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의 엄지 - 자연의 역사 속에 감춰진 진화의 비밀 사이언스 클래식 29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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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조작극은 과학이란, 개인의 희망이나 문화적 편견, 영예를 얻으려는 욕구 등을 통해서도 추진될 수 있으며, 또한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경로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기도 하는 인간 활동의 하나라는 사실... (본문 중에서)


1912년 영국 필트다운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로 추정되는 머리뼈 파편들이 발견되었고, 영국 고생물학계는 중요한 발견이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수십 년 후 이는 조작된 사기극으로 밝혀진다. 발견 당시에도 논란이 있었고 심지어 머리뼈 파편들의 정확한 실체를 꿰뚫어 본 학자도 존재했지만 당대 영국의 관련 학자들은 이를 무시했다. 지금 보면 너무나 명백한 조작이었건만 그 당시 내로라하는 지성들이 그 조작의 증거들을 외면한 채 필트다운인을 진화의 중요한 한 단계로 인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과학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객관적이고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내세운다. 당시의 문화적 편견, 정치․국제적 상황, 사회 제도, 거기에 개인의 희망까지 그 모든 것들이 일종의 필터로 작용해서 그것을 거친 후 우리들에게 도달한다는 거다.


<판다의 엄지>는 수년 동안 특정 잡지에 연재하던 에세이들을 한 권에 모아놓은 책이다(그런 면에서 작가의 이전 작품 중 하나인 <다윈 이후>의 후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진화라는 일관된 주제 속에서 다양한 에피소드와 이론들을 소개하고 작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써내려간다. 그 중 하나가 위에 언급한 필트다운인에 관한 것이고, 그 사건으로부터 과학이란 객관성을 담보로 한 주관적인 인간 활동 중 하나라는 생각을 이끌어낸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에피소드에 따라(전문 지식의 구체적 서술 여부에 따라) 쉽게 읽히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필트다운인에 관한 이야기는 비교적 술술 머릿속에 들어오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과학에 대한 작가의 생각 때문에 지금 이 글에 오르내리는 중이다.


조금은... 아니다, 사기극에 관한 게 아니니 많이 다른 얘기겠지만 요즘 우리는 과학이 우리에게 선사할 중요한 선물 하나에 온갖 관심이 쏠려있다. 바로 코로나 백신이다. 근래 보기 드물게 한 분야에 자본과 재능이 집중된 탓에 보통 개발 과정보다 훨씬 빠르게 등장할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과학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까? 속성으로 이루어지는 임상 과정과 그 이후 이어질 다른 학자들의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다가 그 어떤 백신보다 대규모 집단에 투여될 이 백신이 정말 객관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과학의 산물일까? 이 경우는 정치와 사회의 절박함이 필터로 작용해서 과학이 우리에게 도달할 터이다. 그렇다면 이 백신은 수년 후 우리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줄까?


참고로 이 책은 1980년에 출간됐다. 내용 중엔 한때 정설로 인정되던 이론들이 힘을 잃고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폐기된 사례들이 나온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렀으니 이 책에 나온 이론들이 지금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전문적이 이론인 경우는 그렇다. 하지만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통찰력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걸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희망이나 욕망이 덧씌워진 과학이 때론 세상에 어떤 엉뚱한 결과물을 가져다줄지 예상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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