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의 세계 - 인류의 식탁, 문화, 건강을 지배해온 차가움의 변천사
니콜라 트윌리 지음, 김희봉 옮김 / 세종연구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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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인류는 오랜 시간 굶주렸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약했고, 자연은 쉽게 먹거리를 주지 않았다.

인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했고, 세상 가장 우월한 존재로 진화했으며, 결국 다른 동물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의 존재로 거듭났다.

하지만 여전히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고, 제철이 아닌 것들에 대한 먹거리는 그 이유 하나로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인류는 건조시키고,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키고는 병조림, 통조림으로 먹거리들의 저장 한계를 늘려나갔으며, 이제는 한 겨울에도 딸기와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 세상에 냉장고가 있다.

냉장 기술과 냉장 보관한 먹거리들에 대한 사람들의 초기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냉장 보관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냉장 보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부패와 식중독 염려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냉장/냉동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도축한 소고기를 상하지 않은 상태로 구입해서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로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일년 내내 맛있는 사과, 바나나, 토마토 등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말이다.

물론 대가는 따랐다.

냉장이 약속하는 풍요로움은 다양성과 맛의 감소를 동반했고, 시장에 가져다주는 안정성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냉장고의 온도를 낮추고 유지하는 동안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 지고 있다.

우리가 먹거리를 위해 투자한 냉장 기술은 북극과 남극, 그리고 제3의 냉동극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점점 더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냉장고로 인해 우리가 받은 여러가지 손실을 들려준다.

저장과 보관성에 집중한 결과 종의 다양성은 위협을 받고 있고, 제철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등의 것을 말이다.

하지만 수확해서 섭취하기 까지 거쳐야 할 보관, 저장, 운반, 판매대기 등의 과정에서 상해서 버려지는 것들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면 냉장 기술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냉장 기술의 폐해에 보다 집중해서 근거리에서만 먹거리를 구해서 먹고, 제철 먹거리에 집중하며, 냉장 이외의 저장, 보관 기술을 발전시켜 그렇게 보관된 먹거리들만 먹고 마셔야 할까...

운반이 힘들고 수확 시기가 한정되고 보관이 어려운 그런 먹거리들을 포기하면 되겠지만...

이건 그래도 먹거리가 충분한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고...

도로 등의 운송 수단이 열악한 오지와 같은 곳에서 부족한 먹거리에 대한 공급은 어찌해야 할까...

전 세계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한 까닭에 어디선 버려지고 어디선 모자라는 이 상황을 어찌 해소해야 할까?

여러가지 이유로 냉장 기술을 배척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못구하면 없으면 너무 비싸면... 안먹으면 되겠지만...

구할 수 있고 운반해올 수 있고 싸게 먹을 수 있는 기술이 있는 데 외면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사람의 욕심이니 그 욕심만 버리면 되는 것일까?

다같이 안먹고 포기하면 되겠지만 누군 먹고 누군 못먹으면 그것은 질투와 질시, 과시와 만족이라는 차원을 넘어 공정과 정의의 문제인 것은 아닐까?

공간, 시간, 계절을 지배하는 힘, 모든 것을 소비하는 인공 겨울을 만들어낸 힘으로 우리는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식량을 위해 만든 새로운 북극이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짜 북극을 녹이고 있는 지금, 우리는 불길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 행동해야 한다.

p422, 에필로그

결론은 돌고 돌아 기후 위기이고, 온난화다.

그래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를 따르는 경쾌한 기대감, 청량음료나 칵테일에서 얼음 조각이 톡톡 터지는 상쾌한 느낌, 여름에 아이스크림콘을 핥는 순수한 기쁨" (p329)을 우리는 포기할 수 있을까?

그래 이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고 치자...

"전 세계적으로 매년 27억6000만톤의 식량이 버려지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에서 재배되는 모든 식량의 40퍼센트에 이른다. 이 중 최소 3분의 1은 냉장으로 구할 수 있다. 르완다처럼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최소한의 식사 이상을 제공받는 영유아가 다섯 명에 한 명도 되지 않는 나라에서 이 정도 식량 손실은 생산의 문제다." (p375) 라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이 기술을 포기할 수 있을까?

더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되어 냉장을 대신할 수 있을 그때가 오기까지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냉장고에 맛들려버린 우리에게 이런 질문과 선택은 너무 잔인한 강요이자 폭력이 아닌가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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