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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헬렌 듀런트 지음, 황성연 옮김 / 서사원 / 2026년 3월
평점 :

내 이름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를 읽고 / 헬렌 듀런트 지음 / 황성연 옮김
서사원 출판 (도서협찬)
처음 문장을 펼치면, 낯선 장례식의 문이 열린다. 그런데 그 문패에 적힌 이름이 하필 ‘나’다. 이 설정 하나로 이미 이야기는 충분히 위험해진다. 안전하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다만 이상하게도, 읽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 소설은 동일한 이름이라는 우연을 미끼로 삼아, 신분과 과거, 그리고 인간이 숨기고 싶은 삶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돈이 필요했다”는 단순하고도 노골적인 동기가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이 특히 현실적이다. 거창한 사명이나 정의가 아니라, 생존에 가까운 궁핍함. 그 솔직함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 설득력 있게 끌고 간다.
서사의 구조는 정직하지 않다. 일부러 숨기고, 비틀고, 늦게 드러낸다. 그래서 독자는 한 번은 속으며 따라가고, 한 번은 의심하며 되짚게 된다. 읽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거래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정보를 조금씩 내어주고, 독자는 그 대가로 시간을 지불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 거래가 손해였는지 이익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이름’이라는 껍질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타인의 삶이 내 앞에 놓였을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슬쩍 입어볼까. 이 소설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결국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덮어쓰게 만드는 위험한 장치가 된다.
문장은 번역소설임에도 크게 걸리지 않는다.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장면 전환도 매끄럽다. 다만 감정의 깊이를 파고드는 방식보다는 사건의 전개에 과도한 힘을 준 작품이라, 인물에 대한 애정보다는 상황에 대한 긴장으로 읽게 된다. 이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적어도 ‘끝까지 읽히는 힘’만큼은 분명하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은 감정을 오래 붙잡기보다는 호기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데 집중한 이야기다. 한 번은 범인을 알고 줄거리를 따라가기 위해 읽고, 한 번은 전체적으로 이해하면서 다시 파악하고 문장이나 책의 장점들을 발견하고 정리됨을 위해 읽는다면 좋을 듯하다. 두 번째 독서에서는 범인이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따라가며 이해한다면 더 흥미다. 이야기는 범인보다 동기를 숨기는 데 더 능숙하니까.
가장 가까울 수 있으면서도 가장 최악의 인연이 될 수 있는 가족관계의 중요성과 부모자식 간의 애정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나는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 내게는 돈이 없다.” p8
“익명으로 보내온 이메일에는 보낸 사람의 단서도, 고인의 이름도 없었다. ~ 정체불명의 발신자가 고인이 나를 아꼈고, 내게 무언가를 남겼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그게 돈이기를 바랐다. ~ 유일한 수입은 가끔 동네 가게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받는 현금이 전부다. ~ 나는 돈을 빌렸다. 상환 일자를 맞추지 못했고, 이자가 붙으면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이 되었다. ~ 노트북이 없는 나는 주로 인터넷 카페를 이용했는데 그날은 셋방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매물을 확인하던 참이었다. ~ 나는 빚 때문에 지난 삼 년 동안 내 과거를 아는 사람들과 만나지도 않았고, 소식을 나누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돈이 너무 필요했던지라 경계심을 풀고 말았다.” p9,10
#구구의서재 @book.gu_book.gu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 지원받아서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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