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말한다. 지구 상에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기아에 힘들어한다. 말그대로 굶어죽고 있다.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의 총량은 고르게 분배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기는 할까? 세 번의 식사를 두 번으로 줄이고,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면 해결될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줄이고 줄여서 박애주의를 부르짖으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나에대한 분배량을 늘리고 늘리려는 사회가 현실 사회라고 말이다.
요는 저자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현실은 그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상이며, 힘을 가진 자가 독식하는 그런 세상이니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이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보다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지금 오늘 저녁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는데?
번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빅토 비안코가 제시하는 처세론을 자칫 '악으로의 권유'로 잘못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이른바 소화불량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이 책에 구석구석에 제시되어있는 주장을 역설적이며, 반어적 표현을 받아들여 이해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까?
저자는 왜 보다 긍정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대신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저자도 딱맞는 적절한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공 (사실 성공이라는 말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르겠다. 누구는 대통령이 되어야 성공했다고 하고, 누구는 그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으로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하기 위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해야 하는 지 과연 누가알까 싶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99%의 노력과 1%의 운일까 재능일까 뭘까?
저자의 주장에 공감은 별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볼 수록 그렇게 까지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 대답을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또 뭘까 싶다.
게다가 난 그 찾은 해법을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는 있기는 한걸까?
왠지 그런 생각과 그에 따르는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제목에는 왜 오징어게임이라고 덧붙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 드라마의 한 부분들을 여기저기에 뒤늦게 덧붙인 것처럼 표현해놓았다 싶다. 이것도 책의 성공을 위한 저자의 방법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을 비추어보면 딱 맞는 방법이긴 하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것은 또 뭘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