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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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의 시작 부분이다. 언젠가 산문집을 내게 되면 이 단락으로 시작해야지 하는 결심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이십 대 초반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첫 몇 문장을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 한동안은 소원했으나 그전까지의 나를 낱낱이 알고 있는 나의 일기는 내가 왜 우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해줄 것이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8~9



작가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작가 그 자체라던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작가 박서련이 써온 일기 중에서 일부를 엮어낸 에세이다. 작가의 좀 더 내밀하고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원래 남들 읽으라고 쓴 일기보다는, 남들이 읽을 줄 모르고 쓴 일기 보는 재미가 쏠쏠한 법! 예전에 <더 셜리 클럽> 출간 기념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진행자였던 편집자가 질문을 하면작가의 대답이 시작하기까지 평균적으로 약 8초의 시간이 걸렸는데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을 읽고 나니 살짝 납득이 가더라는. 일단 일기에 비속어가(ㅋㅋㅋㅋ) 적지 않게 등장한다. 아마 라방때 자체 필터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아무튼 작가의 정말 사적인 사생활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다.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시간이 날 때 뭘 하는지, 어떤 연애와 이별을 했는지, 술자리에서는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그리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작가님의 방이 주기적으로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 이미 가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웃음이 빵 터지는 문장들이 아주 많았는데, 몇 가지만 발췌해보자면...


"없었던 일로"는 소위 '칼로리컷' 다이어트 보조제다(나는 기본적으로 소화제라고 믿고 있다). (...)제품명이 멋지다. 머음껏 먹고,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든다는, 참으로 멋진 사고방식에서 나온 작명이 틀림없다. 물론 어떤 일도, 이미 일어난 일들은, 심지어는 상상된 일들 중 일부 또한, 결코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39



웬 남자한테 잡혀 수박 모자이크병에 관한 인터뷰를 '당했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무늬가 있는 수박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인터넷에서 본 것 같네요. (...) 이런 수박을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요? 걱정되지 않으세요?뭐, 맛만 있으면 그만이 아닐까요......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169



충격파치료사 선생님은 치료 도중 "앗, 여기가 특히 안 좋으시구낭. 그럼 이 부분 위주로 지질게요?" 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지질'이 너무 자연스럽게 '조질'로 들렸기 때문에('조지다' 역시 표준어라도 하지만) 정말로 으스러지도록 조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천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291



그녀가 기본적으로 소화제라고 알고 있다는(ㅋㅋ) 다이어트 보조제의 작명에 대한 생각, 모자이크병에 걸린 수박이라도 맛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반문하는 모습, 아픈 허리를 치료하던 도중 '지진다'는 말을 '조진다'로 들린다는 에피소드 등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읽다가 여러 차례 빵 터졌다. 


 


나는 평소에 작가들이 글쓰기적 시간의 바깥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참 궁금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배달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고,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웃고, 울고, 또 기쁘고 행복해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노력도 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책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이사이 쓰는 일에 대한 고민과 힘듦에 대해 언급될 때면 살짝 경건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단락...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집을 만들어가듯 문장을 지어내고 단어를 쌓아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독자의 자리에 서서 상상하는 것조차 참 어렵다. 작가들의 노력에 비해 책들이 너무 쉽고 소비되고 평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지인인 혜언니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내가 완성하길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세상에 원치 않는다고. 그러니까 안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p.146)"라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끝까지 써내야 한다고, 아무도 원치않는 이 글을". 부디, 이 세상의 모든 작가가, 아무도 원치 않는 그 글들을 끝까지 써내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이런 일기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글을, 가장 나 자신인채로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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