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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다가 웃었다 - 김영철 에세이
김영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평점 :

초등학생 때 건너 건너 아는 지인 찬스로 KBS 방송국에 견학 간 적이 있다. 방송국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기서 무얼 봤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딱 하나 생각나는 건 한 코미디언이 성큼성큼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물쭈물 서성대는 나와 남동생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용기를 그러모아서 "함께 사진 찍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는 거다. 키가 멀대같이 컸던 그분은 내 말을 듣자마자 핑크빛 잇몸이 다 드러나게 활짝 웃더니 굉장히 친절한 태도와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함께 사진을 찍어주셨다. 그가 바로 김영철이다. 당시의 좋았던 기억 덕분인지 나에게 김영철은 늘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후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심지어 숨만 쉬어도 악플 폭격을 받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고 참 가슴 아팠지만, <진짜 사나이>를 통해 대중에게 그의 진면목을 알리게 되어 참 기뻤다. 이번에 나온 에세이 <울다가 울었다>는 '사람' 김영철의 속 깊은 이야기가 담겼다. 나처럼 김영철을 좋아했던 분들이나 혹은 지금 성장통을 겪으며 인생의 진창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다.
걱정을 내려놓으니 사는 게 편해졌다. 약속 시간에 늦었으면 앞으로 늦지 않으면 되고, 오늘 간 식당의 음식이 맛이 없으면 다시 가지 않으면 되고,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만나지 않으면 되는 거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떡할까 하는 '어떡해'를 인생에서 지우기로 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시간 낭비와 감정 소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따스함을 잃은 채 냉정해지기로 한 건 아니다.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고, 오늘을 살겠다는 거다. 그렇게 살고 있다. 카르페디엠,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련다.
p.120
힐링책 <울다가 웃었다>를 읽으면서 나는 다짐했다. 김영철처럼 살겠다고. 걱정할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쓰고 한 페이지라도 더 읽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나쁜 일이 벌어지면 어떡할까 하는 '어떡해'를 나도 인생에서 지우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책에 둘러싸여 있고, 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세 아이가 내 곁에 있으니 부족한 게 하나도 없는데 왜 그리 전전긍긍하며 살았을까. 그건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유쾌하게 살겠다고, 명랑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아서 그렇다. 늘 지나치게(?) 밝아 보이는 그에게도 왜 힘들고 슬픈 시절이 없었겠나. 긍정 에너지가 늘 한도초과인 것 같은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다만 밝아지기 위해, 유쾌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거다. 자신의 밝음과 유쾌함, 명랑은 수없이 노력하고 연습할 결과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에게 고마웠다. 이건 노력의 문제다. 내 삶의 쾌적함은 내 노력 여하에 달렸다!
다짐도 맹세도 날짜 맞춰서 해봤자 지켜지지 않는다. 언제든 딱 마음먹었을 때, 그때 바로 시작하면 된다. 나는 모두가 시간에 쫓기지 말길 바란다. 숫자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스스로 시간의 주인이 되어 현명하게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몸에 걷기가 좋으니 걷는 시간도 만들고, 주변인에게 안부 문자도 자주 하고, 어학 공부도 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문득 결심하길 바란다. 소소하게, 작은 것부터 하나씩 그렇게 말이다.
p.124
나는 은행원 출신이라 숫자에 강하다. 은행은 오로지 숫자로 돌아가는 집단이다. 전일자의 모든 영업 현황이 일목요연한 보고서로 제공된다. 영업 수치만 뽑아내는 시스템이 따로 있어서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자료를 발라낼 수도 있다. 최다 신용카드 신규 권유직원은 누구이고, 펀드며 방카며 예금 신규 1등은 누구인지 다 나온다. 은행원은 숫자에 갇혀 산다. 시간에 쫓겨 산다. 은행 다니면서 그런 게 참 싫었는데 회사를 제 발로 걸어 나오고도 그 짓을 하고 앉았으니, 에세이 <울다가 웃었다>를 읽으며 나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왜 그러고 살고 있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떤 책을 읽고 또 무슨 공부를 하고, 제2의 인생을 야무지게 살아내겠다는 다짐은 어쩌면 나를 은행을 나와서까지 은행보다 더 시간에 갇혀 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확산세로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는 막내와 공원에 가서 걷기도 하고 여유롭게 책도 읽고 소소하게 작은 것 하나씩을 사소한 노력을 들여 해내고 있다. 이게 바로 저자가 말한 좋은 책이 가진 선한 영향력이며 독서를 해야하는 이유가 아닐까. 에세이 <울다가 웃었다>가 나에게 한 일이기도 하다.
권태롭지 않기를 소망하자.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하고 기대하자.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건 꿈이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쪽으로 살아가게 된다고 믿는다.
p.155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기분이 좋지 않고, 짜증이 나고, 덜 행복한 것 같아도 일단 그냥 행복하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그럼 행복해질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p.34
2013년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을 다녀온 뒤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그 덕에 2016년 호주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을 무사히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에 참여한 사실을 미국 코미디 쇼 기획 팀이 보게 되었고, 2021년 미국 파일럿 프로그램 섭외를 받게 되었다. 영어를 잘하는 웃기는 놈이 되는 것이 큰 꿈이었다. 지금 나는 그 꿈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웃기지도 못하고 안 될 수도 있지만, 도전 그 자체가 즐겁다.
p.174
행복한 일이 나에게 생기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 먼저 나서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생각해 보기, 권태로움에 빠질 사이가 없도록 문득 결심하고 또 바로 꿈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보기! <울다가 웃었다>를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하는 모든 결심들, 생각들은 해낼 수도 있고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성공 여부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될 수도 있고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도전 자체는 즐거운 거니까.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 오늘부터 김영철처럼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