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클레이
에이드리언 차이콥스키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반부는 지루했다. 지구는 독재적이고 반민주적인 형태로 통합된거 같다. 과학자들은 정통 학설에 반하는 지식을 설파하면 외계 행성으로 추방을 당한다. 마치 천동설에 반하는 지동설을 이야기하면 사형당하는 것과 비슷하다. 조선시대에 홍도로 유배를 보내면 그건 유배가 아닌 사형이었듯이 가서 죽으라며 추방을 보낸다. 광속을 뛰어넘는 우주여행 기술은 없는 것 같고 수십년동안 냉동해서 보낸 뒤 별에 도착할쯤 깨운 뒤 우주선은 해체되고 개별적으로 지상으로 내려보낸다. 지구 독재 정권은 꽤나 수학적이고 자본주의 적인것 같다. 인간의 목슴까지 모든 것의 손실율을 계산해서 보내고, 일부 죽어나가는 것도 미리 계산한다.

 전반부에는 킬른의 구조물과 그에 대한 창조자 이야기가 주가 되지는 않는다. 주인공 아턴 교수가 반동세력으로 추방을 당했고 배신자는 누구인지, 내가 배신자로 오해를 받는 거는 아닌지 이런 이야기들이 계속 될때는 지루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포함한 일행이 탐사를 나간 곳에서 고립되고, 본부는 손실처리 하지만 살아서 돌아가려 할때부터 이야기는 긴박해진다.

 킬른의 생명체는 마치 레고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 합쳐진다. 그들은 군체처럼 어느정도 정신을 공유하지만 개별 고유성도 유지한다. 그리고 건기와 우기에 따라 자신의 고유성을 구조물에 마치 문자처럼 남겨두고는, 다시 그걸로 고유성을 찾는 것 같다. 이런 사실을 주인공일행은 밖에 낙오 되었을때 서서히 침투하는 킬른의 분자구조가 지구의 분자구조에 공유되면서 알게된다. 그리고 킬른의 힘으로 반란을 성공시키게 된다.

 지구에서는 당연하고 외계에서도 그럴거라고 생각한 적자생존의 진화는 킬른에서는 전혀다르게 적용된다. 생존하고 진화하는 것이 다른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고 협력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외계에 일정부분 지성을 갖춘 생명체가 있다면 분명 지구와는 다르게 발전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체라는 단어자체가 일종의 편견일 수 있다. 우리가 무생물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생명체 일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지구생명체인 인간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킬른이 방식은 많은 거부감을 가지게 한다. 내 생각과 기억을 남들과 공유하면서 개별 고유성을 가지는 것은 정말 원하지 않는다. 내가 어느 정도의 어둠과 욕망과 나쁨, 그리고 나만의 것을 가지기를 원한다. 아무리 개별 고유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생각이 공유되는 것은 영생을 보장하더라도 포기해야 될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농담이다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탠드업 코메디를 본적은 없다. 책에 나오는 코메디는 단순히 웃기기만 하지는 않는다. 의미있고 철학적이기도 하면서 농담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소설에 나오는 스탠드업 코메디를 글로 읽어서 그런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코메디는 강산에의 노래처럼 웃기고 울리고 다시 웃기고 울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의 코메디는 진정한 코메디라고 생각한다.


 송우영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돌아가신 전남편의 아들인 형이 우주에서 소리로서 다시 만나게 되는 설정은 슬프면서도 감동적이었다. 어머니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녹음하여 우주에서 보내온 형의 이야기와 만나도록 우주로 보낸것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우주비행사처럼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이것 자체가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작가 후기가 가장 나를 크게 웃게했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작가 후기 중 가장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해설에 나온 표현처럼 마지막 결말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맨 처음을 다시 볼수 밖에 없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의아한 부분이 조금 있었다. 가출한 10대 소녀가 이제 20대가 된 대학생한테 아저씨라고 하는 부분과 바텐더가 30대 중반이라고 하는게 좀 이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작가의 서술트릭인 미노루, 아들, 마사코, 엄마의 쓰임에 속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에 당황하게 되는 소설을 만나 즐거웠다. 책을 읽는 속도도 재미 때문에 엄청 빨랐다.

 하지만 이 재미는 일반적으로는 받아 들이기 힘들수 있다. 네크로필리아는 호러나 고어를 좋아하는 나한테도 힘든 이야기이다. 거기다 시체훼손, 그것도 성적인 시체훼손은, 차마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권유하지는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기 작가여서 그런지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생각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면이 좋았다. 결국은 사람이니깐.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작가가 결국은 스스로 생을 끊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마지막 3가지 이야기가 2차 세계대전 중의 절망과 같은 독일인이라는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처럼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리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좌절과 불행에 지쳐서 외면한다는 센강의 낚시꾼 이야기에 공감한다. 마치 사람이 살기 위해서 미치는 것과 같다. 미치는 것만이 죽지 않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상의 불행과 절망에 대해 관망하고 무관심해지는 나 자신이 싫어지고 스스로 놀라는 경우가 꽤 많다. 하지만 결국 자연이 이어지려고 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안톤 같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그처럼 사는것은 나에게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를 만난다면 내 삶의 결에 영향을 줄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100여년 전에도 안톤 같은 사람은 거의 유일무이 했을것이다. 그러니 현재 이 세상에 과연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든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최건원.임왕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경험상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책의 목적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러면 길을 잃지 않고 읽어 나갈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오래전 종교들이 세계 각 지역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유사한 이야기와 철학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융의 원형과 집단 무의식의 한 증거이기도 한 것 같다.


1) 신비한 빛의 경험.

 빛에 대한 종교와 여러 신앙들에서의 설명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오래전의 인간이라면 빛이야말로 가장 신비롭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원형적인 감각이다. 아직도 인간은 빛을 통하여 깨달음이나 초월 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 빛이 실질적인 빛일수도 있고 호르몬에 의한 빛일 수도 있고 상상이나 착각에 빛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빛인 것인다. 

 탄트라 이야기에서 로버트 실버버그의 '두개골의 서'가 연상되었다. 그리고 티베트나 이란의 빛에서 성적인 것으로 나아간후 적대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이채롭다. 듄의 대이주후에 돌아온 마녀들도 연상된다. 각자의 종교들이 서로에 대해 다름을 이야기하지만 빛의 현현에 대한 생각은 비슷하다.


2)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또는 총체성의 신비

 신과 메피스토펠레스가 공감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의 삶을 작동하게 해준다. 선과 악이 대립의 합일을 이루고 신과 사탄은 형제로서 여겨진다. 이런 것들은 신비주의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불교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했으나 고대 그리스에서, 이란에서, 루마니아에서, 인도에서 그리고 기독교적인 파우스트 등 너무많은 곳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양성인에 대한 제의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이것이 완벽에 그리고 창조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총체성을 바라는 것이 지반묵타이던 니르바나이던 결국 인간이 바라는 것이다. 언제쯤 내가 쉴곳을 찾고 가슴속의 이 불길이 가라앉을지 바라는 마음도 같은 것 같다.

 "신의 완벽성은 품성과 미덕의 합계로서가 아니라, 선과 악을 초월한 절대 자유로 생각되어야 한다.", "신이나 궁극적 실재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도는 신성을 직접적인 경험과 관련지어 생각하거나 상상하기를 한순간만이라도 포기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에 대한 생각을 잘 정리해준 말이다.


3) 우주의 갱신과 종말론

 백인을 다시 살아돌아온 사자라 생각하고 화물을 마법의 산물이라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사대주의적인 화물숭배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종말론적 나체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성적인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건지 잘 모르겠다. 과거의 사람들이 생리학적 작용을 신비스럽게 보고 현대인은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생리학적 작용보다 자연이 더 신비할거 같다.

 우주는 재창조되어야 하고, 시간은 주기적으로 재생되어야 한다. 이러한 종교적 생각은 과학적인 우주 이론을 생각나게 한다. 종교, 철학, 과학이 결국 서로 완전히 다를수 없는 인간의 사상이라는 하나의 증거처럼 보인다.


4) 밧줄과 마술

 인도에서 밧줄을 하늘로 세우고 사람이 올라간뒤 그 사람이 절단되어 떨어지고 다시 합체시켜 부활하는 마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인도에만 있는게 아니라 중국이나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 있다는 것은 몰랐다. 더욱이 이것이 하늘로 올라가는 행위, 신체 절단 및 파괴 후에 새로운 부활이라는 제의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끈으로 신과 연결된 것이 소통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묶여있고 자유롭지 못할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진정 자유로운게 무엇인지, 운명은 무엇인지는 정말 어렵고 죽을때까지도 풀기 힘든 문제인것 같다.


5) 종교적 상징주의에 대한 업금들

 종교적 상징주의에 대한 종교사학자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연구가 그렇겠지만 종교적 상징주의에 대한 연구만큼 모든 것을 검토하고 확인해야 하는 어려움이 큰 것은 없을것 같다.

"영원에서 진실인 것이 반드시 시간 속에서도 진실인 것은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