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학습지를 잘 못풀면 베란다에 나가있게 했다.
아빠는 엄마로부터 나보다 더 심하게 당하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한 것일까?
바닷가에서 찾아진 아빠의 주검은 할머니가 만들어주는 비프 스트로가노프와 자살하기 전 영화를 보러가겠다고 했을 때 보았을 지도 모를 영화 스타워즈, 그리고 아빠의 본가에서 바라보이는 일몰의 이 풍경의 가라앉음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나, 가히 마히로 (드라마 작가)와 하세베 가오리 (영화감독)라는 두 여인이 오빠에게 살해당했다는 어릴 적 동네에 살았던 다테이시 사라의 일명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다.
낮은 학습지 점수로 인해 베란다로 쫓겨난 가오리에게 추위와 외로움을 함께해준 가오리가 사라일 것 같아고 생각하고 있는 옆집 아이는 어떤 면에서 은인이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인 사라에 대해 파고들수록 거짓말을 일삼는 삐뚤어진 모습과 딸 사라와 아들 리키토 중 딸에 대한 편애로 가득한 가족 관계, 아들의 방황이 드러날 뿐이다.
조사를 진행하면서 마히로는 가오리가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모호함을 느낀다.
그저 베란다에서 만난 그 아이가 사라인지 아니면 오빠 리키토인지 알기를 바라는 것일까?
본 사건과 별개로 마히로와 가오리에게도 상처로 남은 기억이 있었다.
마히로의 언니 치호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숨졌고...
이후 마히로의 부모는 치호를 런던으로 유학간 것으로 생각하며 상처를 다독였다.
가오리는 엄마의 교육열에 따른 베란다로의 쫒겨남 외에도 따돌림을 당하던 남학생을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그 친절을 오해한 남학생에게 추행을 당하기도 했고 그의 자살에 책임을 추궁당하기도 했으며, 아버지는 영화를 보러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마히로는 이제 일가족 살인 사건에 대한 각본을 가오리로부터 의뢰받아 쓰려고 하고 있고...
가오리는 사건에 대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소설의 실재 주인공들은...
치호... 사라... 더불어 리키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부모 기대에 대한 부담감과 그동안의 고단함...
속이며 억지로 만들어가는 자존감과 질투심...
무시로 인한 낮은 자존감과 타인에게서 받는 위로감...
이것들이 엮이고 엮이고... 물리고 물려...
죽고 죽음을 초래하고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그것이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는 것이다.
사건을 파헤쳐가는 추리물의 전형적인 형식에 따라 읽는 이들이 맞이하는 반전은...
사건의 전말을 알게되었다는 후련함이나...
이 사건의 바탕에는 이런 사실이 숨겨져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
이런 반전을 감추고 있었구나 하는 작가에 대한 찬탄...이 아니라...
왠지 모를 애틋함과 안타까움이다.
소설의 제목 "일몰"은 석양의 따뜻한 색감이 주는 포근함이 아니라 그저 어깨를 다독여주고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그런 기분을 갖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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