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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은 삶의 그림자와 같다. 고개를 돌려보면 삶의 발목을 잡고 언제나 따라다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그림자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지거나 죽을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대면해야 하는 경우만 인간은 죽음을 바라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인간이 매순간 죽음을 의식하며 산다면 인간의 삶이 달라질까?
24살 젊고 매력적인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한다.남자친구도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도 있고 안정된 직장도 있지만 남아있는 삶이 너무 뻔한 것에 그만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1997년, 11월 21일. 그녀는 수면제 4통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그러나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발레트라는 정신병원에 있음을 발견한다. 자살은 실패한 것이다.
자살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그녀에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겠지만 병원 원장은 수면제 과다복용에 의한 부작용으로 심장에 이상이 생겨 그녀가 며칠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한다.
그 순간부터 삶과 죽음은 베로니카에게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수면제를 먹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 일과 매일 매일 다가올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발레트에는 짊어질 책임도 없고, 먹고 살기위해 싸울 필요도 없고, 미쳤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인되는, 광기의 세계가 제공하는 자유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 중에는 정말 미친 사람도 있고 미친 척 하는 사람도 있다.
베로니카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광기를 발견한다. 바깥세상에서 살면서 한 번도 밖으로 끄집어 내본 적이 없었던 만약 그랬다면 미친 사람 취급 받았을 그러한 내면의 욕망과 광기를 하나씩 끄집어내며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의지를 느낀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삶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모험심이 이끄는 삶을 다시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자각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삶을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는 다분히 교훈적인 주제로 책을 마무리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자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 생각 속에는 다분히 낭만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실재적인 사건으로 직면하는 것은 다르다.
먼 훗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몇 달, 혹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어떻게 같겠는가? 당연히 삶에 대한 태도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이 의미 있으려면 삶을 지탱시켜주는 가치가 사랑임을, 사랑하는 대상을 찾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젊어서 정신병원에 드나든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비정상이란 정상의 그림자가 아닐까? 죽음이 삶의 그림자인 것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항상 따라다니는 어두움이 아닐까?
삶이 햇살 찬란한 빛 앞에 서 있을 때 죽음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살면서 죽음을 자각할 수 있다면 저자의 말대로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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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