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랜 시간 굶주렸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약했고, 자연은 쉽게 먹거리를 주지 않았다.
인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했고, 세상 가장 우월한 존재로 진화했으며, 결국 다른 동물의 생사를 좌우할 정도의 존재로 거듭났다.
하지만 여전히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여전했고, 제철이 아닌 것들에 대한 먹거리는 그 이유 하나로 먹을 수 없었다.
그러다 인류는 건조시키고,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키고는 병조림, 통조림으로 먹거리들의 저장 한계를 늘려나갔으며, 이제는 한 겨울에도 딸기와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었다.
그 세상에 냉장고가 있다.
냉장 기술과 냉장 보관한 먹거리들에 대한 사람들의 초기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냉장 보관이 반드시 필요한가에 대한 생각보다는 냉장 보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부패와 식중독 염려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냉장/냉동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도축한 소고기를 상하지 않은 상태로 구입해서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로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일년 내내 맛있는 사과, 바나나, 토마토 등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말이다.
물론 대가는 따랐다.
냉장이 약속하는 풍요로움은 다양성과 맛의 감소를 동반했고, 시장에 가져다주는 안정성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냉장고의 온도를 낮추고 유지하는 동안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 지고 있다.
우리가 먹거리를 위해 투자한 냉장 기술은 북극과 남극, 그리고 제3의 냉동극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점점 더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냉장고로 인해 우리가 받은 여러가지 손실을 들려준다.
저장과 보관성에 집중한 결과 종의 다양성은 위협을 받고 있고, 제철의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등의 것을 말이다.
하지만 수확해서 섭취하기 까지 거쳐야 할 보관, 저장, 운반, 판매대기 등의 과정에서 상해서 버려지는 것들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면 냉장 기술을 외면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냉장 기술의 폐해에 보다 집중해서 근거리에서만 먹거리를 구해서 먹고, 제철 먹거리에 집중하며, 냉장 이외의 저장, 보관 기술을 발전시켜 그렇게 보관된 먹거리들만 먹고 마셔야 할까...
운반이 힘들고 수확 시기가 한정되고 보관이 어려운 그런 먹거리들을 포기하면 되겠지만...
이건 그래도 먹거리가 충분한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고...
도로 등의 운송 수단이 열악한 오지와 같은 곳에서 부족한 먹거리에 대한 공급은 어찌해야 할까...
전 세계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한 까닭에 어디선 버려지고 어디선 모자라는 이 상황을 어찌 해소해야 할까?
여러가지 이유로 냉장 기술을 배척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못구하면 없으면 너무 비싸면... 안먹으면 되겠지만...
구할 수 있고 운반해올 수 있고 싸게 먹을 수 있는 기술이 있는 데 외면하는 것이 과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사람의 욕심이니 그 욕심만 버리면 되는 것일까?
다같이 안먹고 포기하면 되겠지만 누군 먹고 누군 못먹으면 그것은 질투와 질시, 과시와 만족이라는 차원을 넘어 공정과 정의의 문제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