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규어 땜에 혹 해서 구입을 했는데..
음...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 피규어가 약간은 장난감 스럽다는 것.
프로모션은 좋은 편이라 약간의 개조만 한다면 장식성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오래 기다린 보람은 뽑은 셈이다. 기존의 dvd 타이틀 들은 그냥 딸랑 플라스틱 케이스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이 제품은 별도의 하드 커버로 다시 제품을 보호하고 있어 제품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한정판이라서 나름의 희소성도 있지 않을까?
이기담의 장편 소설로 총 2권으로 구성된 책 중에 마지막 권이다. 고주몽에게 배신당한 소서노의 행보를 그리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몽이란 드라마는 고증을 하지 않고 흥미위 주로 짜여진 점에서 잘못하면 역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므로 소서노에 관한 책을 읽기로 마음먹고 이리 글을 올리다. 뭐 아무도 보지 않겠지만 나 개인을 위한 일이기에 이리도 글을 남긴다. 요즘 정신이 없어서 도서관에 책을 연체하는 실수도 하는 와중에 독서 권수를 늘리려니 좀 힘들다. 자 그럼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우리 알고 있는 백제..몇명이나 관심을 갖고있을까? 진짜 백제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성의 맨얼 굴을 보기 힘든 것처럼..이 책도 작가의 사견을 더한 거긴 하겠지만 우리각 언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며 고대사에 관심을 갖을까 만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백제에 관해서 약간 이야기 할 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조는 백제의 시조가 아닌 십제라는 나라의 시조 였다고 한다. 열명의 신하로 세운 나라라는 의미이다. 처음에 고구 려 유민들이 정치세력 싸움에서 밀리자 소서노와 한반도로 남하하 고 지금의 평안도 어딘가에 (대방고지) 처음으로 백제를 건국하지 만 낙랑과의 싸움에서 패배 청천강을 건너 다시금 남하하게 된다. 그리고 비류는 인천으로 알려진 미추홀에 (비류는 해상세력임을 짐 작할 수 있다.) 온조는 형인 비류와 분립하여 위례성에 도읍 을 정하고 십제를 건국한다. 비류는 우태의 아들이고, 온조는 고주 몽의 아들이며 , 고구려 제2대왕 유리와는 이복형제가 되는 것이다 유리와 온조는 어머니가 다른 이복형제이며, 비류와 온조는 아버지 가 다른 형제인 것이다. 유리와 비류는 완전히 남인 것이다. 소서노가 비류와 온조 사이에서 일어나는 권력 다툼을 막고자 노력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오 그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리고 온조는 어 머니인 소서노가 죽자 지금의 하남 위례성의 부아악으로 천도하게 된다. 비류의 백제는 고구려 광개토태왕의 침략을 받고 서기 396에 멸망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온조가 그 이름을 이어 받아 서기 660년까지 그 이름을 사용한다. 중간에 성왕이 남부여로 개칭하지 만 그 이름은 계속 사용되어진다. 소설에서는 비류는 인에 바탕을 통치자였고 온조는 무에 바탕을 둔 통치자 였다고 한다. 당시의 정국으로 미루어 보아 역시 무력에 바 탕을 둘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동이족이 사는 곳은 고조 선의 멸망으로 수 천개의 군소국가들이 난립하고 있었음에 그 미래 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온조는 무력을 나라 경영의 목표를 두었고 그의 나라는 역사에 기록을 남겼다. 굳이 고대사에 관심이 없다면 그러한 사실이 뭐가 중요하겠는가라 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중국이 벌이는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모르고서 우리가 어찌 이 나라를 옳바르게 경 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한다. 역사는 민족의 자긍심이며 뿌리이고 우리의 거울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면 우리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금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노 력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우리에게 밝 은 미래만이 있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조금은 신선하 고 낯설었으며 시원했다. 이 작품의 주된 배경은 밤이다. 밤을 통하여 도시 안에 살아가는 인 간 군상의 모습을 성찰한 책이라 하겠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감상노트의 내용처럼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그런 글은 아니지만 내 나름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백하게 적을까 한다. 밤의 도시에 사는 인간... 밤이 시사하는 것..바로 해방이다. 낮이라는 이성이 지배하는 관념 에서 모든 일탈하는 존재들의 해방. 밤에 남녀의 역사가 일어나고, 범죄도 발생한다. 밤은 인간에게 있어 해방의 출구인 것이다. 밤은 인간의 이성을 재우고 감성 및 감정을 깨운다. 밤에 글을 쓰면 감성적이만 낮에 쓰면 이성적인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인간 내면의 욕망이 표출되는 시간인 것이다. 잠을 빼앗긴 도시... 밤의 도시는 늘 환락과 일탈을 꿈꾸는 욕망의 불나방들이 모인다. 그러면서 인간은 쉬지 않고 욕망의 불길에 자신의 몸을 불살라 스스 로 붕괴한다. 인간 스스로의 붕괴.인간성의 상실. 바로 폭력의 증가 욕망의 노예 인간은 밤의 도시에서 그렇게 자신의 인간성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온라인이라 이 정도만 적고 자세한 내용은 내가 따로 정리하는 공책에 적을 것이다. 그것이 보고 싶다면 나에게 이야기 하면 된다..이 정도가 내가 느낀 것이고 그러한 도시에서 우리가 욕 망의 노예가 되지않고, 욕망의 주체가 되는 방법을 책은 이야기 하 고 있다. 욕망의 주체가 되는 것.욕망의 승화..바로 자아실현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말한 자신만의 삶의 신화를 찾아 가는 것..바로 꿈의 실현..이상의 실현..자아의 실현... 인간 내면의 독특한 성찰과 모든 것을 제시하지 않고 독자를 이끄 는 것에만 신경을 쓴 구성.. 일단은 가볍게 한 번 일고, 시간이 지난 다음 이렇게 한 번 정리하고 다시금 정독을 요하는 책이다.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인간의 본성은 과연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 정말로 어렵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하는 평범한 생각일 것이다. 나의 지적인 수준으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약간은 벅 찬 주제였다. 결국엔 읽다가 포기하고 확 방향을 바꾸어 이타적 유 전자를 읽었다. 아직도 머리 속에서 정리 중이라 여기에다 올리기에는 좀 버겁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이타적 행동은 이기적인 목적에 의하여 행해진 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자선 행위를 한다면 우리에게는 금전적인 이윤이 전혀없다. 정말로 비합리적인 행동이지만 우리의 사회적 명성을 얻는다는 것이다. 개인이 이러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자선을 행한다고 해서 개인의 자선 행위가 선한 행동이 아니라고 보 기는 힘들다. 그 외에도 죄수의 딜레마와 공유지의 비극. 등의 개념 이 등장하며 인간의 특징인 집단의 노동 분화와 성에 의한 노동의 분화 등 일일이 기억해서 열거하기에도 복잡한 항목들의 고찰로 인 간만의 본성을 탐구. 인간의 행동이 절대로 이타적이지 않으며 인간 을 규정짓는다. 절대로 한 번 읽어서는 완벽히 소화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이 책 을 다시 읽을지는 의문이다. 총 한달을 걸려서 요약하며 읽었는데도 조금은 생소한 내용이라 머리에 남는 것이라고는 단어 몇 개와 어설 픈 개념 정도. 역시 독서는 멀고도 험한 지식의 탐구 과정이다. 이정도의 책을 쓰려면 정말로 많은 것을 알아야 겠구난 하는 어설픈 감탄을 해 본다. 이 책은 인간이라는 주제를 놓고 생물학적 관점. 경제적 관점. 인문 적 관점등에서 접근함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접근하기 힘 든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반인륜적 범죄와 사람들의 이상심리. 이상행 동등 어쩌면 우리가 인간이기에 설명하기 힘든 일인지 모른다. 인간은 이렇다 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의 주위에 과연 몇 이 나 있을 수 있을까? 감히 나는 이 자리에서 인간을 정의 내려 보겠다. 인간은 질문하는 동물이다. ^^ 인간은 이런한 지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서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 를 상대적으로 알아냄으로 우리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과연 이타적인가 아니면 이기적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연 인간의 한 개체인 나는 얼마나 세상에 질문을 하고 그 것을 답 하고 알아내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예술 작품을 해석하는 일은 그 작품을 강간하는 것과 같다는 어느 예술가의 말처럼 책을 해석하는 일은 어쩌면 이에 버금가는 죄일지 도 모른다. 그러나 허접한 나의 재주나마 나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 해 이렇게 글을 남긴다. 우선 학교에서 대여한 이 책은 무슨 센스로 말미암아 책의 제목을 바코드로 가리는 무지몽매한 심미안의 센스를 발휘하셨는지 차암... 답답하다. 그래도 이에 굴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나의 정복점을 또 자랑할까 한다.ㅋ 프로이트와 융..유명한 정신 분석가들이다. 프로이트의 1900발표된 꿈의 해석은 우리의 세계인식에 또 다른 획을 그었다. 사람의 신경 증이 성적인 욕구에 기인한다.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콤플렉 스는 칼 융이 처음 제안한 언어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다 싶이한 단어이다. 이 책은 추리 소설인가 하면 연애 소설도 같은 묘한 매력의 이국적 여성같다. 그래서 500쪽의 방대한 분량을 그리도 밤가는 줄 모르고 읽었을지도 모를일이다. 사람이 살아감에 사랑 이야기가 빠지면 정 말로 무료한 그림없는 책을 영원히 읽는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것이 플라토닉 러브든 아니면 에로스적인 사랑이든 아니면 뒤틀 린 새디즘 마조히즘의 사랑이든..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지만 이 것이 옳다하고 난 정의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ㅡㅡ; 책은 20C 미쿡의 번화한 뉴욕을 배경으로 범인이 접근하기 힘든 럭셔리한 사교계와 우수한 혈통과 돈 많은 부자들의 모습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마천루 속에서 인간의 어두운 면인 욕망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사람들에게 내미는 이성적인 카드 와 그리고 내 내면에 자리잡은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그리고 보여 줘서는 아니되는 욕망의 카드를 보았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그 욕 망의 카드를 보여주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욕망의 수호천사가 된 다. 바로 범죄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가진 욕망 중 가장 강한 욕망인 성욕. 기독교적 세계관의 도 래로 말미암아 우리는 금욕적인 성을 강요받았고, 그 욕구들은 우 리의 내면에서 수 세기 동안 어둡게 뒤틀리고 이른바 야동과 야사라 는 모습으로 표현 작금의 무서운 현실에 투영되고 있다. 규제가 아닌 인정을 통하고 건강하고 욕망을 통제하고 적절히 표출 함으로 우리는 더 진화할 수 있는게 아닌가 나의 사견을 부언한다. 이 책은 지적인 여행을 나에게 제공했고, 내가 어떤 욕망을 가진지 한 번 돌이켜 볼 기회를 제공한 책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음이 궁금해지게 하였고,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는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하였다. 또 한 가지의 읽을 거리는 to be or not to be의 작가의 재해석이 있 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잘 몰라 이해하는데 어려웠고 지금도 솔 직히 먼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난 범인이라서 ㅎㅎ; 그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가장할 것인가의 문제. 현실에 족할 거 인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 나의 모습을 가장하고 나의 목적을 이룰 것 인가? 어렵다.. 지적인 갈증에 목마른 독자가 있다면 살인의 해석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