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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이 책은 내가 걸려 넘어진 돌들로 지은 성입니다.”
기운 세고 요리를 잘하는 소녀, 튼튼하게 자라는 발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소녀, 꿈이 있고 꿈을 스스로 이룰 능력이 있는 소녀, 가부장제에 흡수되는 결혼이 아닌 공통분모를 가지고 동행할 수 있는 우정을 만든 소녀. [해방자 신데렐라]는 리베카 솔닛과 처음 만난 작품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공주로 살아가야 한다는, 누군가 머릿속에 심어 놓은 도청장치가
내 DNA 어딘가에 스며 있다가 브라운관에 비치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 캐릭터를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전달된 것은 아닌지 고민하던 시기에 만난 통쾌한 책이었다. 마치 내 어릴 적 서점 구석에서 만난 흑설공주가 그러했듯이.
두 딸들이 태어났을 때마다 느꼈던 양가적 감정. 기쁨과 슬픔.
개구리들처럼 공감할 줄 알고 공명할 줄 아는 여성이라 기뻤다. 한편으로는 여성이기에 맞딱드려야 하는 불편함과 두려움을 내 아이들도 통과의례처럼 겪어야 할 현실에 슬펐다.
그래서 리베카 솔닛의 다시 쓴 이 신데렐라 이야기가 좋았고, 좀 더 알고 싶었다.
솔닛이 이야기하는 어른과 집
어른이라는 말은 법적 성년에 도달한 사람들은 모두 단일한 범주에 속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변해가는 땅을 여행하면서 스스로 변해가는 여행자들이다. 그 길은 누더기 같고 신축적이다. (중략)
어릴 때 살던 집을 떠나서 당신만의 집을 꾸릴 때 당신은 거의 평생을 아이로 살아온 사람이다. (중략) 어떤 경우이든 이제 홀로 서게 된 사람은 어른들의 나라에 갓 들어온 이주자인 셈이고, 그에게는 이나라의 관습이 낯설다. 그는 자기 인생의 모든 측면을 스스로 전사하는 법을 배운다. 그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그 속에 다른 누가 들어올지, 자신이 가진 자결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P25
나로 만든 집을 생각한다.
아이였던 상태가 길었던 나, 엄마와의 보이지 않는 탯줄이 끊긴 지 얼마 안 된 어른의 길을 걷고 있는 나. 얼마전 동네 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일찍 독립했던 언니의 작은집. 아침에 눈을 뜨고 방문을 열면 세상이 성큼, 세상의 사람들이 성큼 문틈으로 눈으로 들어왔던 그 풍경을 생각한다.
자기 선택권과 자기 결정권을 누구보다도 빨리 가졌을 언니가 부러웠다.
나는 이주자. 살아 내기 위해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 걸어야 한다. 길을 모르기에 일단 길을 나서야 한다. 무섭기에 안전한 이불 안, 편안한 집 안에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 싶지 않다. 스스로 발견하고 만져보고 사유하고 갖고 와, 축적해 보고 싶다. 울기도 웃기도, 실수하기도 성공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걸었기에 함께 나눌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내 지도의 범위 길의 갈래를 넓힐 사람과 공간과 자연을 만나고 있다. 연결도 단절도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으로, 그리고 권리로 알아가고 있다.
솔닛이 이야기하는 전쟁 같은 삶
젊은 여자들에게서는 자신을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태도를 흔히 볼 수 있다. 젊은 여자가 유난히 표적이 되기 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나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지나가는 차를 세울 테고, 차도로 뛰어들어갈 테고, 소리를 지를 테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릴 것이다. 위험에 대한 나 자신의 판단을 존중할 테고, 그 상황을 벗어나도록 해줄 법한 행동이라면 뭐든지 취할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어렸다. 우리는 젊은 여자라면 소란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고, 무엇이 괜찮은 상황인지는 남들이 결정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심지어 무엇이 현실인지도 남들이 결정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P84
대화 중 딸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세계관을 느낄 때가 많다. 홀로 길을 걸을 때 자신들은 누군가에 의해 납치되거나 위험할 상황에 처할 수 있기에 아직 나와 떨어질 수 없다는 얘기를 가끔 한다. 여기서 항상 나는 갈등한다. 아이들의 독립성을 위한 배려로 스스로 해야 할 기회를 줄 것인가, 아이들의 안전성과 준비되는 시간에 관한 아이들의 개인차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인가를.
솔닛과는 달리 젊은 여자의 시절을 지난 나는 그녀가 열거한 문장의 상황이 된다면, 얼어붙을 것이다. 하지만 안다. 의식적인 노력,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차도로 뛰어들어가고 소리를 지르고 남의 집 문을 두드릴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는 것을.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상황에 나와 내 아이들을 두지 않는 것이지만.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끼면 벗어날 줄 아는 감(촉)과 행동력 이전에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는 습관도 가져야겠다는 것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말하는 것, 행하는 것.
솔닛이 말하는 독서
미녀를 쫓던 신들은
항상 나무에서 경주를 끝냈다. – 정원, 앤드루 마벌
신화 속 여자들은 줄곧 다른 것으로 변한다. 왜냐하면 여자로 존재하는 것은 너무 어렵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프네는 아폴론을 피해 달아났다가 월계수로 변한다. P129
프로듀스 101의 남성 버전과 여성 버전의 화면, 가사, 대상을 보여주는 카메라 워크에서 불편함을 느꼈다. 나중에 책으로 확인한, PD의 이야기(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남성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에 소름이 돋았다. 이를 알고 바라보는 것과 이를 모르고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책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은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유린당하는 여성을 제시한다. 충격을 받은 것은 신화 속에서 숨쉬듯 자연스럽게 서술되어 있고. 더 충격적인 것은 내 아이가 지금 그리스로마 신화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무의식 속에 새겨질 여성이라는 스스로 사라지고, 희미해져야 하는 선입견, 삶의 루틴이 생길까 봐 두렵다. 나는 어떻게 아이와 이야기하면 좋을까?
그 시절 나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읽는 잡식성이었다. 젊은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때가 많다. 자신이 어떤 기준을 갖고 있는지, 무엇이 자신에게 자양분이 되는지, 무엇이 자신의 의욕을 꺽는지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차차 책의 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가는 법을 익혔고, 지형지물과 계보도 익혔다. P132
사유의 방에 머물 수 있는 것은 책이라는 물성을 안고, 텍스트를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접하고, 머리로 생각한 다음, 입으로 내뱉었기 때문이리라. 남인 부모, 내가 아이에게 아니라고 말하기 보다는 아이와 따로 또 같이 읽는 시간과 경험을 늘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목소리에 실을 수 있는 자기 기준, 자기 이야기, 자기의 욕구를 충분히 갖는 기회를 갖는다. 그런다음 마치 각자의 길을 달리다 휴게소에서 만나듯 서로 만나 관점을 주고 받는, 인풋 후 아웃풋할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대화의 장소를, 그늘을 만들어 놓는게 좋겠다.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가청성, 신뢰성, 영향력이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운명대로 살다, 여자의 이 말을, 나는 손상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손상이 있었어도 그걸이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을 수행하는데 저해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중략)
흔히 낙원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런 의무가 없는 곳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낙원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낙원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종착지가 아니라 우리가 길잡이로 삼아서 항해해야 하는 북극성이다. P300
페미니즘을 떠나 자기만의 방, 철저히 혼자가 된 사유의 방에 앉아 여성을 둘러싼 프레임을 다각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제는 사유의 방 건너편으로 가야한다. 목소리를 내어 서로의 성찰을 나누는 시간,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홀로 간직할 책이 아닌, 여럿이 소리를 내보아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