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꽃
장 퇼레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851년 12월 14일,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법정에서 한 여자가 사형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엘렌 제가도. 드러난 것만 해도 37명의 사람을 독살한 이 희대의 연쇄살인마는 어떻게 죽음의 신 ‘앙쿠’의 현신이 된 것일까?  여기까지가 팩트다.  1851년이니 어마어마하게 오래전 이야기인데, 이런 일이 있었단다.  왜 죽였을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죽음의 신 '앙쿠'의 헌신이라던 엘렌 제가도의 이야기가 2000년을 살고 있는 우리곁에 다가왔다. 장 퇼레의 어마무시한 글발로 말이다.  어찌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유머처럼 슬쩍 슬쩍 건들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처음엔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어느 누가 첫장을 읽으면서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겠는가?   

 

  

“아, 그거 꺾으면 안 돼요, 엘렌, 그건 천둥꽃이란다. 가만 있자, 이제부터 너를 천둥꽃이라 불러야겠다! 그쪽 줄기도 잡아당기면 안 돼, 그건 독사꽃 줄기야." (p.10)

 

  미신이 마을을 안개처럼 뒤 덮고 있는 곳, 브르타뉴.  켈트 문화의 뿌리가 워낙 깊은데다, 언어까지 프랑스어와는 다른 브르타뉴어가 사용될 정도로 고유한 풍토가 두르러진 이곳이 엘렌이 살던 곳이다.  몰락한 귀족의 가문의 자녀로 나오는데, 책을 통해서 다가온 어린 시절의 엘렌의 이미지는 백지였다.  이 어린 소녀에게 엄마는 왜 독초인 '천둥꽃'이라는 애칭을 지어준건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애칭과 함께 '앙쿠'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팔려가 듯 요리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처음엔 어린 소녀의 험난한 생활을 이야기하려나 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처음 맛보인 음식을 시작으로 그녀가 거쳐간 곳에선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의심을 했을텐데, 예쁜 소녀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 시대의 열악한 환경은 그저 전염병이라고 생각을 해버린다.

 

  어릴 적 브르타뉴 벌판의 선돌 아래서 신비한 기운을 받아 브르타뉴 전설 속 죽음의 신 ‘앙쿠’의 현신이 되어버린 ‘천둥꽃’ 엘렌. 흰 피부와 눈부신 금발이라는 타고난 미모로 수컷들을 음탕하고도 요사스럽게 홀려내어 비정하게 살해하는 그녀, 천둥꽃. 탐욕스러운 군인들 뿐 아니라 성직자, 일가족, 순수한 선의를 베푸는 선량한 시민들까지 그녀의 살인은 이유가 없다.  흔적은 없지만 백발백중 목숨을 앗아가는 벨라도나 열매와 비소의 독이 그녀의 무기로 변하면서, 그저 친절하고 솜씨좋은 요리사로 위장하며 엘렌은 무차별적인 살인을 계속해간다.  정신과 의사라면 그녀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서 만난 엘렌은 왜 계속해서 살인을 하고, 떠돌이 생활을 자처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의 신이라는 '앙쿠'의 헌신이라는 착각에 빠졌을까?  자신의 요리가 타인의 생과 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보면서 희열을 느꼈을까?  알수는 없다.  그 어린 소녀가 엄마를 죽게 한 순간부터 죄의식이라는 기본적인 양심은 악마에게 넘겨버렸는지도 모른다.

 

  의심하는 이가 나타나고, 그로인해 엘렌이 법정에 서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흐른다.  플루이네크를 시작으로 뷔브리, 세글리앵, 트레다르제크, 궤른, 뷔브리, 로크미네, 오레, 퐁티비, 엔봉, 로리앙, 플뢰뫼르, 포르루이, 플루이네크, 반, 렌 그리고 또 다시 플루이네크까지 그녀가 거쳐것은 '죽음의 일꾼'인 '앙쿠'의 수레가 움직인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어린소녀를 나이들고 무서운 괴물처럼 변하게 한다.  외모뿐 아니라 살인에 대한 충동은 아이들 만화의 몬스터의 진화처럼 진화를 거듭한다.  그녀가 잡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법정에서 그녀의 삶이 오래 남지 않았다고 했으니 더 많은 살인은 멈춰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녀가 그랬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앙쿠의 헌신'을 엘렌의 어머니으 입을 통해서 초반부터 들려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앙쿠는 왜 사람들을 죽게 하나요?” “왜냐고……? ‘끼익, 끼익’거리면서 앙쿠의 수레가 구르는 데엔 이유가 필요 없단다. 그는 사람이 사는 곳을 그냥 지나쳐 가거나, 불쑥 들이닥치지. 누구와도 티격태격하지 않아. 낫으로 후딱 쓸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그게 바로 ‘죽음의 일꾼’인 그의 천직이지.”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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