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 - 서양고중세사 깊이읽기
윌리엄 레너드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 푸른역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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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누구도 세르반테스를 능가하는 작가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시대를 단 한 발자국도 앞서 가지 않았다... (책 본문 중에서)

 

역사서다. 역사 관련 서적이 지닌 단점은 다 지니고 있다. 모르는 인물이나 사건이 나오면 주를 읽기 위해 앞뒤를 오가야 하고, 심지어 한 문장을 읽기 위해 반 페이지 분량의 주를 읽어야만 할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은 번호를 잘못 찾아가 엉뚱한 주를 읽고 헤매기도 한다(엉뚱한 주를 읽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도 다행이지 싶다). 게다가 이 책은 한 시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략 기원전 천 수백 년부터 기원후 1600년경까지, 그러니까 거의 삼천년에 걸친 역사를 다룬다. 아무리 서양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범위의 역사서를 읽으려면 역자가 달아놓은 주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책이 여러 저자의 글들을 시대별로 모아놓은 터라 부분부분 끊어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사건 또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춘 채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그 시대를 규정짓기 때문에 글을 읽다가 '이 내용이 도대체 어쩌다가 튀어나온 거야?'라는 식의 방황에 빠져들 가능성이 조금은 줄어든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 역사서는 역사서다. 다른 거 다 제쳐두고 표지에 빨갛게 써 있는 글자를 보자. '서양 고중세사 깊.이. 읽기'... '쉽게' 읽기가 아닌 '깊이' 읽기다. 내 평생 소설을 제외하고 만만한 역사서는 본 적이 없다.

써놓고 보니 굉장히 고리타분한 책이라고 강조한 듯한 느낌이다... 뭐, 역사서니까. 그래도 세계사 교과서보단 훨씬 낫다. 외울 필요도 없고 앞뒤 분명하고 진도에 쫓길 필요도 없으니까. 책장에 꽂아놨다가 생각날 때마다 한 편씩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싶다.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가 남의 일기장을 숨죽여 들여다보듯 시대가 낳은 자식들의 이야기를 훔쳐보는 재미에 빠져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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