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바운더리를 '한계', 요즘 흔한 표현으로 말하면 '선線'이라고 문득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계나 선이라는 표현은 좀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저자와 같이 그것이 기대와 요구라고 정의하고 보니 좀 더 명확해진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내 스스로를 향한 기대... 내가 남에게 하는 기대... 남들이 내게 하는 기대...
그런 기대에 대해 정도와 수준에 대한 요구 수준을 설정하고 표시하는 것이 바운더리가 아닐까?
이렇게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것은 좀 내켜지지 않는 일이긴 하다.
책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거절'과 함께 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기대에 대한 요구 수준에 대해 적정한 수준에서 수용하고 거절해야 하는 데 이 거절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부탁했는 데 거절당한다면? 어떨 때는 무심히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어떨 때는 조금 상처받으리라...
역지사지라고 상대방이 나에게 거절을 받는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에 대해서 무척이나 망설여하고 안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러한 거절도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라... 흠...
바운더리를 설정할 때는
1단계... 분명히 말하고
2단계... 돌리지 말고 직접 말하고
3단계... 불편함을 감수하라 고 저자는 말한다.
3단계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말은 상대방과의 껄끄러워진 관계에서 오는 불편, 그 거절때문에 나를 따돌리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불편 등등 모든 것을 포함해서 감내하라는 말일게다.
뒷 끝있는 사람과 부딪쳤다면 더 심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의 삶을 살기위해, 나 만의 시간을 살기 위해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비행기를 타면 이륙 전에 비상 탈출과 관련된 안내를 받는다.
"옆에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우선 먼저 자신의 것을 하고 도와주라"는...
내가 지치지않고 누군가를 돕고 함께 하기 위해서도 내 일을 우선 처리해놓아야 심적으로도 안정되고 여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잔뜩 쌓여있는 데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면 아마 내 마음은 안절부절 그 자체가 아닐까?
내가 여유가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은 맞다.
다만 이런 비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내 곳간을 채우고 남는 것이 생겼을 때만 베푸는 것이 과연 진정한 베품이고 나눔이냐고... 지금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나누고 베풀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냐고...
내 일을, 내가 해야할 것을 잠시 미루어두고 우선 해주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니겠느냐고...
그렇게 선을 긋는 것은 합리적, 논리적, 이성적이라는 간판 뒤에 숨어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냐고...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우리 생활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요즘이다.
이 거리두기라는 것이 사람과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에 국한하고 있지만 얼핏 심리적 거리두기, 온라인 상에서의 거리두기도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싶어진다.
특히나 온라인 상에서 선을 넘는 과도한 비난과 평가는 누군가를 힘들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익명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바운더리 설정이 특히나 안된다고 해야하려나...
관계 설정의 양 끝단에 이타주의와 이기주의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을게다.
그 중간 어디쯤에 개인주의가 어떨 때는 이 쪽으로 어떨 때는 저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우리의 생활을, 생각을, 시간을 주물 주물하고 있을게다.
딱 중간에만 있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우리는 신神이 아닌 관계로 항상 불완전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존재여서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함께 모여사는 것이 인간, 호모사피엔스의 특성이고 보면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나로 살아가는 그런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오늘따라 "죽을 때는 혼자다"라는 의미의 말이 왜 이리 무겁게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