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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나이 듦을 기다려왔다는, 그 솔직한 고백
늙어가는 것을 기다려왔다니. 그 말이 처음엔 낯설다. 우리는 보통 나이 듦을 반갑게 맞이하기보다 조용히 감추려 한다. 생일이 지나갈수록 나이를 밝히는 일이 어색해지고, 주름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젊음을 유지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과 광고는 넘쳐나지만, 나이 들어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은 드물다. 그래서일까, 나이 듦을 기대해 왔다는 저자의 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안드레아 칼라일은 나이 듦을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본다. 어머니를 7년간 간병하며,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그는 사회가 만들어낸 ‘늙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의문을 품는다. 특히 동화 속 마녀와 같은 노년 여성의 이미지가 우리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내는 부분이 흥미롭다. 오래된 이야기들이 무심코 각인시킨 편견이,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은 날카롭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사회적 편견을 비판하는 데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칼라일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이 듦의 기쁨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강가의 하우스보트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그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자신을 비춰본다. 향기를 맡고, 새소리를 듣고, 튤립 옆 벤치에서 이웃과 대화하는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젊었을 때는 바쁘게 스쳐 지나갔을 것들을 이제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나이 드는 것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저자는 노화를 ‘쇠퇴’가 아니라 ‘확장’으로 바라본다. 육체적 변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더욱 넓고 깊어진 내면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위로나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는 말이 아니다. 자연과 삶 속에서 발견한, 그가 직접 살아내며 깨달은 지혜다.
나이 듦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늙는다’는 것을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장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그 마지막 장이 찾아오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향기를 맡고,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듣고,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될까?
앞으로 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한다면 마지막에
“나의 날들에 웃어주세요!”라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