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서(史書)에는 ‘은사(隱士)’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숨어서 산다는 뜻으로 무슨 죄를 지어 숨어사는 것이 아니고 속세(俗世)를 떠나 산간에서 자연과 청담(淸談)을 즐기며 사는 고고한 인물을 일컫는다.


속세(俗世)란 어떤 세상인가. 출세와 명예와 부(富)를 추구하고 부귀영화를 얻고자 경쟁하고 싸우는 곳이다. 청담(淸談)은 무엇인가. 속세의 얘기는 금물이며 노장(老莊)사상과 같은 비현실적인 맑은 얘기다. 그래서 속세의 사람은 그들을 존경했다.


은사(隱士)는 중국의 전설시대 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미 전국시대 한비자(韓非子)는 사회·국가적으로 하등의 해놓은 일 없이 단지 속세를 떠났다는 것 만으로 민중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 하다며 허유(許由)를 필두로 12人의 은사를 거명하며 어디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매도했다.


춘추전국시대 이후, 은사의 의미에는 앞과 뒤, 즉 표리(表裏)가 있었다. ‘소은(小隱)은 산야(山野)에 숨고, 대은(大隱)은 조시(朝市)에 숨는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은사를 풍자한 항간의 말이다. 매월 봉급받는 ‘은사’도 있었는데 한산한 관청에 숨어서 사는 관원을 빚대어 ‘중은(中隱)이라 했다.


한초(漢初)에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각리(角里), 하황공(夏黃公) 4人의 유명한 은사가 산간에 은거하고 있었다. 이때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이 4명의 은사를 초빙해 조정의 요직을 맡기려 했으나 거절했다. 응하지 않았던 것은 고조가 거만불손했기 때문이다.


얼마후 태자(太子) 문제로 고민하게 됐는데 정실(正室)인 여후(呂后)가 낳은 아들 영(盈)을 내정하고 있었는데 고조가 총애하는 측실(側室)의 아들 여의(如意)를 태자로 봉해 줄것을 측실의 척희(戚姬)가 애원하는 바람에 고조도 마음이 솔깃했다. 이를 알게 된 장량(張良)이 꾀를 내 4人의 은사를 하산시켜 영(盈)의 자문관으로 취임했는데 그러자 고조가 영을 태자로 확정했다.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이어 서진(西晋)시대에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는 7人의 은사(隱士)가 있었다. 혜강(蹊康), 원적(阮籍),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령(劉伶), 원함(阮咸), 향수(向秀)가 죽림칠현의 은사이다.


약 5년간 계속된 이들의 은거(隱居) 생활중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차례차례로 높은 관직(官職)에 초빙돼 출세의 기회를 얻었고 그 중에서 산도(山濤)는 재상(宰相)까지 출세했으니 그들의 속셈이 의심스럽다.


당(唐)의 노장용(盧裝用)이라는 선비는 조정에서 산간에 사는 은사를 초빙해 고봉(高俸)으로 대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도인 장안(長安)가까운 남산에 입산해 은사생활 중 조정의 사신(使臣)이 초빙하니 그는 은사생활에 미련이 있다는 표정을 보였다. 그의 속셈을 아는 사신은 ‘남산은 출세의 지름길’이라 꼬집었다 한다. 

 

출처] http://www.sbnews.co.kr/kfsbnews/opinion/view_news.asp?org_date=2004041309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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