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원도 - 《구의 증명》이 있기 전 《원도》가 있었다!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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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자식이 생기면 쓸 돈이 많다. 집도 구해야 하고 교육도 해야 하고. 기본적인 걸 충족시키면 그 이상을 해야 한다. 더 좋은 집을 사고 유학도 보내야 할 거 같고. 그러기 위해서 돈을 벌다 벌다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궁금증이 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삶을 부정하는 의문이 아니다. 어느덧 시간과 함께 사라져 버린 젊음이 그리워서, 돈 버는 기계가 된 듯한 현재가 안타까워서,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나이의 앞자리가 부담스러워서 나오는, 더 좋은 삶이 있지 않나 하는, 삶에 대한 애착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누구나 한번은 거쳐 가는 질문. 그런데 여기 비슷하면서도 다른 질문이 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는가?' 여기에 오기까지 지나온 길이 그토록 끔찍했는데 어째서 버텨내는가? 고통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내 삶을 싹 다 부정해 버리고 싶을 만큼 거대한 고통에서.

 

어떤 아이는, 배고프다며 울다가도 엄마가 밥을 차려주면 숟가락을 집어 던지며 더 크게 운다.

원도가 그런 아이였다.

엄마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니야.

그런 아이였다.

엄마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야.

(본문 중)

 

원도는 많은걸, 아니 모든 걸 원하는 아이였다. '전부'란 단어만큼 명확한 건 없다. '공평'하게 '나눈다'라는 건 물질에서나 가능하지, 추상적인 관념에 있어선 어림도 없는 얘기다. 그래서 원도는 전부를 원했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명확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은 원도 주변에서 멀어져 갔다. 모든 걸 원하면 원하는 만큼 세상을 밀어낸다는 걸 원도에게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이해와 용서, 자유와 책임, 만족과 믿음. 좋은 단어들이 원도 곁에 즐비했지만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불확실했다. 원도는 버둥거린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 '인간관계'란 나쁜 의미로 바라보면 거미줄이나 다름없다. 버둥거릴수록 옴짝달싹 못 하게 되거든. 그렇게 원도는 세상을 밀어내고 혼자가 된다.

 

다시 질문. 왜 죽지 않았는가? 살아 있으니까.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이것뿐이다.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도 다른 답은 못 내놓을 듯하다. 삶에 정답이 있던가? 살면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 중 명확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죽음은 아예 몰라서 두렵지만 삶은 알 듯 모를 듯, 그래서 버둥대고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그래서 모두에게 똑같지 않은. 그런데도 내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또는 내가 원하는 삶을 타인에게 강요하려고 하는. 그런 게 이 세상 속 삶이겠지. 그럼 또 다른 질문. 이런 삶을 살면서 어떻게 해야 똑바로 서 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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