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과거든 미래든 바꿀 수 없단다. 흔히 보는 SF 타임머신 영화나 타임슬립 영화와 궤를 달리 하는 이야기다. 운명론인 거 같지만 잘 살펴보면 지독한 굴레도 아니다. 우연과 의도는 태피스트리의 각기 다른 한 면이므로 어느 한 쪽이 맘에 들고 안 들고 할 수는 있으나 어느 한 쪽이 가짜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 우연에 바탕을 둔 인간 행위와 의도적인 신의 뜻, 두 가지로 이루어지는 세상사를 표현하는 문장이지 싶다. 신이 의도해 놓은 섭리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한 이야기. 딱 어울리는 비유는 아니겠으나 신이라는 프로그래머가 만들어놓은 심즈(Sims) 게임, 그게 이 세상이다.


2.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인공지능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가깝게는 우리 실생활이 얼마나 편리해질 수 있는가부터 멀게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까지. SF 영화도 있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로봇, 사람을 없애려는 기계 등등. 이 소설은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 자아인식과 성장이 가능한 디지털 유기체 또는 소프트웨어. 현재의 반려동물과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될 듯하다. 단,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기술의 힘을 빌려 현실과 사이버 공간을 오고가는 차이점은 있다. 이야기는 이 책에 실린 소설 중 가장 길지만 질문은 하나다. 이들과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책에 나온 문장으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해 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초인적인 지성을 갖춘 고용인이 아니라, 초인적인 지성을 갖춘 제품이니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간처럼 반응하지만 인간을 대할 때와 같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존재이며..


3.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20세기 초반이든, 앞으로 다가올 22세기든 언제나 시대를 대표하는(또는 초월하는) 기술은 존재한다. 그 기술에서 비롯되는 문화나 양식은 초반엔 다소 낯설 수 있겠으나 서서히 대부분 구성원들의 삶에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이다. 스마트폰으로 아이를 달래는 부모를 흔하게 보는 요즘이다. 그냥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애 앞에 들이밀고 조용해진 상황에 만족할지, 때론 아이에게 어떤 욕구 불만이 있는가 살필지 여부는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다. 기술이 가져다 준 폐해는 대개 그걸 사용한 사람들의 문제다. 단, 행동 주체가 사람인 한에서.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의 행동 주체는 사람일까, 기술일까?


4.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억과 진실과 당위성에 관한 이야기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정과 망각이 가능한 기억.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변함없는 진실. 때와 장소에 따라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 작가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문득 정치가 떠오른다. 정치인의 삶이란 것이 곧 저 세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