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인류세와 같은 지구적 문제를 우선 순위로 생각하지 않을까?
원인 중에는 과학에 대한 불신과 내가 보고싶고 믿고싶은 대로 생각하는 심리도 있단다.
게다가 이런 재난 상황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지만 아직 체감하기 힘든 정도로 진행되고 있기에 더욱 더 못느끼는 지도 모른다. 위기감의 만성화라고 할까...
기후 변화가 아니라 기후 위기라고... 비일상적인 일들이 이젠 일상화되었다고... 뉴노멀이라고...
그래도 여전히 우린 아직도 비현실적으로 느낀다.
시나브로 이슬비에 젖어가는 것을 모르는게다.
방송국 PD인 저자에게는 더 절절히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과연 언론은 대중에게 이런 상황을 얼마나 절실하게 각인시키고 있는 지 말이다.
한동안 일회용기를 사용하지 말자고 하더니 이젠 그것도 제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의 불편이 미래의 재난을 앞당긴다는 사실을 무시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 속에 항상 인류세와 같은 위기에 대한 긴급성에 대한 단어가 떠오르도록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지구의 위기를 표현할 상상력이 필요하단다.
언어의 한계와 그 언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이들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시간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환경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PD답게 저자는 환경이 위협받는 여러 현장의 상황을 들려준다.
자연의 많은 생물들을 위한 장소는 없어보인다.
인류는 80억 인구가 100억이 넘어갈 미래에 이들을 먹일 식량 생산지와 주거지 등을 걱정하면서도 자연이 감내해야할 것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미래의 지구를 위해서는 지구의 반을 자연의 위한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그저 말일 뿐이다.
Re-wilding (재야생화)에서 Feral (활생)으로 한단계 더 나아가야 할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 태클을 걸고 있는 것 같기만하다.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과 자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혹자는 이런 위기 상황의 핵심은 젠더 문제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젠더 문제로의 접근법의 끝에는 돌봄의 전략이 있단다.
"개인의 무해한 삶의 태도와 과학기술, 사회 전체적인 돌보의 전략이 함께 진행된다면 지구의 위기라는 행성적 차원의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 (p223) 이라는 주장이 좀 더 널리 퍼지길 바래본다.
지금 나의 행동들은 인류세를 살아가기에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것인지도 모른다.
종이컵 덜쓰고...
냉방온도는 조금 높이고, 난방온도는 조금 낮추고...
물 조금 전기 조금 덜 쓰고...
많이 걷고 자전거 타고...
알맞게 먹고 남기지 말고...
원인의 발생 자체를 막는 대응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발생한 상황에 대한 소소한 반응일 지라도...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서 무언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면서 그저 해볼 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