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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우주적 쌍둥이의 우정과 사랑사이 진한 그리움과 신뢰
<그녀를 지키다>를 읽고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장편소설 /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아찔하게 깎아지른 길이 끝나는 곳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소도시 피에트라달바에 위치한 사크라 수도원, 천년이 흐르도록 어떠한 흔들림도 아무런 변고도 없다. 그곳엔 보는 이들의 감정을 거세게 뒤흔드는 석상, 피에타 석상에 숨겨진 신비하고 가슴 아픈 진실이 있다. 유일하게 서원하지 않고 40년간 머무는 일이 허용된 여든두 살의 세상을 뜨려 하는 위독한 노인,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 가난과 폭력과 설움, 온갖 시련과 착취를 견뎌낸 굴곡 많은 삶, 전쟁과 무솔리니 집권 파시즘이 득세하던 시절의. 그 생의 끝에서 시작해 유년 시절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630여 쪽의 이야기가 가파른 산등성이를 넘어가듯 오르락 내리락 하며 마지막 장까지 꽉 긴장하며 몰입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사람들은 미모라고 부른다. 연골형성저하증, 왜소증을 갖고 1904년 11월 7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삶으로의 희망을 갖고 부모님은 리구리아를 떠나온다. 하지만 아버지는 미모가 어릴 때 전쟁에 나가서 사망하고, 어린 그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주정뱅이 석공 치오 알베르토에게 맡겨진다. 그의 헛간에서 자고 폭력 학대 가혹함도 당한다. 공방에서는 그의 실력을 질투하는 무리들에 못 이겨 서커스단의 일로 생계를 이으며 고된 시절을 살기도 한다. 알베르토는 미모를 난쟁이라 놀리며 맡길 거절했으나 어머니의 두툼한 돈 봉투에 반해 수락한다. 그 안에는 타국살이, 노동, 태양과 소금기에 그을린 피부 점철된 세월이 통째로 들어있는 더럽고 구겨진 소중한 지폐가 들어있었다.
비올라 오르시니. 하늘을 나는 게 꿈인 자유를 원하는 귀족 가문의 딸, 부족함이 없이 모든 걸 가졌다. 가난도 없고 노동할 필요도 없고, 억울하게 권력의 힘에 부당한 착취와 억압을 당할 일도 없다. 그러나 자유가 없다. 타고난 천재적인 지적 재능과 꿰뚫는 통찰을 활용하며 맘껏 펼치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갈 자유로움을. 16세에는 친구들과 함께 만든 날개를 펼쳐보다가 큰 부상을 당하는 와중에 다른 가문과의 약혼을 통보받는다.
미모와 비올라의 우정에서 사랑 사이로의 감정, 그 안에 끊이지 않았던 믿음과 그리움, 그 긴 시간 동안의 적은 만남 긴 이별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편지마저 편치 않았던 아슬아슬하게 주고받던 그 속에 담긴 길고 진한 그리움,
보랏빛 푸른 눈을 가진 엄마는 어린 그와 같이 살고 싶어 했으나 가난과 재혼으로 가끔씩 잘 지낸다는 거짓이 조금 섞인 편지로만 달래야 했던 애타는 긴 긴 그리움, 빈곤과 슬픔이 섞인 애닮픔, 읽는 내내 흐르듯 깔린 애잔함.
미모는 오르시니 대 저택의 조각상 수리로 그 집 지붕에 올라가서 작업을 한다. 무거운 짐과 헛디딤으로 추락한다. 열려진 창으로 떨어져 후작의 막내딸 비올라의 침대에서 기절해 잠이 든다. 그렇게 인연이 된 친구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관습과 계급의 장벽이 파놓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한걸음에 건너뛰면서. 그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위업이자 말 없는 혁명. 비올라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 찰나에 나는 조각가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러한 변화를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낮은 초목들과 올빼미가 공모하는 가운데 우리의 손바닥이 합쳐지자 뭔가 조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본능적 깨달음이 생겼다.” -103
“1904년 11월.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서, 우리를 능가하며 그 무엇도 절대 부술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을 거란 말이지. 11월 22일. 우리는 우주적 쌍둥이야! 그 아이의 행복이 내 발걸음을 가볍게 했고 어둠을 밝혔다. 생일 축하 카드에서 본 날짜가 갑자기 생각났다. 기쁨을 안겨주는 작은 거짓말은 내 생각엔 거짓말이 아니었다.” -p114
두껍고 쉽게 잘 읽히지 않는 문체로 소설이지만 읽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두 번째 읽을 때도 긴장은 계속된다. 읽으면서 시각적 표현들이 많아서 장면 장면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다. 한 나라의 역사의 흐름과 같이하는 한 장인의 삶과 진한 그리움이 무겁게 가슴에 남는다.
혜진님의 서평단, 출판사에서 도서협찬 @hyejin_bookangel @openbooks21 #그녀를지키다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열린책들 #공쿠르상 #프낙소설상 #이탈리아역사 #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