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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평점 :

호기심 많은 모험가의 삶 여행기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순간
을 읽고 / 조승리 / ; 세미콜론
저자는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어 지금은 빛 정도만 분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다. 장애를 갖고 삶을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겪게 되는 차별과 모욕적인 말들, 안마사로 일하면서 손님들과의 마음 통하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일상들, 또 친구들과의 외국 여행기들이 있다. 자신이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계약에서 여러 번 거절을 당하고 순간순간 좌절을 만나기도 한다. 온갖 역경을 만나면서도 재치 있고 현명하게 이겨내고 활달하고 통쾌하게 헤쳐 나간다.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준다. 글들이 빵빵 웃음도 터지고 재미있고 감동도 있다.
저자의 첫 번째 책은 <이 지랄 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지랄 맞음이 무엇이지 (사전에서는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나와 있다.)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글 한 편만 읽어봐도 웃기면서도 꼬집는 듯한 느낌이 바로 와 닿는다.
뽑아본 문장들
“이렇게 볼품없이 살다 끝나면 억울하지 않겄나?”
“모든 게 억울했다. 눈먼 삶도, 짊어진 책임감도, 나 자신을 버렸던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A에게 전화를 걸어 날 좀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그녀는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있을 것을 권했고 나를 말레이시아로 보냈다.” -p21
“서걱서걱 옥수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웅성댔다. 땀줄기가 목덜미 고랑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람에 부비적대는 옥수수 잎 소리가 오리 떼의 날갯짓 소리처럼 들려왔다. 『끝없는 벌판』을 읽고 인간은 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줄곧 고민했다. 사실 그건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그나마 희망 따위라도 있어야 질긴 생을 견뎌낼 수 있음을 알았다. 뜨거운 바람이 흙냄새를 싣고 잔잔히 몰려왔다. 두통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농사꾼의 딸이었던 나는 바람에서 튼실한 생육의 냄새를 맡았다.” -p35
“아무리 강한 고통이라 해도 일상이 되어버리면 무뎌지기 마련이고 어느 순간 통증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현실을 살아가게 된다. 내겐 장애가 그러했다.
내가 망각하고 사는 것이 장애만은 아니리라
마사지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삶이 엿보인다. 내가 손끝으로 본 그녀의 세월은 험난하고 참혹했다.” -p47, 48
“장애를 이해하려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용기를 얻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백두산 여행도 나에게는 그 한 걸음이었다.
암울한 현실을 견뎌내는 방법은 온 힘을 다해 명랑함을 짜내며 버텨내는 것이리라.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했다. 그건 내 삶의 방식이었다.” -p60
“내게 식사는 때우는 것이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저렴한 메뉴로 배를 채우는 것. 그게 끼니였다. 라면을 후루룩 삼키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꼴이 청승맞았고 비루한 삶이 초라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었다. 억척스럽게 일 욕심을 냈고 지독하게 절약했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이제는 내 인생을 살겠다며 가족과 거리를 두었다. 그들은 굳이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내 존재를 부인당한 것 같아 괴로웠다.
세상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인도에 불법 주차된 자동차 백미러에 명치를 호되게 얻어맞았다.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났다.
‘지겨워! 정말 지겨워 죽겠어.’” -p107, 108
“‘요즘 저런 사람 많이 보이네, 우리 식당에도 꽤 와.’
주인아주머니가 말한 ‘저런 사람’이 나를 지칭한다는 걸 알았다. 순간 나는 F를 떠올렸다. 그 단단한 삶의 태도를 말이다. 당당히 어깨를 펴고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수저질을 했다. 불쾌했지만 상처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다짐했다. 당신들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야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거야. 그게 내가 정한 나의 사명이야. 내가 씨익 웃자 내 눈치를 보던 활동지원사가 죄지은 아이처럼 자기가 식사비를 내겠다고 했다. 나는 한 번만 더 이런 곳에 나를 데려오면 가만 안 둔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는 동시에 깔깔 웃었다.” -p223
출판사에서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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