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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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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타고 나는 것인지 아니면 양육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논쟁을 하는 과학자나 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나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가 양육과 본성, 또는 환경과 본성의 개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며 자녀교육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본성에 대한 가치관을 적용하며 살고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뇌, 유전자, 마음의 작용에 대한 과학적 성과들이 쌓여가고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 앞에 더 바짝 다가선 문제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인지심리학과 언어심리학자로 유명한 스티븐 핑거는  인간의 본성은 타고 난다는 입장에서 빈서판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스티븐 핑거가 비판하는 이론은 세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도 같아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빈서판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몸에 신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자아 또는 영혼이 거주한다는 기계속의 유령이론, 마지막으로 인간의 마음은 자연 상태에서는 선한데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탐욕이나 폭력 등의 본성이 생겨난다고 주장하는 고상한 야만인 이론이다.

스티븐 핑거는 이 세 이론을 모두 빈서판이론 아래 두고 이 빈서판이론이 우리의 사고와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있는지, 또 빈서판이론이 인간본성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를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빈서판이론은 모든 인간이 백지상태로 태어났음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의 도덕적 토대를 마련해줌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빈서판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전쟁, 탐욕, 아동과 소외계층의 무관심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러한 주장 이면에 인간본성 이론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불평등하게 태어남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으며 사회의 개혁이나 교육을 통해 인간을 보다 나은 사회로 이끄는 모든 노력들이 무위로 돌아가고 인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의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그 모든 두려움은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다고 비판하고 있다.

빈서판이론은 지금에서는 언뜻 낡은 이론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이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이론을 믿을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은 본성을 타고 태어나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 발전해 나간다는 생각이 일반적일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진리는 극단적인 본성이론과 극단적인 양육이론 그 중간 어디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극힌 최근의 일이며 오랜시간동안 빈서판이론은 사회제도, 교육방침, 정치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많으나 획일적인 유토피아로 흐를 수 있는 이론적토대가 될 수도 있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물론 인간의 본성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봐도 유전자 결정론이나 우생학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스티븐 핑거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인간의 평등이나 진보, 도덕이나 윤리 등의 가치가 부정되거나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켜온 인간의 가치들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며 현재 마음, 뇌, 유전자에 대한 과학적 발전들이 그러한 이해를 도와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빈서판이론을 비판하는데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환경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이나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유전자쪽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엄청난 양을 할애한 후 결론이 너무 싱겁다는 생각도 들지만 읽는이의 부족함으로 일단 돌려본다.

책은 본문 내용만 75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읽기 전에 먼저 질릴 판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인간본성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검토해보면 스티븐 핑거가 비판하는 기계속의 유령이론에 근접할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는 생물학적 토대위에 서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마음이라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 가슴 속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랑이나 모성, 기쁨이나 슬픔 따위의 모든 감정들이 사실은 뇌의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며 진화의 역사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 나온 것이라는 개념에도 어느 정도 동감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러한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거나 인간 삶이 무의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오히려 진화역사 속에서 나타난  인간뇌의 놀라운 힘과 잠재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고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이성에 놀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종교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종교에서 보는 인간의 본성이야말로 마음속에 영혼이 있다는  기계속의 유령이론이므로...

생물학적 입장에서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인간본성이론은 동양의 관점에서는 성악설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 유토피아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낭만적인 환상이 될 판이다.

그러나 인간본성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 본성을 주관할 수 있는 이성을 같이 발전시켜 나오지 않았는가?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사회가 보다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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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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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면,

길들여진 쥐가 집안을 뛰어다니며 이불을 갉아대고, 카카두(앵무새의 일종)가 널어놓은 빨래에서 단추를 모두 떼어내고, 원숭이가 서재를 엉망으로 만들고, 기러기가 값비싼 양탄자위에 배설물을 떨어뜨리고, 자기의 아이를 거센 동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창살로 만든 우리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또 당신이라면,

당신에게 연정을 품은 갈가마귀가 당신을 위해 벌레를 잡아와 입어 넣어주고, 당신을 엄마라고 생각한 새끼 기러기가 한시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 거위새끼들이  졸졸 따라다니고, 목소리를 알아들은 갈가마귀가 당신에게 날아오고, 충성스런 개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반응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첫 번째 경우라면 틀림없이 짜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두번 째 경우라면 조금 귀찮긴 해도 매우 색다르고 이상한 느낌이 들것이다.

이 책을 쓴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들을 키우는 일은 커다란 짜증과 손해를 동반하는 일이라고 책의 첫 장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일을 왜 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저자는 자신을 알아보는 동물들과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누며 교감을 나누는 일은 그런 모든 짜증과 손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경이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동물들과 같이 생활하며 경험하고 느낀 일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담겨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을 보통의 인내와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보여주는 동물의 세계는 일견 흥미진진하고 유쾌하면서도 일견 사람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는데에 놀라게 된다.

갈가마귀 사회를 묘사하는 장에서는 불륜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새와,  높은 서열의 수컷갈가마귀와 약혼해서 신분상승에 성공한 암컷갈가마귀가 예전에 자신보다 신분이 높았던 갈가마귀들에게 실력행사를 하며  우쭐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너무나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고 사실은 인간의 모습 속에 동물적인 본성이 남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의 상식을 깨는 동물들의 모습도 많이 소개되는데, 순하다고 생각하는 토끼나 비둘기 노루들은 실제로 싸울 때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보통 사납다고 생각하는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약자가 자비를 호소하는 경우 필요이상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는다.  공격하고 싶은 본능과 그 본능을 자제하려는 또 하나의 본능을 같이 발달시켜 쓸데없는 손실을 줄이려는 쪽으로 진화되어 온 것이다.

약자를 공격하는데 있어 그다지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야생동물들이 보여주는 자제력이 놀랍기까지 하다.저자가 야생 새들을 쫓아 날아가려는 새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지붕 꼭대기에서 깃발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대고, 거위의 엄마로 각인되어 몇 시간씩 어미거위 목소리를 흉내내며 오리걸음으로 걸어 다니다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뻔 했다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실소가 터지는 동시에 학문에 대한 저자의 열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상에 대한 열정 없이 이루어지는 학문적 업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만약에 있다면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진실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동물들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애정이 넘쳐나는 책. 

읽다보면 인간이 아직 덜 인간다웠을 때 그래서 좀더 동물적 본성에 가깝게 남아있었을 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인간답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책.

그러면서도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당장 작은 동물이라도 하나 옆에 두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책.

인간이 동물들과 더 많은 친밀함을 나누고 교감을 나누는 세상이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훨씬 더 즐거운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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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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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그림자와 같다.  고개를 돌려보면 삶의 발목을 잡고 언제나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지거나 죽을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경우만 인간은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인간이  매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산다면 인간의 삶이 달라질까? 

24살  젊고 매력적인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한다.남자친구도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안정된 직장도 있지만 남아있는 삶이 너무 뻔한 것에 그만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1997년, 11월 21일. 그녀는 수면제 4통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그러나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발레트라는 정신병원에 있음을 발견한다. 자살은 실패한 것이다. 

자살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그녀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겠지만 병원 원장은 수면제 과다복용에 의한 부작용으로 심장에 이상이 생겨 그녀가 며칠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한다.

그 순간부터 삶과 죽음은 베로니카에게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수면제를 먹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 일과 매일 매일 다가올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발레트에는 짊어질 책임도 없고, 먹고 살기위해 싸울 필요도 없고, 미쳤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인되는, 광기의 세계가 제공하는 자유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 중에는 정말 미친 사람도 있고 미친 척 하는 사람도 있다.

베로니카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광기를 발견한다. 바깥세상에서 살면서 한 번도 밖으로 끄집어 내본 적이 없었던 만약 그랬다면 미친 사람 취급 받았을 그러한 내면의 욕망과 광기를 하나씩 끄집어내며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의지를 느낀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삶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모험심이 이끄는 삶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각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삶을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는 다분히 교훈적인 주제로 책을 마무리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자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 생각 속에는 다분히 낭만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실재적인 사건으로 직면하는 것은 다르다.

먼 훗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몇 달, 혹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어떻게 같겠는가?  당연히 삶에 대한 태도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이 의미 있으려면 삶을 지탱시켜주는 가치가 사랑임을,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젊어서 정신병원에 드나든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비정상이란 정상의 그림자가 아닐까?  죽음이 삶의 그림자인 것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항상 따라다니는 어두움이 아닐까?

삶이 햇살 찬란한 빛 앞에 서 있을 때 죽음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살면서 죽음을 자각할 수 있다면 저자의 말대로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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