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즘의 오징어게임
빅토 비안코 지음, 김진욱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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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하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읽은 사람은 많겠지만 그 중의 한 명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 ㅎㅎㅎ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말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이 정당화된다'고 말한 것일까? 뭐 그런 의문이 스물스물 올라오게 하는 책... 정말? 정말?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뭐 이런 것이 아닐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수단을 가리지말고 살아남아라...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지금까지의 위선적이고 체면 치레적이며 가면을 쓰고 행동하던 것들을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실천하라고...

빅토 비안코는 "지금과 같은 악惡한 시대에서는 독毒을 가지고 살아야 독毒을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악惡할 수 있어?"라고 반응하며 자신을 포장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면 빅토 비안코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우리 자신 속에 잠자고 있는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p5, 프롤로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때려라'

예수가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도 내어주라'고 하는 것은 당시 로마에게 억압받던 유대인들의 현실에서는 비폭력 순종 주의가 살아남는 방식이니 그리 말한 것일뿐... 그 결과가 억압하고 착취하던 로마는 결국 제국이 몰락했지만 서양 문화의 바탕이 되고, 현재도 이탈리아라는 나라로 남아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유대인들은 그 긴 시간 국토도 갖지 못하고 떠돌다가 이제야 간신히 국가의 형태를 지니게 된 것 아니냐며... 결국 싸우고 투쟁해서 로마를 몰아내고 승리하여 살아남았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말이다.

또 이렇게 주장한다.

'간음하지 말라'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수행하는 동안 나체의 미녀가 유혹했던 것을 간신히 물리쳤던 것을 기억하고, 나중엔 아예 결혼도 하지말고 여자를 멀리하라는 식의 극단적인 방식을 도입했던 것과 중세 기독교의 마녀 사냥도 온전히 신에게만 몰입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을 우려하고 염려하여 마녀 사냥을 통해 여자를 멀리하고 독신으로 살라고 하는 것은 인간, 그 중에서도 남성의 동물적 본능을 거스르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라고...

영웅은 호색한이었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가진 남자는 권력과 재력에 더하여 여성 편력까지 누리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우월성을 과시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일부일처제는 억압의 결과물이고, 힘의 논리가 우월한 시대와는 맞지 않는다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처럼...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경쟁자를 무찔러야 하며, 그래서 내가 승리자로 우뚝 서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수단 중에는 가장 좋은 것이 경쟁자의 약점-특히 여자와 관련된, 정보원에게 돈을 주고서라도 아니 나아가 내가 성접대를 해서 만들어내서라도-을 틀어쥐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나쁜가? 나쁘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과 손자가 말하는 '미인계'는 뭐가 다른가 하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미인계는 36가지 계책 중에 하나이고 성접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뭘까???

소피스트들의 능수능란한 언변에 대해 논리적으로 파고 들기가 힘들었던 사례들을 보면서 저자의 이런 주장에 막상 반박이 쉽지 않은 것은...

그저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나쁘다... 그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될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성공하고 승리해야 한다면 나는 성공도 승리도 하지 않겠다... 이렇게 말하면 될까?

극단적이다. 너무 성공과 승리에만 치우쳐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 것은 아니다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반반이다. 그게 현실이고 사실이지 않을까...

세계는 에너지 자원과 식량 자원의 부족이라는 혼란 속으로 돌입할 것이다. 그리하여 봉착하게 되는 것은 배분의 문제다. 어느 나라가, 어느 곳이, 혹은 어느 개인이 보다 크고 많은 배분을 받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P217,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힘을 키워야 한다'

저자는 말한다. 지구 상에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기아에 힘들어한다. 말그대로 굶어죽고 있다.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의 총량은 고르게 분배만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기는 할까? 세 번의 식사를 두 번으로 줄이고,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면 해결될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줄이고 줄여서 박애주의를 부르짖으며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라 나에대한 분배량을 늘리고 늘리려는 사회가 현실 사회라고 말이다.

요는 저자는 이상과 현실은 다르고, 현실은 그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상이며, 힘을 가진 자가 독식하는 그런 세상이니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이렇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보다 평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살아야 할까? 내가 지금 오늘 저녁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는데?

번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빅토 비안코가 제시하는 처세론을 자칫 '악으로의 권유'로 잘못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이른바 소화불량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이 책에 구석구석에 제시되어있는 주장을 역설적이며, 반어적 표현을 받아들여 이해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까?

저자는 왜 보다 긍정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대신 이독치독以毒治毒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저자도 딱맞는 적절한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공 (사실 성공이라는 말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르겠다. 누구는 대통령이 되어야 성공했다고 하고, 누구는 그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으로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하기 위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해야 하는 지 과연 누가알까 싶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99%의 노력과 1%의 운일까 재능일까 뭘까?

저자의 주장에 공감은 별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볼 수록 그렇게 까지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 대답을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또 뭘까 싶다.

게다가 난 그 찾은 해법을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는 있기는 한걸까?

왠지 그런 생각과 그에 따르는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데... 제목에는 왜 오징어게임이라고 덧붙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 드라마의 한 부분들을 여기저기에 뒤늦게 덧붙인 것처럼 표현해놓았다 싶다. 이것도 책의 성공을 위한 저자의 방법이었을까? 저자의 주장을 비추어보면 딱 맞는 방법이긴 하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것은 또 뭘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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