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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랜딩
나규리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느리게 내려앉는 삶의 방식
<소프트 랜딩>을 읽고 / 나규리 장편소설
마디북 출판 (도서협찬)
표지에는 무지개 빛 바탕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떠 있고,
금가루처럼 흩뿌려지는 무언가를 손끝으로 살포시, 닿을 듯 말 듯 느끼게 한다.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고, 축제처럼 보이지만 마냥 들뜨지는 않는다.
비행기는 이동과 이탈을 암시하고, 무지개는 정체성과 희망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을 붙잡는 손은 조심스럽다.
마치 확신보다는 망설임에 가까운 제스처처럼 보인다.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과 관계 역시 그런 태도를 닮아있다.
떠나고 싶지만 완전히 날아오르지는 못하고, 손에 남은 것은
반짝이지만 쉽게 흘러내리는 감정들이다.
이 소설은 거창한 사건 대신 사람 사이의 마찰과 균열을 따라간다.
단아를 중심으로 인물들은 사랑하고, 질투하고, 오해하며, 때로는 서로를 밀어낸다.
동성애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배경에 놓여 있지만,
이 소설은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관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개인의 태도에 시선을 둔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늘 티격태격한다. 사랑은 완성되지 않고, 이해는 번번이 어긋난다.
그러나 그 어긋남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풍경이다.
누군가는 상처를 남기고, 누군가는 그 상처를 안고 다음 날을 살아간다.
극적인 화해도, 명쾌한 결론도 없다. 대신 삶은 계속되고, 감정은 정리되지 않은 채 남는다.
발췌문에서 드러나듯, 세상은 느리게 변하고 약자들은 서로를 겨누며 버틴다.
소설은 이 구조를 고발하기보다, 그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려는 선택’에 주목한다.
현실적인 계산보다 지금의 감정을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단단한 중심이다.
<소프트 랜딩>은 부드럽게 착륙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완전히 부서지지 않기 위해 속도를 줄이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 책을 덮고 나서 선명하게 남은 장면이나 문장을 꼽으라면 솔직히 망설여진다.
무엇을 말하려는 소설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곁에 머무는 방식,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하루를 넘기는 모습이 자꾸 현실과 겹쳐 보였다.
세상은 여전히 느리게 변하고, 관계는 늘 어정쩡한 상태로 남는다.
이 소설은 그 어정쩡함을 애써 정리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일도 삶의 한 방식이라는 듯이.
이 소설은 분명 시원한 이야기나 확실한 판단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다.
대신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 감정을 판단보다 앞에 두고 읽는 독자에게는 오래 남을 책이다.
“단아가 느끼기에 세상은 아주 느린 속도로 변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동성의 사실혼이 인정되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얻은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동성혼 입장에 대해서 동성혼을 하지 않을 자들끼리 논의했다. 세상은 약자끼리 겨누며 최전방의 약자가 되지 않으려 버티는 정글 같은 곳이었다. 앞으로도 개탄과 극복의 삶은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움직임도 같은 무늬는 아닐 것이다. 단아는 이제 현실적인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고 싶었다. 현실적인 데에 묶여 현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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