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 왕과 사대부, 그리고 사관마저 지우려 했던 조선 최초의 자유로운 사상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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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덕일님의 책을 대여섯권째 읽은 것 같다.

그때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새삼 느끼게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 여러가지가 있어 참으로 복잡하구나... 라는...

책은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정치가, 사상가였던 윤휴의 삶을 이야기한다.

유학자로서의 그는 주자학만이 진리라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해석을 시도한 사상가...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남인이면서 청남파의 거두...

행정가로서의 그는 지패법, 만과 시행을 주도하고, 호포법 보완을 추진한 개혁가...

군인으로서의 그는 북벌론의 주장자이면서, 전차를 만들고 직접 압록강을 건너가겠다는 장수...

그가 정계에서 활동했던 숙종 시기는 그의 사상과 행동을 받아주기에는 물과 기름의 시간이었고, 권력의 이동에 따라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연극의 한 장이 이었다.

저자는 윤휴를 크게 두가지 범주로 칭찬한다.

하나가 주자의 해석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해석을 고집한 유학자라는 관점이다.

두번째는 북벌론을 주장하고 추진한 정치가라는 관점이다.

첫번째 관점은 북벌론자 관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야기가 적다. 당대의 학자로서 칭송을 받았으나 '나도 주자만큼 할 수있다'라는 생각으로 인해 주류 학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게된다. 다른 학문적 업적들은 북벌론 추진과 관련해서 좀 묻혀졌다고 해야하려나...

두번째 관점인 북벌론을 주장한 윤휴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아주겠다는 효종의 생각에 전적으로 찬성하고 자신의 필생의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생각에선...

북벌을 하기 위해선 국력을 키워야하고, 군사력을 키워야했다.

국력을 키우기위해선 백성들이 잘살아야하고, 이를 위해선 백성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 즉, 환곡과 군포의 폐단을 없애야했다.

군사력을 키우기위해선 능력있는 사람들을 많이 뽑아 활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조세 평등을 위해 사대부에게도 군포 납세 의무를 부과하려했고,

무과를 개선하여 응시 자격을 평민에까지 개방했으며,

나아가 주자학에서 강조하던 신분제를 없애 북벌 수행을 위한 바탕으로 삼아야했다. 하지만...

숙종의 생각은 달랐고, 당시 주된 정치 세력이었던 서인의 생각이 달랐으며, 주자학을 바탕을 하는 사대부의 생각이 달랐다. 북벌은 그냥 잊혀져갔고, 청나라는 점차 안정화단계에 접어들었다...

병자호란 이후 효종의 의지대로 북벌이 수행되었으면 어떠했을까?

삼전도의 치욕만 치욕이고, 임진왜란 때 당한 것은 치욕이 아닐까?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인가?

왕의 치욕은 치욕이고, 백성의 고난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서 남벌에 대한 논의는 한번도 없었던 것일까?

다 떠나서 복수를 해야하고, 복수를 위해 전쟁을 해야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군사력 증강을 통해 외침을 당하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복수를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전쟁을 해야하는가? 라는 물음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만주 벌판, 그 넓은 벌판을 활개치며 우리의 기상을 드높은 고구려인, 발해인, 많은 우리 조상들께는 죄송하지만 같이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조선시대의 당파 정치는 세도 정치와 함께 조선을 몰락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폐단이라고 평가받는다.

이황과 이이의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각자의 주장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남인이니 서인이니 하며 뭉친 것이 당파이고, 주장을 넘어서 그 주장에 바탕을 둔 정치를 나만이 해야겠다고 투닥거린 것이 당파정치라 할 수 있겠다.

예송 논쟁의 경우에서 보면 각 당파의 기본 사상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의 연장선에서 조선의 왕실의 권위를 중국 명청시대 황제와 비교하여 어느 수준으로 설정하느냐의 문제로까지 확대시킨 것이 원인이라 하니 자기 주장에의 집착이 얼마나 큰 파급 효과를 낳으며, 외곬수적인 행동을 가져오는 지 알 수 있겠다.

(이렇게 썼지만 나의 짧은 역사적 지식과 이해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당파 정치라는 것이 진정 나쁘기만 한 것인지... 적어도 어느 한쪽 의견에 우르르 몰려갔다가 반대 의견에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런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윤휴에 대한 다른 부분을 차치하고 신분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과 백성의 고단함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안타깝다.

기존 사대부들의 자기 이익챙기기에 막혀 법제화되고 실행되어야 했을 그의 개혁적 행동이 중단되거나 방해받은 것은 정말 아쉽다.

이런 것을 보면 돈 앞에 이념과 사상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서인과 남인으로 나누어져 비판하던 사람들도 자신에게 당장의 경제적 손해를 끼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선 한 목소리를 내며 치열하게 반대를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요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기에게 조금만 불리하거나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반대하고, 떼를 지어 시위하고... 더구나 가진 자, 있는 자, 소위 성공한 자들이 말이다...

윤휴는 그렇게 사망 300년이 지난 지금도 지워진 이름이 되었다.

아직도 그의 이름을 지우고 있는 우리 시대는 그를 살해했던 시대보다 나은가.

윤휴는 지하에서 묻고 있는 지도 모른다.

금기어가 된 조선 유학자, 윤휴. p396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과거의 것을 통해 오늘을 잘살고, 내일을 더 낫도록 준비하는 데 있다.

윤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시의 상황과 오늘의 우리 상황을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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