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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평점 :
당신이라면,
길들여진 쥐가 집안을 뛰어다니며 이불을 갉아대고, 카카두(앵무새의 일종)가 널어놓은 빨래에서 단추를 모두 떼어내고, 원숭이가 서재를 엉망으로 만들고, 기러기가 값비싼 양탄자위에 배설물을 떨어뜨리고, 자기의 아이를 거센 동물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창살로 만든 우리에 집어넣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또 당신이라면,
당신에게 연정을 품은 갈가마귀가 당신을 위해 벌레를 잡아와 입어 넣어주고, 당신을 엄마라고 생각한 새끼 기러기가 한시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하고, 거위새끼들이 졸졸 따라다니고, 목소리를 알아들은 갈가마귀가 당신에게 날아오고, 충성스런 개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반응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첫 번째 경우라면 틀림없이 짜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두번 째 경우라면 조금 귀찮긴 해도 매우 색다르고 이상한 느낌이 들것이다.
이 책을 쓴 콘라트 로렌츠는 동물들을 키우는 일은 커다란 짜증과 손해를 동반하는 일이라고 책의 첫 장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일을 왜 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저자는 자신을 알아보는 동물들과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누며 교감을 나누는 일은 그런 모든 짜증과 손해를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큰 경이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동물들과 같이 생활하며 경험하고 느낀 일들이 에세이 형식으로 담겨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을 보통의 인내와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보여주는 동물의 세계는 일견 흥미진진하고 유쾌하면서도 일견 사람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는데에 놀라게 된다.
갈가마귀 사회를 묘사하는 장에서는 불륜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새와, 높은 서열의 수컷갈가마귀와 약혼해서 신분상승에 성공한 암컷갈가마귀가 예전에 자신보다 신분이 높았던 갈가마귀들에게 실력행사를 하며 우쭐대는 모습이 그려진다.
너무나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고 사실은 인간의 모습 속에 동물적인 본성이 남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의 상식을 깨는 동물들의 모습도 많이 소개되는데, 순하다고 생각하는 토끼나 비둘기 노루들은 실제로 싸울 때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보통 사납다고 생각하는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약자가 자비를 호소하는 경우 필요이상 상대방을 괴롭히지 않는다. 공격하고 싶은 본능과 그 본능을 자제하려는 또 하나의 본능을 같이 발달시켜 쓸데없는 손실을 줄이려는 쪽으로 진화되어 온 것이다.
약자를 공격하는데 있어 그다지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야생동물들이 보여주는 자제력이 놀랍기까지 하다.저자가 야생 새들을 쫓아 날아가려는 새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지붕 꼭대기에서 깃발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대고, 거위의 엄마로 각인되어 몇 시간씩 어미거위 목소리를 흉내내며 오리걸음으로 걸어 다니다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뻔 했다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실소가 터지는 동시에 학문에 대한 저자의 열의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상에 대한 열정 없이 이루어지는 학문적 업적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만약에 있다면 나는 그 속에서 어떤 진실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동물들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애정이 넘쳐나는 책.
읽다보면 인간이 아직 덜 인간다웠을 때 그래서 좀더 동물적 본성에 가깝게 남아있었을 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인간답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책.
그러면서도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당장 작은 동물이라도 하나 옆에 두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책.
인간이 동물들과 더 많은 친밀함을 나누고 교감을 나누는 세상이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훨씬 더 즐거운 세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