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호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23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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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온다~

범 내려 온다~

정림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러렁’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어졌다. –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 중에서

 

판소리 수중가의 대목이자 가수 이날치의 노래 <범 내려온다>가 떠올랐다.

레트로의 귀한, 고전을 현대적인 재해석한 <범 내려온다>의 뮤직비디오.

현대판 호랑이는 <범 내려온다>의 뮤직비디오 속 무용소들의 모습이 아닐까? 어쩌면 늘 곁에 있는, 깊은 숲 속이 아닌 우리의 생활 속 스쳐간 사람들 중 하나, 나의 이웃이거나 친구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했다.

 

어린이책 <루호>는 그런 상상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동네의 쓰러갈 듯한 한옥집 ‘고드레 하숙’. 구봉이 삼촌과 루호, 달수와 희설이 살고 있다.

주인공 루호는 초록가득한 식판을 보며 ‘고기’타령을 하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이다. 특이한 아이, 사실 사람모습을 한 호랑이이다. 어느날, 마을로 강태 아저씨와 지아 남매가 이사가 오면서 평화롭던 동물사람들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루호>의 세계관은 판타지이지만, 우리의 세계와 닮아 있다.

어린이들이 있고, 어른들이 있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어른들은 지켜주는 이, 성장을 도와주는 이도 있지만, 위협이 되는 이도 존재한다. 어린이들은 자신 스스로의 모습과 자신이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 늘 고민과 갈등을 한다. 어른들 역시 삶의 이유와 무게중심에 따라 행동을 한다. 독자인 내게는 보이는,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에게는 보이지 않아 방황하며, 곤경에 처하며 다시 일어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었다.

 

선택과 행동

 

그들은 스스로 선택 했어. 용기를 내어 어떻게 살지 결정 한거야.

우리 자신을 만드는 건 바로 그런 선택들이야.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도,

호랑이이자 사람인 너도 그렇지.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p60

 

삶의 선택권이 누구에게 있을까? 바로 나.

우리는 모든 순간이 선택이다. 아침 시계종이 울리면 ‘눈을 뜰까?’ ‘조금만 더 잘까?’ 하는 갈등에서부터 말이다. 살아지는 데로 사는게 아니라, 살고 싶은 데로 살아가기 위해 빵 고르듯 선택을 하고 산다. 숲을 떠나고자 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고자 한 루호의 조상 호랑이들도 선택을 한다.

 

용기가 필요해!

루호가 한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루호는 우리가 늘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은 반만 맞았다.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택을 해내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P159

 

모든 사람이 선택을 한다. 선택은 다양하다.

 

그러나 나의 질적인 삶, 내가 원하는 삶, 공동체적 삶에는 의식적인 선택이 우선 중요하다.

용기 있는 행동. 선택은 쉬울 수 있지만 행동은, 실천을 어렵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행동의 원동력 용기가 필요하다.  

 

갈등은 왜 생길까?

“우리가 왜 사람한테 쫓기는 신세가 된 것 같니? 우리가 훨씬 더 크고 힘도 센데,

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까?” P155

 

호랑이들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호랑이를 우리 그리고 나로 바뀌고 화살이 되어 나에게 날라왔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는데,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원망한다. 탓을 한다. 그것에 루호는 정면으로 마주하고 답을 찾는다.

믿음의 부재

“우리가 서로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야.” P155

 

“걔들, 사냥꾼의 아이야”, “그 아이는, 호랑이야”

호랑이는 인간을, 인간은 호랑이를 경계한다. 좋은 모습, 다정한 모습을 알고 있지만, 우려하는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아이들도 어느새 상대를 의심한다. 스스로의 눈으로 목격한 모습마저 믿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의 확인하지 않는 사실, 일부의 의견이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는 못이 되어 박힌다. 단지 확률일 뿐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눈과 내 발로 확인하고 확인하고, 그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전하면 된 것이었는데. 믿는다는 것도 결국 용기가 필요하다.

 

신념대로 전념하는 삶

‘우리의 선택이 우리 자신을 만드는 거야.’ P181

“날 알아본 게 너라서 다행이야.”p189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정원을 가꾸듯. 의미 있는 가치가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찾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나를 알아봐주는 당신이 있는 곳. 때론 즐길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 함께 놀 수 있는 곳, 루호가 찾을 세상이고 나와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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