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은 타고 나는 것인지 아니면 양육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논쟁을 하는 과학자나 학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일지 모르나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가 양육과 본성, 또는 환경과 본성의 개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며 자녀교육에서부터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본성에 대한 가치관을 적용하며 살고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뇌, 유전자, 마음의 작용에 대한 과학적 성과들이 쌓여가고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문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우리 앞에 더 바짝 다가선 문제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인지심리학과 언어심리학자로 유명한 스티븐 핑거는 인간의 본성은 타고 난다는 입장에서 빈서판이론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스티븐 핑거가 비판하는 이론은 세 가지다. 하나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도 같아 사회나 그 자신이 그 위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새겨 넣을 수 있다는 빈서판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몸에 신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자아 또는 영혼이 거주한다는 기계속의 유령이론, 마지막으로 인간의 마음은 자연 상태에서는 선한데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 탐욕이나 폭력 등의 본성이 생겨난다고 주장하는 고상한 야만인 이론이다.
스티븐 핑거는 이 세 이론을 모두 빈서판이론 아래 두고 이 빈서판이론이 우리의 사고와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 얼마나 뿌리 깊이 박혀있는지, 또 빈서판이론이 인간본성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를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빈서판이론은 모든 인간이 백지상태로 태어났음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의 도덕적 토대를 마련해줌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이 빈서판이 아니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전쟁, 탐욕, 아동과 소외계층의 무관심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러한 주장 이면에 인간본성 이론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불평등하게 태어남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으며 사회의 개혁이나 교육을 통해 인간을 보다 나은 사회로 이끄는 모든 노력들이 무위로 돌아가고 인간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의 두려움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그 모든 두려움은 인간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다고 비판하고 있다.
빈서판이론은 지금에서는 언뜻 낡은 이론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이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이론을 믿을 사람이 오늘날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은 본성을 타고 태어나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 발전해 나간다는 생각이 일반적일 것 같다.
저자의 주장대로 진리는 극단적인 본성이론과 극단적인 양육이론 그 중간 어디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극힌 최근의 일이며 오랜시간동안 빈서판이론은 사회제도, 교육방침, 정치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쳐온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많으나 획일적인 유토피아로 흐를 수 있는 이론적토대가 될 수도 있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물론 인간의 본성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봐도 유전자 결정론이나 우생학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스티븐 핑거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인간의 평등이나 진보, 도덕이나 윤리 등의 가치가 부정되거나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오랫동안 지켜온 인간의 가치들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며 현재 마음, 뇌, 유전자에 대한 과학적 발전들이 그러한 이해를 도와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빈서판이론을 비판하는데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환경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이나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저자 스스로는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유전자쪽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엄청난 양을 할애한 후 결론이 너무 싱겁다는 생각도 들지만 읽는이의 부족함으로 일단 돌려본다.
책은 본문 내용만 75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읽기 전에 먼저 질릴 판이지만 생각보다 쉽게 읽힌다.
인간본성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검토해보면 스티븐 핑거가 비판하는 기계속의 유령이론에 근접할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는 생물학적 토대위에 서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마음이라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 가슴 속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랑이나 모성, 기쁨이나 슬픔 따위의 모든 감정들이 사실은 뇌의 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며 진화의 역사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 나온 것이라는 개념에도 어느 정도 동감한다.
저자의 주장대로 그러한 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거나 인간 삶이 무의미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안다면 오히려 진화역사 속에서 나타난 인간뇌의 놀라운 힘과 잠재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고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이성에 놀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종교가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종교에서 보는 인간의 본성이야말로 마음속에 영혼이 있다는 기계속의 유령이론이므로...
생물학적 입장에서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인간본성이론은 동양의 관점에서는 성악설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 유토피아가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낭만적인 환상이 될 판이다.
그러나 인간본성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 본성을 주관할 수 있는 이성을 같이 발전시켜 나오지 않았는가?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사회가 보다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