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세종의 나라 1~2 세트 - 전2권 (양장)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긴장으로 읽고, 사람으로 남는 이야기

<세종의 나라1, 세종의 나라2>를 읽고 / 김진명 장편소설

이타북스 출판 ( 도서협찬 )

 

세종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 처음에는 무겁고 정적인 흐름을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치자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숨을 고르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이 긴장의 중심에는 권숙현과 한석리가 있었다. 두 인물은 단순히 이야기의 장치가 아니라, 흐름을 끌고 가는 힘이었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 절제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었고, 결국 그들의 운명을 따라가게 된다.

 

권숙현은 자신의 삶보다 가족을 먼저 두는 사람이다. K-장녀답게 동생들을 향한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책임이 배어 있고, 자신의 인생이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는 순간에도 아버지를 생각해서 훈장자리를. 그 시선은 가정을 넘어 나라로 확장된다. 책을 통해 쌓은 지혜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로 이어지고, 사람을 읽는 눈 또한 맑고 단단하다. 흔히 말하는 희생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결을 가진 인물이다.

 

한석리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무관이지만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다. 빠르게 판단하되 결코 성급하지 않으며, 끝내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이 있다.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인상 깊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을 이룬다. 그래서 이 작품은 세종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업적을 나열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과 관계를 통해, 역사 이면의 결을 보여준다. 결국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몰입감이다. 두 권이라는 분량이 무색할 만큼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긴장과 기대가 이어지면서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특히 두 인물의 운명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는 책을 덮고 싶을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끝내 다시 펼치게 되는 것은, 이미 마음이 그 이야기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역사도 사건도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세종의나라1 #세종의나라2 #김진명 #이타북스 #chae_seongmo

 

“두 손을 모은 두 사람의 모습은 다정했으나 흐트러짐이 없었고 가까웠으나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밤하늘과 바람이 그들을 감싸며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고 오직 별빛만이 남아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초가를 부드럽게 스쳐 가는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듯 펼쳐져 있었다. 석리는 숙현과 나란히 앉았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허락된 것만 같았다. 밤은 넉넉했고 바람은 살가웠으며 풀벌레 소리는 아득하게 들려왔다.

별들은 천장 같은 하늘에 무수히 박혀있었고, 그중 하나가 불현듯 긴 궤적을 남기며 떨어졌다.

‘칠성님.’

숙현의 목소리는 결코 크지 않았으나, 밤의 적막 속에서는 너무도 또렸했다. 석리는 천천히 숙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숙현은 떨리는 눈썹 아래 곱게 눈을 감고 두 손을 단정히 모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1권 p197

 

 

“석리는 사람의 관찰을 통해 세상을 읽었고, 장영실은 사물의 관찰을 통해 세상을 읽었다. 둘의 대화는 언제나 사소한 관찰로 시작해 마침내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로 흘러갔다. 세상은 신분으로 둘을 갈랐지만 그들의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1권 p253

 

“조선이라는 이름의 새 나라에 백성이란 없었다. 백성의 기근도 소를 잃은 통곡도 그들의 논의에 들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의 권세와 체통만을 으뜸으로 추구하는 자들, 그들이 나라를 움직이고 있었다.” 2권 p65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서평단을 통해 도서 제공받아서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권력과지혜 #인물중심서사 #정치와통치 #한글창제의과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당신의 첫 아파트는 여기입니다
아파트써처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아파트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태도

< 당신의 첫 아파트는 여기입니다 >를 읽고 / 아파트써처 지음

원앤원북스 출판 (도서협찬)

 

나의 첫 아파트 선택의 기준 50

 

부동산 책은 대체로 비슷하다. 입지를 말하고, 타이밍을 말하고, 결국은 ‘지금 결정하라’고 등을 떠민다. 이 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반복을 꽤 성실하게 정리해 둔 쪽에 가깝다.

이 책은 첫 아파트를 어떻게 고를 것인가에 대해 비교적 명료한 기준을 제시한다. 입지, 쾌적성, 편의성, 상품성이라는 네 가지 축으로 나누고, 예산 안에서 가장 많은 조건을 충족하는 선택지를 고르라고 말한다. 새롭다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원칙을 다시 또박또박 써 내려간 느낌이다. 실제로 등장하는 부동산 강사의 설명도 낯설지 않았다. 한 번쯤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문장들이 반복된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완전히 공허하지 않은 이유는, ‘결정을 미루는 사람’에게 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서울의 공급 구조, 멸실가구, 건축비 상승 같은 이야기들은 결국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된다. 좋은 자리는 계속 부족하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는 이미 집이 있고, 한 곳에서 계속 살고 있다. 5층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해 재건축을 거쳐 지금까지. 그 사이,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더 나은 입지로, 더 좋은 조건으로 옮겨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몰라서 이기도 했고 또 알고 나서도 이래저래 따져보지도 않았고 움직이지 않았던 쪽에 가깝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다소 건조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정말 최선의 선택을 한 적이 있는가.

조금은 불편한 질문이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자리를 정당화하며 살아가니까. 하지만 이 책은 그 익숙함을 흔든다. 예산 안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하라는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삶의 태도에 가깝다. 계산하고, 비교하고, 결정하는 일. 그것을 미루지 않는 것.

 

물론 이 책이 특별히 날카롭거나 새로운 통찰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의 정리본에 가깝다. 그러나 정리를 끝까지 해낸 사람의 글은 의외로 힘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끝까지 책임지고 설명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책이라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다시 확인’이 행동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아마 이 집에서 계속 살 가능성이 크다. 여전히 이사라는 선택은 번거롭고, 치열하게 따져가며 살고 싶은 마음도 크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을 미뤄온 사람이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값은 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첫아파트는여기입니다 #아파트써처 #채성모 #내집마련 #부동산기초 #선택의기준

 

“내가 살 수 있는 예산 안에서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부동산 공부의 출발점이다. ~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점검해야 한다. 서울인지, 한강변인지, 신축인지, 브랜드인지, 대단지인지, 초품아인지, 역세권인지 등을 따져야 한다. 네 가지 기준(입지, 쾌적성, 편의성, 상품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네 가지 기준을 얼마나 많이 갖추고 있는지를 비교하라. 예산 안에서 이 요소를 하나라도 더 갖춘 곳이 있다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다. 지금 내 예산으로 가장 나은 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것. 이러한 관점을 접근하면 막막했던 내 집 마련이 구체적인 선택지로 바뀌기 시작한다.” p117

 

 

“서울은 아파트 수요가 가장 강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급 비중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는 대부분 빈 땅에 새로 지어지는 것이 아나라,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재건축·재개발하는 방식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이 멸실가구다. 기존의 빌라나 노후주택을 철거하면 사라지는 가구수가 발생한다. 수도권 멸실가구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 공급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주택을 대체하는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의 건축환경 변화도 중요하다. 급격한 건축비 상승으로 인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인허가와 착공물량이 크게 줄었다.” p38

 

 

#채성모의손에잡히는독서 서평단에 당첨되어 #원앤원북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랜드 파워 - 부와 권력을 결정짓는 토지의 힘
마이클 앨버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땅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누가 밀려났는가

<랜드 파워> LAND POWER를 읽고 / 마이클 앨버터스 지음 / 노승영 옮김

인플루엔셜 출판 (도서협찬)

 

부와 권력을 결정짓는 토지의 힘

 

처음에는 ‘땅’이라는 단어에 속아 부동산과 투자의 언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는 땅은 가격이 아니라 권력이었다.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삶의 기반을 얻고, 누군가는 존재 자체가 밀려난다. 카후일라족이 한 걸음씩 물러나며 결국 설 자리를 잃어버린 장면은 개발의 이름 아래 반복되어 온 침묵의 역사였다. 토지는 나뉘는 순간부터 지배의 도구가 되었고, 법과 제도는 그 과정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여성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토지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선택지 자체를 빼앗기는 일이었고, 그 구조는 오랜 시간 공고하게 유지되었다.

 

더 나아가 토지 권력은 환경까지 파괴하며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땅을 단순한 자산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보다, 그 소유가 누구를 밀어내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작지만 분명한 불편함이 남는다. 그리고 그 감각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사람의 최소한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랜드파워 #마이클앨버터스 #인플루엔셜

 

“이 보호구역 지정은 카후일라족의 지속적인 영토 상실을 의미한다. 사막 지역의 카후일라족인 카바존 분파의 추장은 1898년 지방 정부의 인디언 담당관ㅇ게게 이렇게 말했다. ‘백인형제가 오면 우리는 반갑게 맞이하며 그에게 말을 타고 사냥하라고 합니다. 그가 ’우리가 소유할 만한 땅을 좀 주시오‘라고 하면 우리는 조금 뒤로 물러나 그곳에서는 사냥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백인 형제가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더 물러나라고 하고 우리는 다시 물러납니다. 이 일을 수없이 되풀이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작은 부족이 되었고 땅도 거의 없습니다.” P102

 

#토지권력 #사회불평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양장)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과 함께 완성된 한 사람의 생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를 읽고 / 타샤 튜더 지음 / 리처드 브라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출판 (도서협찬)

 

The Private World of TASHA TUDOR

 

 

정원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기록이었다. 타샤 튜더의 하루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돌능금나무의 꽃과 익어가는 열매,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나무들 속에서 그녀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를 길어 올린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부럽다는 감정은 읽는 내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 부러움은 곧 존경으로 바뀐다. 한부모로서 네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고, 삽화와 초상화를 그려가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넓은 들판을 묵묵히 가꾸어낸 시간은 결코 낭만만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삶은 단단한 결심과 반복되는 노동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다.

 

책 속 문장들은 그 사실을 담담하게 증명한다. 스스로 환경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 계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눈 덮인 풍경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는 감각까지. 특히 사소한 생명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시선은 오래 남는다. 생쥐의 발자국을 ‘목걸이’라 부르고, 새의 흔적을 ‘레이스’라 표현하는 순간, 자연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이 책은 화려한 성공담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세계는 놀라울 만큼 소박하면서도, 쉽게 닿을 수 없을 만큼 깊다.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다 간 삶이 부럽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남는 감정은, 그렇게 살아내기 위해 감당했을 시간과 노력에 대한 존경이다. 결국 아름다움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낸 태도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조용히 외치는 듯하다.

더없이 아름다운 봄, 여름, 가을, 겨울 타샤의 사계절.

 

#행복한사람타샤튜더 #타샤튜더 #리처드브라운 #윌북 #willbooks_pub #happiness_jury

 

 

“첫눈은 어찌나 흥분되는지. 많이 올수록 더 좋다. 첫눈이 내리면 크리스마스와 겨울에 할 수 있는 근사한 일들이 죽 떠오른다. 양키라도 양심의 가책 없이 동면할 수 있는 계절이다.” ~ 눈 내린 풍경은 그림 그리기에도 좋다. ~ 잔디, 잡초, 느릅나무의 윤곽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그것들은 언제나 예쁜 꽃다발 같다. 느릅나무들도 마찬가지고. 멀리서 보면, 줄기만 보고도 골라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양이다.

눈이 내린 후에는 발자국을 살핀다. 오늘 아침에는 아주 작은 생쥐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눈에 작은 목걸이 같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토끼들이 어디 있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는 것은 단연 새들이다. 새들의 발자국은 레이스 같았다.“ p150

 

 

“어릴 적 꿈대로 살기 위해 타샤에게는 단호한 정신과 강한 결단력이 필요했다. 타샤는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인 조지 머나드 쇼의 말대로 살려 했다. ~ 많은 사람들이 처지를 불평하지만, 나아가는 자는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간다.” p11

 

#자연과삶 #정원에세이 #삶의태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타인의 구두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의 구두를 벗어 던지는 순간

< 타인의 구두 >를 읽고 / 조조 모예스 장편소설 /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도서협찬)

SOMEONE ELSE’S SHOES

 

 

번역 소설을 읽을 때 가끔 문장이 발목을 잡는다. 이 책도 초반에는 그랬다. 문장이 매끄럽게 흐르지 않아 몇 번이나 속도가 끊겼다. 마치 발에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 걷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묘하게 사람을 붙든다. 조금 불편한 걸음을 참고 걷다 보니 어느새 끝까지 와 있었다.

 

이 소설은 화려한 삶의 허상을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샤넬 재킷과 하이힐, 부유한 남편과 완벽해 보이는 생활. 그러나 그것은 단단한 기반이 아니라 조명 아래 세워 둔 무대 장치에 가까웠다. 남편의 한마디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 주인공은 가운 하나와 슬리퍼 차림으로 거리로 밀려난다. 체면도 지위도 그렇게 간단히 사라진다. 사람의 삶이 얼마나 얇은 껍질 위에 놓여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구두가 있다. 사치의 상징이자, 권력의 표시이며, 동시에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다. 그 화려한 구두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여성들이 엮인다. 처음에는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지만, 점점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누구나 신는 신발이라는 사소한 물건이 결국 사람들을 묶고, 연대하게 만든다는 설정이 꽤 영리하다.

 

마지막 장면은 특히 통쾌하다. 니샤는 다이아몬드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탐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한다. 그리고 칼에게는 법적 싸움보다 더 뼈아픈 방식으로 벌을 돌려준다. 과장된 복수극이 아니라, 지혜롭고 단단한 방식의 응징이다.

 

결국 이 소설은 구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발로 다시 서는 이야기다. 화려한 구두가 아니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삶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그들은 구두를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니샤를 봤다. ’저건 칼의 장난이에요. 날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들 방법 그 사람이 정말 미워요. 저게 우리 결혼 생활을 완벽하게 요약한 거죠. 온통 보여주기뿐. 나는 쇼에 나가는 조랑말처럼 차려입고 광대처럼 뛰어다니며 그 사람 뒤치다꺼리를 했어요. 그 사람이 날 조련했죠.” P422

 

 

#타인의구두 #조조모예스 #다산책방 #소설추천 #인생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