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행인들의 얼굴에 그렇게 씌여져 있다고 느끼는 저자의 감상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시칠리아는 장장 2800여년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단다.
우리의 일제 강점기 35년은 정말 새 발의 피 정도로 여겨질 정도다.
페니키아, 그리스, 로마, 반달, 동고트, 비잔틴, 사라센, 노르만, 독일 호엔슈타우펜 왕가, 그랑스 카페 왕조, 스페인 아라곤 왕조, 사보이아 ,합스부르크, 부르봉 왕조, 통일 이탈리아, 그리고 자치 구역에 이른 오늘 날까지...
곡물 창고로 불릴 정도로 너른 평야에 곡물이 풍성하게 자란 탓도 있을 것이고...
이탈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연결시켜주는 지리적인 탓도 있을 것이다...
여튼 이리 저리 휘둘린 그런 곳... 시칠리아되겠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이러한 시칠리아의 역사를 지배층의 변화에 따라 시간적으로 구분하여 우리에게 들려준다.
읽다가 느낀 감상 몇가지...
시칠리아의 하부 구성원 (처음에는 원주민이었겠다. 외부인들이 계속 교차하듯 반복해서 유입되다보면 원주민과 섞이고 섞여 이 사람들이 원주민 맞는 지 의아할 수도 있겠다. 여튼... 피지배층을 에둘러서 말해서 하부 구성원이라고 해보자...)은 그래도 힘이 있었나 보다.
맘에 안들고, 그들의 의사를 거스르거나 억압할 때 지배층을 무력으로 몰아내기도 하고 바꿔버리기도 했으니...
그런데 딱 여기까지 같다.
지배층을 몰아내고 스스로 지배층을 이루어서 자치 정부를 구성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저 또 다른 세력을 지배층으로 옹립하고 만다.
어쩌면 주인이 없으면 우왕좌왕하듯 어쩔 줄 모르는 수동적인 그리고 전형적인 피지배층인지 모르겠다.
우리 민족과는 다른 모습인 듯...
숱하게 바뀐 지배 세력들은 각자 자기 문화를 알리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지금 그 자취를 느끼고 알아볼 수 있단다.
하지만 사라센 문화의 흔적은 찾기가 힘들단다.
그저 어느 건축물에 사용된 기법 (벌집 모양의 구조, 아치, 모스크의 돔과 비슷한... 뭐 이런...) 정도를 찾아볼 수 있단다.
그것은 비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민족이 지배층을 이루면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아주 적극적으로 말살하고 파괴했던 결과라고 한다.
사라센이라고 통칭된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이 약 170여년 간 시칠리아를 지배하는 동안 이전 문화의 자취들은 남아있는 데 왜 그 반대는 그렇지 않을까?
기독교 (이 당시에는 카톨릭과 그리스정교로 구분될) 문화는 그만큼 배타적이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일까?
시칠리아는 제주도의 14배 정도되는 면적을 가진 섬이라고 한다.
대충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면적보다 조금 작은...
우리의 삼국 시대 고구려가 세력이 많이 좋았을 때 백제와 신라를 합쳐놓은 그런 정도의...
우린 나라가 두 개, 그러니까 지배 세력이 둘이라는 말인데 시칠리아에선 도시 단위로 참 많은 세력이 있었고, 여차하면 서로 싸웠단다.
어찌보면 제네바, 피사, 피렌체, 베네치아...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라고 불리는 이 나라들도 툭하면 싸우고 대립했었던 것을 보면 이탈리아의 민족성이 그런 것인지 여튼 엄청도 투닥거린다.
수영을 못하거나 배가 없으면 달리 도망갈 곳도 없는 섬에서 왜 그리 투닥거리며 싸우다가 외세에 시달림을 당했던 것일까 시칠리아는...
그 긴 세월 외세에 의해 지배받던 시칠리아는 통일 이탈리아의 구성원이 된다.
하지만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의 열악한 경제 상황과 생활 수준으로 인해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멸시와 차별, 그리고 억압은 이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시칠리아의 마피아는 또 다른 악의 축으로 피어나 한 쪽은 2차 대전의 패전과 함께 사라졌지만 다른 한 쪽은 여전히 시칠리아 사람들의 생활을 팍팍하게 하고 있다.
인문학자로서의 김상근 교수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 두군데 있는 듯하다.
하나는 파시즘과 마피아를 바라보는 시각과 분석에서 영화 '대부' 중 피살당한 딸을 안고 절규하는 알 파치노의 연기를 보며 눈물없는 소리없는 오열을 이야기하는 부분이고...
하나는 성모 마리아를 바라보는 두 관점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수태고지"라는 그림을 통해 성모의 눈, 시선에서 '공포에 질린 섬 (시칠리아)의 심리 상태'를 읽어내고...
카라바조의 "산타 루치아의 매장"이라는 그림을 통해 시라쿠사의 성녀 산타 루치아의 유해까지도 빼앗기고 빈 무덤만을 가진 시칠리아 사람들의 절망을 본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위로는 실현되지 못할 미래를 위해 희망의 삽질을 계속하는 것"일 수 밖에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표지에서 보이는 늙은 어부를 찍은 사진을 보고나서 시칠리아를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공포에 질린 섬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사진으로, 경계하는 눈동자와 가늘게 떨리고 있는 입을 통해 시칠리아를 보았다고 한다.
절망과 공포에 매몰되기 전에 젊은 시절에 벗어나야 하는 섬 시칠리아...
2800년 동안 외세에 시달리고 자기 문화 하나 제대로 빚어내지 못한 섬 시칠리아...
그래도 저자는 늙은 어부의 얼굴에서 공포만이 아니라 그 긴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칠리아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거기에 하나 더 눈물을 믿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