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평점 :
<파리를 관찰하는 플라뇌르, 드가 by 이연식 / arte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는 파리를 정처없이 배회하는 관찰자, 플라뇌르 그 자체이다. 플라뇌르 flaneur란 유유자적하게 대도시를 돌아다니는 초연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존재이며 도시의 군중을 광활한 사막처럼 여기며 그 사막을 배회하며 자신의 고독을 만끽하는 사람이다. 드가는 그렇게 포착해낸,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거대 도시의 모습, 도시 속의 사람들, 도시가 낳은 유흥과 구경거리를 그렸다.
신화나 역사를 주제로 한 그림보다는 현실 속의 인물을 다룰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파리의 거리를 정처없이 배회하며 사람을 관찰하고, 혹은 그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을 더 관찰하고, 그 사람 이면의 진실된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사람들의 화두가 되었고 때로는 문제작이 되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드가는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었고 질서를 갈망하는 '문제적' 화가였으며 본인 스스로 인상주의보다는 사실주의 예술가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가장 인상주의적인 예술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 그는 역설과 모순 그 자체인 사람이기도 했다.

<드가, 인조 조명을 유일한 광원 삼아 그림을 그렸던, 격정적이면서도 냉정한 관찰자>
19세기 이후 예술가들과 문인들은 카페를 좋아했다.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들었고 드가 역시 그랬다. 그곳 외에도 드가는 해가 지면 카페 콩세르로 갔고 또 카페 앙바사되르를 즐겨 찾았다. 그런 카페들은 음악과 단막극을 비롯한 여흥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여타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던 것과 달리 드가는 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 조명을 유일한 광원 삼아 그림을 그리는 것을 즐겼다. 가수 엠마 발라동의 관능적인 목소리가 나에게도 들리는 듯한 <개의 노래>, 아침부터 압생트를 마시는 두 남여의 황량하고 나른한 느낌이 번져나는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 거리에서 영업하며 고객에게 은밀히 신호를 보내는 매춘부를 그린 <카페 테라스의 여인들> 등 드가는 냉정한 플라뇌르로서 도시의 사람들을 염탐하는 것 같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드가, 몽환적인 아름다움과 비참한 현실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한데 섞어놓다>
드가는 발레리나 그림을 많이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드가가 주목한 것은 화려한 무대 뒤의 발레리나였다.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를 그리기도 했지만 무대 위에 선 사람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도 포착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 <분장실의 발레리나>, <기다림>등이 그것이다. 수석 발레리나가 풋라이트를 받으며 앞으로 나오는 환상적인 모습과 검은 색 정장 차림의 후원자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에투알>은 이질적인 두 요소를 잡아낸 드가의 탁월한 관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드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탐닉하다.>
드가의 삶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었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연인도 없었다고 한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랑은 사랑으로, 그림은 그림으로 남는 것이고, 인간은 오직 한 가지만 사랑할 수 있을 뿐이라오."라는 답했다고 한다.
드가는 자신을 철저히 숨긴 익명의 플라뇌르로서 파리를 배회하고 세상을 담았다. 사진을 찍듯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을 탐닉했다. 그랬기 때문에 타인의 욕망과 감정을 잘 포착해낼 수 있엇던 걸까?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화려하고 눈부신 꿈을 꾸는 듯 황홀해지지만 그 이면에 담긴 날카롭고도 비참한 현실은 그가 얼마나 탁월한 플라뇌르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를 읽으며 그의 시선으로 파리의 구석구석을 좇아 플라뇌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책은 덮은 지금도 카페 앙바사되르의 영롱한 조명 아래서 관능적인 노래에 흠뻑 취한 듯 당분간은 아마도 헤어나오지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