이베이, 센트럴, 셩완, 애드미럴티 등 아무 곳이나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 여행책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새 자유롭게 맥주를 마시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 캔맥주를 따게 됐다. 맥주 한 캔과 홍콩 여행책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이 주는 행복이라니 :) 오래도록 열어보지 않았던 여행 폴더도 열어 홍콩의 사진들을 보며 아련한 추억에 젖었다.
여행 에세이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의 저자는 홍콩 영화에 빠져 홍콩 여행까지 떠나게 되었는데 나는 그 반대의 경우다. 휴가차 떠난 홍콩의 매력에 흠뻑 빠진 뒤부터 홍콩 영화들을 하나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홍콩의 거리, 음식점, 카페 들을 영화 속 장면으로 만나면 또 감회가 새로웠다. 당장이라도 홍콩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홍콩 영화로 꾹꾹 눌렀다.
<중경삼림>의 모든 주인공들은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내 사랑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경찰223(금성무)은 허탈한 마음에 자정이 지나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막 뛰어오른다. 매일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며 술에 의지하는 금발머리 마약밀매상(임청하),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며 매일 똑같은 곳을 순찰하는 경찰 663(양조위), 경찰 663의 단골 식당에서 이라며 그의 맨션 열쇠를 손에 쥔 페이(왕정문) 모두 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스치는 인연을 반복한다.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p.87
홍콩의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 최장 에스컬레이터로 800미터에 달한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건물과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은 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지만 그중에서 영화 <중경삼림>은 빼놓을 수가 없다. 아쉽게도 <중경삼림>에 나오는 양조위의 집이나 코크레인 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미들 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왕정문처럼 각양각색의 건물을 구경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설렘에 가득 차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나 카페, 바를 발견하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달려가곤 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린드허스트 테라스에 가면 늘 들렀던 타이청 베이커리 에그 타르트도 그립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 주윤발, 장만옥, 유덕화 등 내가 애정하는 배우들은 그야말로 추억의 배우들이 돼 버렸고 골드미스로 평생 자유롭게 살 줄 알았던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언젠가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책 한 권을 들고 홍콩 영화의 흔적을, 그리고 그들에 열광하던 젊은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 내가 가장 만나고 싶은 '헤어진 이'는 다름 아닌 홍콩과 홍콩 영화에 열광하던 나의 젊은 시절이라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