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손수연 옮김 / 저녁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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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치유, 위로와 사랑으로 확신까지의 3

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를 읽고 / 비르지니 그리말디 소설

VIRGINIE GRIMALDI 손수연 옮김 / 저녁달 (도서협찬)

 

이 소설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이야기다. 장례상담사인 엘사는 아버지를 잃은 뒤 일상의 균형을 잃고, 소설가 뱅상은 오래된 상처와 우울 속에 머물러 있다. 두 사람은 정신과 대기실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사소한 인사와 대화 속에서 뜻밖의 안도와 웃음을 발견한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도, 작가는 작은 연결이 어떻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지를 담백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상실의 시간을 견디는 법, 그리고 세상은 우리의 고통과 상관없이 묵묵히 흘러간다는 사실. 그 무심한 흐름 속에서 두 사람은 서서히 서로의 빛이 된다. 상처가 치유되고 사랑이 확신으로 자리 잡기까지 3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기대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다정한 동반자가 된다.

 

<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도 비르지니 그리말디의 같은 프랑스 여성 작가의 작품인데, 두 책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보여준다. <세상이라는 왈츠는 우리 없이도 계속되고>가 상실과 우울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찾는 이야기라면, <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는 억눌린 일상에서 과감히 탈출해 다른 삶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의 서사이다. 하나는 현실에 뿌리내린 치유, 다른 하나는 현실을 벗어난 해방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만, 결국 두 작품 모두 삶의 무게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묻는다는 공통된 울림을 남긴다.

 

 

엘사는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완벽한 목소리와 일렉기타 소리가 그녀를 과거로 데려갔다. 뱅상은 엘사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내면 여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흐려놓기 전에 기억을 새기는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167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이건 거의 신체적인 고통에 가까워,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고, 바로 그 구멍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아, 이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뿐일 거야.” p169

 

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열여덟 살이면 누구나 부모를 아주 먼 과거에서 온 사람처럼 여긴다는 걸. 그리고 자신들의 부모가 위로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걸. 동시에 그 부모들도 자신들의 부모를 먼 과거에서 온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까지도.” p195

 

여든 정도로 보이는 여성의 차례가 왔다. 그녀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인생을 살아낸 사람의 강한 힘으로 뱅상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정말 다 고마워요, 뱅상. 당신이 제게 주는 행복을 상상도 못 하겠죠. 절대 그만두지 마세요. 이렇게 부탁할게요. 당신은 마법사 같아요.’

감정이 북받쳐 오른 뱅상은 사랑하는 할머니와 오렌지꽃 향기가 나던 할머니의 케이크를 떠올렸다. 뱅상은 그 순간을 오래 붙잡으려 했고, 마디가 굵은 그녀의 손가락을 쥔 채로 그녀의 쇠약해진 목소리를 들었다. 뱅상은 힘을 얻으려 엘사를 찾았지만 그녀 역시 울고 있었다. 그 노부인이 떠났을 때, 감정의 홍수가 모든 사람들을 덮쳤다. 서점의 주인도 눈물을 흘렸고 뱅상의 옆 테이블 사람도 울고 있었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친구들도 눈물짓고 있었다. 뱅상은 그 노부인 같은 사람들 덕분에 인류에게 여전히 희망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p218

 

바깥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지만 나한텐 모든 게 달라 보였어. 햇살이 피부를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지 새삼 깨달았고,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소리도 알게 됐어. 내 감각은 아주 고조됐지. 세상을 갓난아기의 눈으로 보는 것 같았어. 예전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아주 사소한 것들조차도 경이롭게 느껴졌어. 그게 그렇게 오래 가진 않았어. 어쨌든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 그래도 여전히 구불거리는 구름이나 고래 영상 같은 것에 감동 받아, 결국 그때 내가 깨달은 건, 삶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부서지기도 쉽다는 거야. 그런 깨달음이 내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놨어. 상반된 감정들로 가득 차 있었지, 그리고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든 거야.”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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