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시의 마법사 어스시 전집 1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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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침묵 속에만
빛은 어둠 속에만
삶은 죽어감 속에만 있네.
텅 빈 하늘을 나는 매의 찬란함이여.

(본문 중에서)

 

가끔 막 돼먹은 어떤 사람에 의해 한쪽 면이 말끔하게 갈려나간 동전을 보곤 한다. 10이란 수자는 멀쩡히 있는데 반대편에 있어야 할 다보탑과 '십 원'이란 글자는 사라지고 없다. 무슨 생각으로 동전의 존재 가치를 깡그리 무시해버릴 이런 수고를 한 것일까? 무슨 의도였든 덕택에 한쪽 면이 말끔해진 동전은 동전으로서 온전한 존재 가치를 부여받긴 틀려버렸다.

삶과 죽음. 그 둘도 동전의 양면처럼 둘 모두 존재해야만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살아있는 자들은 무엇인지도 모를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 너머를 알 수 없는 죽음을 회피하려 든다. 죽음은 삶을 단절시키고 삶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삶이란 걸 지독히 변덕스런 사람들이 감당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질문에 '감당 못하지'라고 확답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 답을 모른다. 죽음이 무언지도 모르고, 죽게 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며, 혹시나 죽음이 사라진 삶이 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 삶을 일구어 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 사라진 삶, 끝이 없는 시작이란 정말 끔찍할 거라는 데 주저 없이 두 손 두 발 다 들 수는 있다. 다시 말해 '끝'이란 단어가 '시작'이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듯이 삶의 앞길 그 어딘가에서 기다릴 죽음이 비로소 삶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삶의 품 안에서 죽음을 갈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는 행위다. 죽어가는 나무에서 남모르게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모든 생명은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는 게 자연스럽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망각할지언정 일부러 죽음을 향해 발을 내딛어선 안 된다. 죽음이 내포한 두려움, 무한한 어둠.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은 그 화려함과 진실함을 이어갈 것이고 자연스레 죽음을 향해 조심스런 발걸음을 떼어 놓을 것이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언뜻 보면 상반된 두 개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뗄 수 없는 두 개를 놓고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땅과 바다, 드러남과 숨겨짐, 포용과 회피. 어느 한 쪽을 무시한다면 한 쪽 면이 말끔히 갈려나간 동전처럼 되어 버리는 것들. 신기한 마법 대결도 없고 박진감 넘치는 육탄전도 없지만 소설은 그 어떤 판타지 이상 가는 재미와 생각을 선사한다. 화려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을 원한다면 이 소설은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제쳐 두고라도 삶을 얘기할 때 화려함과 거대함 속에서만 그 가치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동전 한 닢만으로도 얼마든지 사람들의 진실하고 소중한 얘기를 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이해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바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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