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가 - 격변하는 현대 사회의 다섯 가지 위기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천재 철학자로, 새로운 철학의 기수라고 평가받는 독일 본대학교의 마르쿠스 가브리엘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편집자가 '일상의 언어로' 정리해주었지만 역시 철학은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어쩔 수가 없는 듯 하다. 철학적 용어가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사유 그 자체가 철학을 어렵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여튼 왜 세계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고 말하는 지 따라가보기로 했다.

저자는 우리 시대가 19세기 국민국가로 회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세계사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의미이다. 20세기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가진 국가가 내 나라 내 국민 우선의 보호주의 국민국가로 돌아가고 있을까?

저자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 세계는 다섯가지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가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 '테크놀러지의 위기', 그리고 이 네가지 위기의 바탕을 구성하는 '표상의 위기' 이 다섯 가지이다.

하나씩 저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렇다.

'가치의 위기'

세계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기 보다 점점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타인으로 인식하는 '비인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 편견과 선과 악으로 나누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이러한 경향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는 표상과의 관계 정립을 잘못한 결과라고 말한다.

최후의 인간은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고통을 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마리화나를 피우며 긴장을 푼다거나 전쟁보다는 와인을 마시고 텔레비전 게임이라도 하면서 느긋하게 지낸는 사람을 원하는 사람이다.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을 추구하는 21세기 시민 바로 그 모습이다.

p86

니체의 소극적 허무주의에서는 '초인'을 우선하고 '최후의 인간'은 경멸했다. 그리고 요즘 초인간주의transhumanism에 관해 왕성한 논의가 있지만 현실은 '최후의 인간'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19세기 사회로 역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윤리 교육의 강화를 통해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관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덕은 가르칠까 말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필수 학문이다. 그리고 도덕을 가르칠 때는 도덕적인 객관성이 존재한다는 사살과,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 지 찾아내는 방법을 교사가 가르치면서 아이들과 논의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위기'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잘못알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민주주의는 자신이 믿는 것을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로 성립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특정한 표현의 자유'와 혼동하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생각을 좋을 대로 표현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만 하는 것은 '페이스북'이라고까지 말한다.

자신의 적을 일주일사이에 무너뜨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 지 몰라도 엄청나게 어렵다. 민주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적과 싸우고 싶다면 매우 복잡하고 완만한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머지않아 '싸우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러니 더욱 건설적인 일에 집중하자'라고 생각을 바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인 제도의 역할이다.

p94

흔히 민주주의 하면 다수결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사회 내에서 어떤 상황에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방법론의 하나이다. 다수결의 원칙만을 주장한다면 이는 공리주의일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이 우선 시 되는 체제이다. 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법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민주주의의 느림을 이야기하고 있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자는 저자와의 대담 중의 내용을 책 뒷편에 <보강>편으로 추가해놓은 부분이 있는 데 이른바 '거짓말쟁이의 역설'을 논하며, 이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결국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분법적인 배제를 통해 무언가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타인의 존엄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존업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위기'

저자가 주장하는 '19세기 국민국가로의 회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세계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통해 세계적 규모의 상품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표면적인 글로벌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어떠한 국민국가의 법적 체제에도 완전히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화된 경제는 그에 걸맞는 세계화국가의 통제에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개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가 통제되지 않으니 점점 개별 국가들이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젠 전前 대통령이 되어버렸지만 트럼프는 어쩌면 이러한 현실을 절실하게 느껴서 자국 우선 주의를 표방하며 무역 전쟁을 일으킨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 경제를 생각하면 난 자꾸 짱구의 황금전자를 잊을 수가 없다. 유일 기업화되어 경제 전체를 아우르며 모든 사람들을 종속히키는 거대 기업...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기업의 구성원이 고르게 독립적인 권한을 가지고 기업에 참여하는 것 아닌 극히 소수의 누군가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기업... 이는 독재국가와 무엇이 다를까? 아니 국가는 국민의 참정권에 의해 통제라도 받는데 이러한 기업은 무엇으로 통제가 될 수 있을까?

GAFA로 대표되는 글로벌 거대 기업은 적절히 통제되어야 하고, 해당 서비스가 소비되는 지역에서 세금을 아주 많이 부과함으로서 지역 경제를 책임지는 한 축으로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 이건 내 생각이다.

상호 면책에 기반한 공면역주의co-immunism, 윤리 전문가 도입을 통한 도덕적moral 기업... 저자가 제안하는 대처 방식에 관심을 기울일 권력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테크놀러지의 위기'

인간의 사고는 생물학적이다. 그것은 H2O가 물인 것과 똑같다. 사고가 없으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거기에는 신경세포 등 그 외의 요소도 있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그러한 요소가 아니다. 인간의 신경은 뇌가 아니다. 하지만 신경이 없는 뇌는 없다. H2O가 없는 시냇물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대신하는 미래는 결코 올 수가 없다. 인간을 대신하기는 커녕 인공지능이 실재하는 미래는 오지 않으며, 애초에 인공적인 지능의 존재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p161, 162

인공지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당히 극단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을 보건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서 인정받고 존엄성을 가진 것이므로...

그리고, 이러한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야말로 다양성과 보편적 가치관을 갖는 신실재론의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봤다.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인간을 대신하여 많은 부분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지속될 수록 코로나 시대를 맞아 다시금 떠오른 기본 소득은 당연히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 활동에 인간들이 소외되면 될 수록 그 말은 인공지능과 로봇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인데, 이것들은 경제를 유지하는 또 다른 축인 소비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소비가 없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경제 침체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공멸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산하고 창출한 부는 기본 소득으로서 배분되어야 하고, 이는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위한 경제적 기반이자 사회의 경제 활동을 유지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될 것이다.

저자는 또한 GAFA(google, apple, facebook,amazon)에 대한 무상노동 제공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을 자랑하는 방법으로 SNS 등을 이용하지만 이에 대해 google 등은 (대다수의 이용자에게) 댓가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댓가를 받는다.

GAFA는 말할 것이다. 자랑질의 욕구를 풀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기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노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니 자기들에게 사용료를 내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이에 대해 저자는 다른 생각이다. 요즘 사람들은 일년에 넉달 정도의 시간을 인터넷에 할애하면서도 그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어떤 시각이 맞는 것일까?

개인이 받는 효용과 기업이 얻는 이익은 균형이 맞을까? 현재 상황은 공평할까? 그런데 왜 GAFA와 그 종사자들과 이외의 사용자 간의 경제적 차이는 왜 자꾸 눈에 밟힐까? 정당한 댓가의 셈법 기준은 뭘까?

'표상의 위기'

위에서 언급한 이런 위기는 결국 '표상의 위기'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한마디로 보이는 것, 보는 것과 생각과의 차이라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보이는 현실은 그렇지 않음에서 오는 차이가 있다. 이 차이가 유발하는 어떤 감정은 긍정적이거나 건설적이라면 좋겠지만 그 반대인 경우 나 자신에 한정될 수도 있지만 사회에로까지 영향을 줄어 불안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

가치, 민주주의, 자본주의, 기술에 대한 인식 차이, 생각의 차이가 위기의 원인일 것이다.

이 보이는 것과 생각하는 것 간의 올바른 관계 구축은 그래서 중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법과 윤리에 바탕을 둔 합리적 사고와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할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윤리 교육을 통해 편견을 없애고 도덕적 사회가 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함으로서 사회 불안의 원인을 없애야할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고, 앞으로의 건설적인 미래를 준비하고 영위해햐지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으로 과거로의 회귀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내일의 역사를 위한 참고자료이며, 잘못된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사례로 활용되어야지 지금의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방편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또한 다양한 문제 인식에 대한 편견이자 다양성에 대한 무시일 것이니. 하지만 더 나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이고 생각해봐야할 의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