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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평점 :

기울어진 기억 위에 선 세 명의 여인
<구원에게>를 읽고 / 정영욱 산문
㈜부크럼 출판 (도서협찬)
이 산문에는 가난과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릴 적 상처를 온전히 봉합하지 못한 채 성장했고, 그 균열은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기울게 만들었다. 작가는 비극이 단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 있고, 문장은 탁월할 만큼 매끄럽다. 읽는 동안 지루함은 없다. 오히려 문장의 힘에 여러 번 붙들린다.
그럼에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상처의 대물림과 정신적 환경의 결정력을 강조하는 시선이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선택과 책임을 너무 멀리 밀어내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나는 그들의 비극을 연민했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은 잘 쓰였으나 쉽게 추천하기는 망설여진다. 가치관의 간극이 또렷하게 남는 읽기였다.
특히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며, 또 다른 이를 사랑이라 부르는 장면들 앞에서는 마음이 거칠어졌다. 소설이었다면 허구의 서사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인물의 설정이라 여기며 거리를 둘 수 있었을 테다. 그러나 산문은 실제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그것이 작가의 고백이든 해석이든, 현실의 언어로 적힌 사랑과 이별은 변명의 여지 없이 독자에게 닿는다. 그래서 읽는 동안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명히 화가 났다. 사랑이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상처를 이유로 관계의 책임까지 유예받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되었다.
“어떤 인생은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도 숨이 턱 막힐 만큼 애통하고 기구하다. 수는 그렇게 자신이 지고 태어난 비운과 오물보다 역한 현실에서 해방되고 싶어 했다.” p45
“비극은 대개 어떤 한 지점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과거로부터 천천히 지층이 마련된다. 어떤 시절의 어떤 상황이 그를 형성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그는 어떤 잘못을 행하며, 그 잘못은 지금에 와서 비극으로 작동한다.” p46
“한쪽 눈이라도 떠 삶의 환희를 맞보려는 이는 잠시 어둡더라도 아침을 꿈꾼다. 그러나 두 눈을 감은 이에게는 세상의 아침을 아무리 설명해도 끝내 어둠일 뿐이다. 과거에 빛을 조금이라도 본 이는 기어코 어둠 속에서 긍정의 실을 찾아내지만, 과거의 어둠에 삼켜진 이는 대낮에도 여전히 막막한 칠흑 속에 잠겨있다. 요즘은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영역에서의 대물림이며 되도록 멀끔한 과거다. 과거에 빛을 보고 자랐는가 아닌가가 곧 일말의 긍정과 행복, 행운과 소망에까지 관여한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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