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창의성을 거의 신념에 가깝게 믿는다.
창의성은 경쟁력을 높이고, 혁신을 가능케 하며, 문제 해결의 핵심 자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새뮤얼 W. 프랭클린은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The Cult of Creativity)』에서 이런 믿음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발명되고 숭배되기 시작한 문화적 산물임을 짚어낸다.
그는 특히 냉전기의 미국 사회,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심리학의 도구화가 맞물려 창의성이 체제 우월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었음을 언급한다.
창의성은 자유, 개인주의,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은 자유시장과 경쟁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기제로 기능했다.
오늘날의 창의성 개념은 이와 같은 기원을 잊은 채 사회 전반에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이 숭배의 세 가지 우려를 말한다.
첫째, 창의성이 예술에서 ‘새로움’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정립되며, 과거의 기법이나 유지·재현의 노력은 예술에서조차 비창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둘째, ‘새로운 아이디어’의 생산 자체가 창의성의 핵심으로 간주되면서, 과정, 관계, 반복, 숙련과 같은 요소는 창의성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셋째, 창의적인 직업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류하는 사회적 위계가 만들어지며, 돌봄, 청소, 정비 같은 유지의 노동은 비창의적인 저가치 노동으로 취급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창의성이 윤리와 공존을 위한 역량이어야 하며, 돌봄의 노동, 관계를 회복시키는 기술, 느린 변화와 같은 요소들도 창의성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 싶다. (내가 너무 앞서 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ㅠㅠ)
어떤 면에서 2025년형 창의성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관계적 전환’과 ‘공동체적 재구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저자의 지적처럼, 현재의 창의성 숭배가 지속되는 한 이런 창의성에 대한 생각은 보완과 수정이 필요해보인다.
이 책은 단지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역사적으로 따라가본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믿고 있는지, 그 믿음이 어떤 위계와 배제를 낳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고 보인다.
저자는 "창조하는 능력은 중요하지만,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 외부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니, 혁명적 힘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내려놓는 것이 타당할 것"(p328) 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곧 창의성이라는 말 자체를 무력화하자는 뜻이라기 보다는, 그 개념을 둘러싼 신화를 걷어내고, 다시 정립하자는 제안이라고 읽힌다.
돌봄 노동이 ‘창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저평가받고, 반복과 유지의 일이 ‘혁신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게 되는 현실의 우려는 우리가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대면할 때의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창의성은 발명의 능력이 아니라, 보살핌과 책임의 감각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창의성은 다시 ‘살아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좀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