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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개정증보판)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3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7월
평점 :
지침서나 설명서 느낌의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는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고, 작가의 생각이 일방적으로 술술 들어오는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는 건 어쩌면 그걸 빌미로 상상과 생각을 하기 위함인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건 좀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요즘은 예전 같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들도 읽어보려고 한다. 알라딘에서 사는 책은 내가 읽고 싶은 책들로, 밀리의 서재에선 추천되는 책들로, 간혹 선물 받을 일이 생기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역사의 쓸모>는 추석 때 선물 받았던 책이다. 교보문고에 갔다가 책을 사준다길래 1위부터 10위까지 쭈욱 진열된 인문 서적 코너에서 그냥 덥석 집어 들었다. 읽어보니 재미있더라. 그냥 받아들이니 편하기도 하고.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는 일 아닐까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겁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왜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들고 광장으로 나왔을까, p156)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에 대한 화두는 꽤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 책에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전후로 등장한 태극기 부대를 한 예로 든다. 난 이제야 알게 된 단어지만 ‘틀딱충’이란 단어로 그들을 혐오, 비하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들이 살아온 시대의 얘기를 한다. 전쟁과 폐허, 가난, 박정희 대통령, 한강의 기적. 이 중 일부는 내 어린 시절을 관통했던 사실들이지만 50대인 나에게조차 이젠 희미해진 기억들이다. 그러니 내 아랫세대들에겐 말해 무엇할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단순히 대통령의 퇴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60대 이상 세대들의 과거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란다. 박근혜를 통해 공유되었던 과거의 기억들(유물들)이 자연스러운 순서가 아닌 강제적인 절차를 통해 끄집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우리가 이해한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분들은 여전히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를 외칠 것이고 정치인들은 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적어도 ‘틀딱충’이란 단어는 탄생하지 않았을 거란 게 저자의 이야기다. 공감하려 한다면, 이 시대가 혐오와 비하의 시대에서 한 발짝이라도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거다.
시선을 2024년으로 돌려본다. 요즘 부쩍 실감하는 점은 단체의 리더들이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뭐 대통령이야 직진 이외엔 모르는 분이니 말할 필요도 없겠고. 아시안컵 축구 이후로 대한축구협회에서 슬슬 불이 나기 시작하더니 아시안 게임 직후엔 배드민턴 협회 문제가 불거졌고, 곧이어 대한체육회 쪽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하지만 해당 단체장들은 안하무인이다. 노조가 들고 일어나고 국회에서 문제를 지적받아도 ‘My Way’를 고집할 뿐이다. 이 현실을 완벽한 세대 갈등이라고 볼 순 없겠으나 권위주의의 끝자락을 붙잡은 세대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벌어지는 일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공감해야 하는가?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데. 모르겠다. 아, 이래서 작가의 가르침이 명확한 책을 읽는 거구나. 그러니까 이게 결론이다. 지침서나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
어차피 두서없이 하고 싶은 말을 휘갈기는 거 같으니 하나만 더. 트럼프, 푸틴, 네타냐후, 김정은. 이 조합은 예전에도 한 번 있었다. 내년쯤엔 트럼프 2기가 시작되니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추가된다. 역사가 말해주듯 출중한 리더일수록 다양한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잘 씀으로써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간다. 이번에도 부디 그랬으면 싶다. 트럼프란 돌발 변수를 상수처럼 안고 가야 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하늘이 나를 살려준 이유가 있다고들 말해준다.’ 트럼프가 한 말이다. 이 말이 자신이 내리는 결정에 아주 조금이라도 기반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리더와 운명론은 때론 지극히 위험한 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