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보다 몽롱 - 우리 여성 작가 12인의 이토록 사적인 술 이야기
허은실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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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영롱보다 몽롱>을 읽는 내내 철저하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나'를 기억해냈다. 그 기억은 '떠올렸다'거나, '생각났다'기보다 '되찾았다'고 하는 편이 맞을 정도로 육아를 하는 동안 강탈당한 즐거움이었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갑자기 잊었던 기억을 되찾아 머리에 강한 타격을 받은 것처럼 자못 충격적인 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술을 즐기는 사람이었는지 기억나 버렸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았던 '클라우디 베이 샤도네이'여, '월계관 준마이다이긴죠'여... 우리 안 본 지 너무 오래 되었구나. 지금 우리집 냉장고를 잔뜩 채운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 치즈, 요거트 등이고 거기에 주류라곤 가끔 세 아이 독박육아를 하다가 너무 분노를 느낄 때 분노 진화용으로 들인 편의점 맥주가 전부다. 여성 작가 12인과 술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영롱보다 몽롱> 속 작가들이 술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읽으며 나의 순간들도 더듬어보는, 애틋하고도 다정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눈이 백화처럼 소복수박 쌓이는 밤, 됫병으로 사 두고 데워 먹는 백화수복은 또 어떻고. 백화수복은 이름조차 터무니없게 아름답다. 주문 같고 기도 같고 축복 같아, 백화수복 수복강녕 중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 위장을 찌르르 핥으며 내려가는 알코올의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그 강렬한 실존의 감각. 생각해 보라, 우리가 내장기관을 감각할 때가 살면서 얼마나 있는가. 이슬처럼 사라질 인생. 한잔 술의 즐거움도 내쳐 버리면, 서글프지 않은가. 

에세이 추천 <영롱보다 몽롱> p.31



 언젠가 술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 언제가가 현재에 해당되는 사람도 꼭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에세이 <영롱보다 몽롱>에 첫 번째로 실린 '언니와 함께 술을' 에는 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감명 받을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무엇보다 빈 위장을 찌르르 핥으며 내려가는 알코올의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그 강렬한 실존의 감각. 생각해 보라, 우리가 내장기관을 감각할 때가 살면서 얼마나 있는가. 이슬처럼 사라질 인생. 한잔 술의 즐거움도 내쳐 버리면, 서글프지 않은가.' 야근을 마치고 친구 몇몇과 앉아 첫 술잔을 비우면 그 술이 식도를 따라 타고 흘러내려가며 온 몸의 세포를 깨워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회사에서 내내 죽어있던 '회색'인 나는 그 술 한잔이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색빛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빈 위장을 찌르르 핥으며 내려가는 알코올'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내가 살아있음을 강렬하게 감각하며!



 


시간이 멸한 나보다 더 많은 나...... 더 많은 나. 더 많은 나. 그걸 더 많은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온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고, 한 조각씩 존재한다. 타인을 대할 때 말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을 대할 때도. 조각, 조각, 조각. 그 숱한 조각들이 간신히 엉성하게 붙어 있을 수도 있다.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가 버리는 조각도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나, 그리고 토파즈에 우리를 초대했던 친구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어딘지 결락된, 어딘지 희미한. 

에세이 추천 <영롱보다 몽롱> p.148



세 아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문득 내가 부들부들 화나는  과거의 장면들이 몇 있는데, 그중 복직 후 엄청난 워커홀릭이던 팀장 밑에서 일하며 엄청난 개고생을 했던 때다. 워커홀릭 팀장 밑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새벽 5시에 출근하고 그날 새벽 1시에 퇴근한 적도 있다. 그 사람이 가진 여러 몹쓸 버릇 중 하나가 업무 시간중이 아닌 퇴근때마다 '긴급' 회의를 소집하던 거였는데 그로 인해 아이가 세 살을 맞던 생일 때 주문했던 초코 케잌을 찾지 못했고 밤 열한 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쿨하게 퇴근했으면 될 일인데, 왜 그 시절의 나는 그러질 못했을까.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다. 그건 온전한 내가 아니었다. 시간이 멸한 수많은 내 조각 중 하나, 시간이 마땅히 멸하고 지금은 없는 나의 한 조각... 아직도 그 시절이 나에겐 상처였나보다. <영롱보다 몽롱>을 읽는 동안에도 그때의 기억으로 씁쓸했다. 하지만 그건 온전한 내가 아니라고, 나에게 엉성하게 붙어 있었던 어떤 한 조각이라고, <영롱보다 몽롱>이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다정히 어루만져주는 듯했다.



오해라는 것을 푸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당시의 나는 많은 것에 지쳐 있었고, 그 에너지 자체가 고갈된 시기였다. 당분간 그냥 그대로 두자, 기다려 보자 한 것이 뭉텅, 세월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어쩌다 삐긋해 버리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니 소원함에 서운해 하지도, 인연에 연연하지도 말 것. 그저 시절인연인 것이다.

에세이 추천 <영롱보다 몽롱> p.20



결혼 전의 나는 지금보다 좀 더 화려했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멋있는 것들을 보며 지냈다. 그렇게 화려한 시간들 속을 부유하다보면 반대로 속은 텅 비어버리는 때가 많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해도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기도 한다. 사람 만나는 것에도 지치고 화려함에도 지친다. 그랬던 당시의 내가 흘려보냈던 많은 '시절인연'에 대해 돌이켜보았다. 그때, 술과 함께 했던 많은 인연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취기, 그 광기와 퇴폐들, 유혹과 방탕과 멸망과 악마들......'(p.103)' '술병 뒤에는 정말로 허무와 슬픔과 기억(p.103)'만 남는걸까? 에세이 <영롱보다 몽롱>을 읽고나니 더는 맥주에 손이 가지 않는다. 엄마의 자제력을 시험이라도 하듯 날뛰는(!!!) 세 아이에 향한 분노를 긴급 진화해주던 '고마운' 맥주에 말이다. 술에 대한 취향도 잃고, 분노에의 자제력도, 관용조차 잃어버린건가 싶어 서글퍼진다. 내일은 마트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사와야겠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영롱보다 몽롱>을 펼쳐 함께 홀짝 홀짝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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