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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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의 시작 부분이다. 언젠가 산문집을 내게 되면 이 단락으로 시작해야지 하는 결심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이십 대 초반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첫 몇 문장을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 한동안은 소원했으나 그전까지의 나를 낱낱이 알고 있는 나의 일기는 내가 왜 우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해줄 것이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8~9



작가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작가 그 자체라던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작가 박서련이 써온 일기 중에서 일부를 엮어낸 에세이다. 작가의 좀 더 내밀하고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원래 남들 읽으라고 쓴 일기보다는, 남들이 읽을 줄 모르고 쓴 일기 보는 재미가 쏠쏠한 법! 예전에 <더 셜리 클럽> 출간 기념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진행자였던 편집자가 질문을 하면작가의 대답이 시작하기까지 평균적으로 약 8초의 시간이 걸렸는데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을 읽고 나니 살짝 납득이 가더라는. 일단 일기에 비속어가(ㅋㅋㅋㅋ) 적지 않게 등장한다. 아마 라방때 자체 필터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아무튼 작가의 정말 사적인 사생활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다.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시간이 날 때 뭘 하는지, 어떤 연애와 이별을 했는지, 술자리에서는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그리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작가님의 방이 주기적으로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 이미 가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웃음이 빵 터지는 문장들이 아주 많았는데, 몇 가지만 발췌해보자면...


"없었던 일로"는 소위 '칼로리컷' 다이어트 보조제다(나는 기본적으로 소화제라고 믿고 있다). (...)제품명이 멋지다. 머음껏 먹고,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든다는, 참으로 멋진 사고방식에서 나온 작명이 틀림없다. 물론 어떤 일도, 이미 일어난 일들은, 심지어는 상상된 일들 중 일부 또한, 결코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39



웬 남자한테 잡혀 수박 모자이크병에 관한 인터뷰를 '당했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무늬가 있는 수박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인터넷에서 본 것 같네요. (...) 이런 수박을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요? 걱정되지 않으세요?뭐, 맛만 있으면 그만이 아닐까요......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169



충격파치료사 선생님은 치료 도중 "앗, 여기가 특히 안 좋으시구낭. 그럼 이 부분 위주로 지질게요?" 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지질'이 너무 자연스럽게 '조질'로 들렸기 때문에('조지다' 역시 표준어라도 하지만) 정말로 으스러지도록 조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천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291



그녀가 기본적으로 소화제라고 알고 있다는(ㅋㅋ) 다이어트 보조제의 작명에 대한 생각, 모자이크병에 걸린 수박이라도 맛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반문하는 모습, 아픈 허리를 치료하던 도중 '지진다'는 말을 '조진다'로 들린다는 에피소드 등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읽다가 여러 차례 빵 터졌다. 


 


나는 평소에 작가들이 글쓰기적 시간의 바깥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참 궁금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배달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고,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웃고, 울고, 또 기쁘고 행복해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노력도 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책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이사이 쓰는 일에 대한 고민과 힘듦에 대해 언급될 때면 살짝 경건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단락...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집을 만들어가듯 문장을 지어내고 단어를 쌓아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독자의 자리에 서서 상상하는 것조차 참 어렵다. 작가들의 노력에 비해 책들이 너무 쉽고 소비되고 평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지인인 혜언니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내가 완성하길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세상에 원치 않는다고. 그러니까 안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p.146)"라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끝까지 써내야 한다고, 아무도 원치않는 이 글을". 부디, 이 세상의 모든 작가가, 아무도 원치 않는 그 글들을 끝까지 써내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이런 일기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글을, 가장 나 자신인채로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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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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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 동안 천천히 일어난 기적을 만지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의 형체가 바로 내 앞에 있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재> p.11"



겨울과 너무도 잘 어우러지는, 쓸쓸하고 황량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소설 <재>를 만났다. 느리게 흐르는 이야기 속 꿈을 꾸는 듯한 시어들은 둔중한 속도로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시간을 좇는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재>를 펼쳐들면 내 시간도 따라 더디게 흘렀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나', 그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모', 모의 누나인 '현'과 현의 아들 '섭', 그리고 주인공의 연인 '수'이다. 주인공 '나'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모진 마음을 먹은 가시가 돋힌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의 집을 쌓는다. 이 집은 황량하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인덱스 테이프로 표시를 해두는데 <재>는 그런 표식이 의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아름다웠기에. 



"젊음은 때로 실패와 낭패를 미리 살기도 하는데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잠깐씩 나이 밖의 시간을 빌리는 친구들 말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청소년이었으니까. 흔히 찾는 이유처럼, 나 자신이나 가족에게 특별한 사건이나 사연, 그로 인한 난감함과 난처함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그 나이 때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이 뜻대로 되는 것이 있을 리 없었고, 또 다들 읊어대는 그 삶의 뜻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그래서 조금은 우울하고 그래서 어눌한 학생이 나였다. 

 <재> p.40"



소설의 화자 '나'는 조금은 우울하고 어눌한 학생이었다. 뜻대로 되는 것도 없고 그 삶의 뜻이란 것도 모르겠는. 반대로 모는 중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고 전교 석차 상위권에 머무를 정도로 성적도 좋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우연힌 기회로 모와 친해졌다. 모와 함께 지금은 빈 집인 그의 본가를 찾아 술을 잔뜩 마시는 일탈을 저지른다. 그저 잠깐 나이 밖의 시간을 빌려 술을 마시곤 대화를 나눈다. 가족이나 진학, 진로, 성적 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계절 이야기, 꽃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라도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모는 "걔는 뛰는 걸 보면 있잖아. 이상하게 모든 게 다 납득이 돼. 뛰어나구나, 영리하구나, 천재적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정말 저것밖에 모르는구나.(p.48)"라고 말한다. 단 하나의 불로 세상 전부를 태우는 사람. 마라도나 이야기는 축구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말 인간은 남의 불행을 통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사람들은 더 불행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부정한 사람들은 더 부정한 사람을 필요로 하며, 마음에 치부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사랑을 치부로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이야깃거리가 필요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야기 밖으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저 적당히 멀리,보일 듯 말듯한 곳에 있어야 한다. 사라지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잊을 용의도 없다. 자신의 레이더가 닿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 남아 자신들에게 포착되어야 하고, 그로써 뒷담화 소스를 언제든 제공해야 한다. 

한국소설추천 <재> p.54"



이야기는 전환되어 모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인다. 모의 누나인 현은 미혼모이고 그녀의 아들 섭은 발달장애아이다. 섭의 특별함은 현을 불편한 사람에서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현은 속 모를 미혼모에서 아픈 애 엄마가 되었다.(p.53) 장례식장 자리에서조차 모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현은 누군가 자신을 애처롭게 볼 때 "동정할 거면 차라리 돈을 줘."라며 자신을 통해 뭔가를 얻었다면 대가를 지불하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 불행한 사람은 더 불행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부정한 사람들은 더 부정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기에.


"훗날 수는, 내가 이 사랑에 더 성실했으니까 괜찮아, 라고 말했다. (...)

처음 나는 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에도 성실과 불성실이 있어서 어떤 사랑을 부지런하고 어떤 사랑은 게으르다는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성실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저녁마다 나에게 오기 위해 수에게는 성실함이 필요했을까. 성실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말하자면 사랑은 이미 성실을 속성으로 가지는 것은 아닐까.

<재> p.81"



"결혼은 사랑을 의무로 만드는 것이라고, 의무가 된 사랑이 사랑일 수 있느냐고, 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제도가 된 사랑은 관계에 대한 권력으로 작동될 뿐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재> p.82"



주인공과 수는 9년을 사귀고 4년 동안 함께 살았다. 수와 함께 있어도 더는 수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알고 있던 단어들이 다 옛말처럼 무용해져버렸고 둘은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수는 주인공에게 말했다. "내가 이 사랑에 더 성실했으니까 괜찮아." 그는 사랑에도 성실과 불성실이 존재하고 어떤 사랑은 부지런하고 어떤 사랑은 게으르다는 그녀의 말에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는 설치미술가로 마지막 고별 파티를 하고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목재로 만든 수의 작품을 태워 고기를 구워기로 한 고별파티에서, 주인공은 모와 비슷한 사람을 본다. 열아홉의 모가 서른을 넘기면 영락없이 그 얼굴이었을 사람을 보지만 이유없는 망설임 때문에 그를 외면한다. 그런 다음 모를 재회한 건 모의 영정사진이었다. 모는 그 다음날 재가 되었다. 주인공은 '탄생은 지나간 폐허를 시연하는 것이고, 생명은 끝없이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p.152)'이라고 탄생, 생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실은 <재>의 절반 정도를 읽고나서야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에세이인줄 착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내밀하고 사적이다. 사랑과 사랑 후에 남는 것들, 만남과 이별 후에 남는 이야기,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고 쓸쓸한 시어들로 그려져있다.. <재>의 문장들이 다 좋았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읽고 또 다시 읽을만큼, 넘겼던 페이지를 다시 돌아와 또 한 번, 다시 한 번 읽을만큼. 너무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이상하게 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얼마나 좋고, 무엇이 좋은지 이야기하는 게 무용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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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롱보다 몽롱 - 우리 여성 작가 12인의 이토록 사적인 술 이야기
허은실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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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영롱보다 몽롱>을 읽는 내내 철저하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기억해냈다. 그 기억은 '떠올렸다'거나, '생각났다'기보다 '되찾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정도로 육아를 하는 동안 강탈당한 즐거움이었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갑자기 잊었던 기억을 되찾아 머리에 강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자못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술을 즐기는 사람이었는지 기억나 버렸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클라우디 베이 샤도네이'여, '월계관 준마이다이긴죠'여... 우리 안 본 지 너무 오래 되었구나. 지금 우리집 냉장고를 잔뜩 채운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 치즈, 요거트 등이고 거기에 주류라곤 가끔 세 아이 독박육아를 하다가 너무 분노를 느낄 때 분노 진화용으로 들인 편의점 맥주가 전부다. 여성 작가 12인과 술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영롱보다 몽롱> 속 작가들이 술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읽으며 나의 순간들도 더듬어보는, 애틋하고도 다정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눈이 백화처럼 소복수박 쌓이는 밤, 됫병으로 사 두고 데워 먹는 백화수복은 또 어떻고. 백화수복은 이름조차 터무니없게 아름답다. 주문 같고 기도 같고 축복 같아, 백화수복 수복강녕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 위장을 찌르르 핥으며 내려가는 알코올의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그 강렬한 실존의 감각. 생각해 보라, 우리가 내장기관을 감각할 때가 살면서 얼마나 있는가. 이슬처럼 사라질 인생. 한잔 술의 즐거움도 내쳐 버리면, 서글프지 않은가. 

에세이 추천 <영롱보다 몽롱> p.31



 언젠가 술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 언제가가 현재에 해당되는 사람도 꼭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에세이 <영롱보다 몽롱>에 첫 번째로 실린 '언니와 함께 술을' 에는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감명 받을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무엇보다 빈 위장을 찌르르 핥으며 내려가는 알코올의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그 강렬한 실존의 감각. 생각해 보라, 우리가 내장기관을 감각할 때가 살면서 얼마나 있는가. 이슬처럼 사라질 인생. 한잔 술의 즐거움도 내쳐 버리면, 서글프지 않은가.' 야근을 마치고 친구 몇몇과 앉아 첫 술잔을 비우면 그 술이 식도를 따라 타고 흘러내려가며 온 몸의 세포를 깨워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회사에서 내내 죽어있던 '회색'인 나는 그 술 한잔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색빛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빈 위장을 찌르르 핥으며 내려가는 알코올'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내가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감각하며!



 


시간이 멸한 나보다 더 많은 나...... 더 많은 나. 더 많은 나. 그걸 더 많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온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고, 한 조각씩 존재한다. 타인을 대할 때 말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대할 때도. 조각, 조각, 조각. 그 숱한 조각들이 간신히 엉성하게 붙어 있을 수도 있다.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가 버리는 조각도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나, 그리고 토파즈에 우리를 초대했던 친구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어딘지 결락된, 어딘지 희미한. 

에세이 추천 <영롱보다 몽롱> p.148



세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문득 내가 부들부들 화나는  과거의 장면들이 몇 있는데, 그중 복직 후 엄청난 워커홀릭이던 팀장 밑에서 일하며 엄청난 개고생을 했던 때다. 워커홀릭 팀장 밑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새벽 5시에 출근하고 그날 새벽 1시에 퇴근한 적도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여러 몹쓸 버릇 중 하나가 업무 시간중이 아닌 퇴근때마다 '긴급' 회의를 소집하던 거였는데 그로 인해 아이가 세 살을 맞던 생일 때 주문했던 초코 케잌을 찾지 못했고 밤 열한 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쿨하게 퇴근했으면 될 일인데, 왜 그 시절의 나는 그러질 못했을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그건 온전한 내가 아니었다. 시간이 멸한 수많은 내 조각 중 하나, 시간이 마땅히 멸하고 지금은 없는 나의 한 조각... 아직도 그 시절이 나에겐 상처였나보다. <영롱보다 몽롱>을 읽는 동안에도 그때의 기억으로 씁쓸했다. 하지만 그건 온전한 내가 아니라고, 나에게 엉성하게 붙어 있었던 어떤 한 조각이라고, <영롱보다 몽롱>이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다정히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오해라는 것을 푸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당시의 나는 많은 것에 지쳐 있었고, 그 에너지 자체가 고갈된 시기였다. 당분간 그냥 그대로 두자, 기다려 보자 한 것이 뭉텅, 세월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어쩌다 삐긋해 버리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소원함에 서운해 하지도, 인연에 연연하지도 말 것. 그저 시절인연인 것이다.

에세이 추천 <영롱보다 몽롱> p.20



결혼 전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더 화려했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멋있는 것들을 보며 지냈다. 그렇게 화려한 시간들 속을 부유하다보면 반대로 속은 텅 비어버리는 때가 많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한다. 사람 만나는 것에도 지치고 화려함에도 지친다. 그랬던 당시의 내가 흘려보냈던 많은 '시절인연'에 대해 돌이켜보았다. 그때, 술과 함께 했던 많은 인연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취기, 그 광기와 퇴폐들, 유혹과 방탕과 멸망과 악마들......'(p.103)' '술병 뒤에는 정말로 허무와 슬픔과 기억(p.103)'만 남는걸까? 에세이 <영롱보다 몽롱>을 읽고나니 더는 맥주에 손이 가지 않는다. 엄마의 자제력을 시험이라도 하듯 날뛰는(!!!) 세 아이에 향한 분노를 긴급 진화해주던 '고마운' 맥주에 말이다. 술에 대한 취향도 잃고, 분노에의 자제력도, 관용조차 잃어버린건가 싶어 서글퍼진다. 내일은 마트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사와야겠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영롱보다 몽롱>을 펼쳐 함께 홀짝 홀짝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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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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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함과 불안함은 말끔히 걷힐 마음도 그렇다고 시원하고 세차게 비를 내려줄 생각도 없는 변덕스러운 비구름처럼 꾸물거리며 움직였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그 조각을 좇고 좇아 이야기하는  등장인물들. 그들이 느리게 꿈을 꾸는 듯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조급해 숨이 차는 듯했다. 불길하고 불안했지만 또 너무나 아름다웠던 <유지니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범인을 놓치기라도 할듯 마지막 페이지까지 세차게 읽어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을 읽고 나서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어졌다.



인근 지역 주민들의 존경을 받는 한 명문가의 잔칫날, 그곳을 찾은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은 누군가 보내온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마시게 된다. 노란 비옷을 입고 야구모자를 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가져온 그 음료수는 열일곱 명의 희생자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그 사건의 생존자는 어렸을 때 눈이 멀어 앞을 보지 못하는 그 집안의 소녀 한 명과 가정주부 한 명뿐이었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형사는 싸늘한, 이 세상 것 같지 않은 악의에 공포를 느낀다. 너무나도 작은 그를 짓눌러버릴 듯한, 확고하고 거대한 악의.(p.167) 기모노를 입은 여자, 셔츠 바람의 노인, 체격이 좋은 50대 남자들이 꼭 고고를 추는 듯한 자세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띤 채 쓰러져 있었다. 의자와 테이블을 차 넘어뜨리고 자신의 배설물로 범벅이 된 사람들의 온 몸에 고통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지만 그 사이에 이 모든 일에 초연히, 홀로 고상하게 서 있는 1인용 등의자를 발견한다. 질서를 잃은 방에서 홀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 등의자, 그 의자에 앉았던 사람만은 무사할 것 같다는 그의 예감은 적중한다. 그리고 그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오사와 히사코를 보자마자 직감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형사는 그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오사와 히사코를 중심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집집마다 하나쯤 있을 법한 스캔들이나 가정 내 불화 등 가족만이 연관된 뭔가도 없었다. 뭘 찾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희망이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미궁 속으로 빠져들던 수사는 사건이 발생한 인근 빌라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힌 한 남성이 자살하면서 종결된다. 당시 그가 쓰고 있던 야구 모자와 비옷이 물적 증거로 나왔지만 그가 왜 독이 든 술과 주스를 아오사와 가로 가져갔는지 동기가 명확하지는 않았다. 진범이 따로 있을 거라는 의혹은 해소되지 않은 채 사건은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아슬아슬하게 죽음을 면한 사이가 마키코라가 여자가 당시 사건을 자세히 기록해 책을 출간한다. <잊혀진 축제>라는 이름의 픽션도 논픽션도 아닌 책. 사이가는 그 당시 마을의 생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녹취를 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책의 몇 가지 사소한 부분이 사실과 다랐다. 고의였을까? 그 책을 볼 누군가, 특정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p.72) 



사건 당시 초등학생이던 사이가는 그 사건에 관해 쓰는 걸로 그 사건의 존재를 인정하고,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범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범인을 향해 그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써 전달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 메시지를 알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책이 나오고 1년쯤 지나서 기묘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군요. (...) 

귀사의 책을 읽었는데 혹시 작가는 사이가 마키코 씨 아닌가. 예전에 알던 사이인데 본인에게 연락을 하고 싶다. 그런 전화였어요.

<유지니아> p.293



<유지니아>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담긴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지 20년이나 지나 불분명한 기억들을 망각의 강에서 하나씩 건져 올리는 여러 명의 화자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변질되고 왜곡된 진실을 사실이라 믿는 이들이 하나씩 꺼내놓는 퍼즐 조각들은 그런 이유로 서로 맞을 수가 없다. 그 퍼즐 조각들 사이로 벌어진 간극만큼 <유지니아>는 불길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또 그만큼 눈부시게 아름답고 기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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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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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지기 전에 올게요."오빠가 엄마에게 소리쳐 말했다. 그리고 문간에서 다시 몸을 돌려 나를 보더니 손인사를 했다. 이후로 나는 이 기억을 두고두고 되풀이해 떠올릴 것이다. 기억 속 오빠의 팔이 들려 올라가지 않을 만큼, 아니 우리가 애초에 작별 인사를 나누기는 했던지 의심될 만큼. <그날 저녁의 불편함> p.16


"어두워지기 전에 올게요." 하지만 집을 나선 맛히스 오빠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날씨가 풀려 약해진 얼음 틈으로 빠져 저수지의 바닥에 가라앉아 버렸다. "너희 형제가 죽었다."며 느닷없이 집으로 쳐들어온 동네 수의사 아저씨와 함께 들이닥친 상실과 슬픔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야스 가족의 모든 것을 부수어 버렸다. 맛히스가 죽었다는 아저씨의 말을 들으며 야스는 개수대 옆 갈고리에 걸린 채 추위에 뻣뻣하게 굳어가는 수건들을 바라보았고, 엄마는 욕조 물 위에서 수건을 둥글에 말아 쥐었다. 동생 하나는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맛히스 오빠가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날, 하나는 응접실에 나와 있는 오빠의 관을 손마디로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만하면 됐어. 장난 그만 쳐, 오빠."


맛히스 오빠가 죽던 해 야스는 열 살이었다. 오빠가 죽은 뒤부터 코트를 벗지 않았고 똥을 누지 않았다. 야스는 그 무엇도 잃지 않기로 작정한 참이었다. 단짝 친구가 "너의 코트에서 젖소 냄새가 난다."고 말할 때에도 아빠가 코트를 확 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할 때에도 코트를 벗지 않았고, 배가 부풀어 가위로 배를 찌르는 것 같이 아파도 고통을 참았다. 야스의 엄마도 장남을 잃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고 곡기를 끊어버렸다. 몸은 날로 말라가고 퀭한 눈은 나날이 움푹 들어갔으며 "죽고 싶다"는 말을 계속했다. "죽고 싶어. 이만하면 충분히 살았어. 내일 내가 차에 치여서 로드킬당한 고슴도치처럼 짜부라진다면 기쁘겠어."(p.280)  벼랑 끝에 몰린 온 가족은 모두 위태로웠다. 


엄마는 오믈렛을 덜면서도 나를 한 번도 만지지 않는다. 우연히 몸이 닿지도 않는다. 나는 한 발짝, 또 한 발짝 물러선다. 슬픔은 사람의 척추까지 올라온다. 엄마의 등은 점점 더 굽어간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 p.80


엄마는 남은 아이들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계속 하는데도 그저 외면한다. 동물을 학대하고, 자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버려둘뿐이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을 읽는 동안 내내 바랐다. 엄마가 야스의 손을 잡아주길, 그저 한 번 세게 안아주길. 심지어 구제역이 발생해 기르던 소들을 살처분하기에 이를 때에도 아이들이 그 끔찍한 광경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이, 엄마는 양손에 보온병을 들고 문가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그저 그냥 서 있었다.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무거웠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게 너무도 고단하고 힘겨웠다. 읽다가 중단하길 수 차례, 하지만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과 상실이 만든 폐허 속에 야스만 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고 이 이야기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가볍게 느껴질만큼 깊은 슬픔과 상처가 담긴 이 소설은 내내 차분하고도 순수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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