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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평점 :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자 밸런스가 딱 잡힌 맛있는 한 끼를 먹은 듯한 만족감이 부풀어올랐다. 대만풍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요리가 담긴 그릇에 '셜록 홈스'식 추리 가루를 솔솔 뿌리고 '피철철 스릴러 소설' 조미료를 한 스푼 넣은 다음 대만식 유쾌 통쾌 재미료(?)까지 듬뿍 넣어 매콤하고도 개운하니 간이 딱 좋은 요리 같은 추리소설,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정말이지 정신없이 읽어내렸다. 푸얼타이 교수, 뤄밍싱 경관, 거레이 변호사, 인텔 선생까지 총 4명의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 나름의 논리를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각각 색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서로 침범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무엇 하나 빠져서는 안 될 토핑처럼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이라는 요리 안에서 조화롭게 서로 잘 어우러졌다. 맨 처음 푸얼타이 교수가 등장해 막힘없이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듯 보여 대체 나머지 300여 페이지는 무슨 내용으로 채워지는가 싶었는데 그가 세워놓은 추리는 다음 타자 뤄밍싱 경관에 의해 보기 좋게 박살 났다. 거레이 변호사, 인텔 선생까지 차례로 활약하며 이전 타자가 지어놓은 추리를 무너뜨리고 새로 쌓아올리는 것을 관전하는 재미가 탁월한 장르소설 도서다!
"내 관찰력과 추리력은 확실히 남다르죠. (...) 형사 사건에서 난 항상 벌새의 날갯짓을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경찰들은 보잉 777이 지나가도 보지 못하죠."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p.65
타이완 중앙산맥에 위치한 캉티 호수, 그 신비로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60미터 절벽 꼭대기에 최고급 시설을 자랑하는 캉티뉴쓰 호텔이 자리 잡고 있다.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호텔 내 호숫가의 산책로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피살자는 다름아닌 캉티뉴쓰 호텔의 사장 바이웨이둬. 수십억의 몸값을 자랑하는 촉망받는 기업가가 하루아침에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으로 보이는 산책로 인근 CCTV에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찍히지 않았고 절벽과 호수로 둘러싸여 총을 쏠 만한 자리도 확보되지 않아 사건은 오리무중 상태다. 이때 절친 화웨이즈의 약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캉티뉴쓰 호텔에 묵고 있었던 푸얼타이 교수가 사건 해결을 위해 모인 수사단에 난입해 단박에 사건을 명쾌하게 해석해낸다. 남다른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그간 경찰조차 해결하지 못한 많은 사건의 범인을 잡아낸 그가 "범인은 OOO입니다!"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그의 추리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경찰이라고 다를 거 없어. 그저 밥벌이야. 설마 영화랑 착각하는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유머를 날리고, 갑자기 차에 날개가 돋쳐 날아가고, 아무렇게나 총을 난사해도 악당만 명중시키고? 틀렸어. 그랬다간 고소당하기 딱 좋지!"
"핵심은 자신을 지키는 거야. 인사고과와 인맥이 제일 중요해. 좋은 기회를 잡아서 승진하면 장땡이야!"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p.147
다음 타자는 뤄밍싱 탐정이다. 전직 경찰인 그는 재직 당시 죽기 살기로 경찰일에 매달렸지만 결국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매춘부 샤오쉐리와 암묵적인 거래 계약을 맺고 조직폭력배의 정보를 입수하던 중 발생한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경찰 옷을 벗게 된다. 어느 날 잊고 살았던 샤오쉐리가 찾아와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며 은신처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샤오쉐리는 처참하게 구타당한 채 시체로 발견된다. 그녀의 휴대폰에 남은 기록 상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곳은 캉티뉴쓰 호텔! 샤오쉐리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캉티뉴쓰 호텔을 찾은 뤄밍싱은 또 다른 살인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우연히 캉티뉴쓰 호텔에 모인 네 명의 인물들, 그들이 캉티뉴쓰 호텔을 배경으로 펼치는 추리 싸움은 마치 천하제일의 무림 고수 자리를 두고 승부를 겨루는 화산논검을 연상케 한다! 완벽해 보였던 추리가 하나씩 산산조각이 나는 데서 얼마간의 희열을 느끼며 다음 타자가 쌓아올리는 추리를 관전하는 재미가 탁월한 추리소설이다. 작가 리보칭, 그의 이름을 꼭 기억해두어야할 것 같다.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르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