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날은 없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61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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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아이 학교에 이옥수 작가 강연회가 있단다. 이름만 들어보고 그녀의 책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딸 아이에게 책 대여를 부탁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몇장만 읽어야지 하고 책을 펼쳤다가 다 읽어버렸다. 토요일 밤엔 보통은 책을 읽지 않는데, 읽고는 주일 아침부터 비몽사몽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야기가 너무나 맛있어서 술술 넘겨지고는 그 속에 빠져 버린다.  게다가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  가슴 앵하게 아파오지만, 다독여주고 치유해주는 손길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청소년 소설의 이름으로 된 이야기들 중에 상당수가 열린 결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열린 결말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수도 저렇게 만들 수도 있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수 있어 좋지만, 여전히 난 행복한 결말이 좋다.  아이들 책과 청소년 책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청소년 도서로 된 책들은 행복한 책이 좋다.

 

 

 

"녀석이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키우던 강아지 찡코를 죽인 녀석의 이름은 강민이다.  분명 찡코녀석이 '죽여봐, 죽여봐'하면서 놀린 기분이 들어 죽였지만, 찡코가 없는 세상은 강민에게는 너무나 낯선 세상이다. 아토피로 박박 긁어야 할때도 자신을 위로해 줄 이가 하나도 없다.  외삼촌 집에서 기거하며 정보 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는 미나 씨는 거식증 증세가 있는 강민의 옆집사람이다.  그저 스치듯 알았을 뿐인데,미나씨는 심리치료를 받던 중 우연히 정신과 진료실에서 찡코의 사진을 보게 되고 사진속의 강아지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스캔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강이지를 학대하는 그녀석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 그 앨 사랑해' (p.62)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도 있다고 하니 찡코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궁금했던 미나씨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다가 본인도 잊고 있었던 어릴 적 일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억이 이렇게 지우고 싶다고 지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기억이 얼마나 또렷하게 떠오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긴하다. 내 경우는 워낙에 단기 기억을 못하니 예전 기억을 떠오르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다.  미나씨는 강아지 사진 한장으로 자신의 어린시절 그녀 역시 강민처럼 사랑하던 강아지를 죽였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강아지를 죽인건 미나씨인데 어째서 강아지를 죽인것과 함께 어린시절 겪었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지 미나씨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오빠가 밉고 엄마가 미울 뿐이었다.  그저 장난였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물고 물리면서 근수를 때리고 또다시 근수에게 맞아서 입원을 한 강민도 미나씨와 다르지 않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강민이 본것은 형과 아빠의 싸움. 아빠에게 맞은 후 강민에게 돌아오는 형의 폭력. 강민과 미나씨는 가슴속에 응어리를 품고있고 폭력에 주눅든 여린 영혼일 뿐 이었다.  

 

  이옥수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녀에 대한 소개글들을 읽다보니 이옥수 작가는 도시 빈민촌, 탄광촌, 산업 현장과 같이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10대의 삶을 농익게 풀어놓기도 하고, 때로는 미혼모나 입시 문제 등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로 10대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현실감 있게 그려내 우리 청소년 문학의 근육을 탄탄히 키워 온 작가라고 되어있다. 『개 같은 날은 없다』는 형제남매 간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가족 내에 잠재된 눈물. 아이들의 싸움은 그저 싸움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강민과 미나처럼 가슴 깊숙하게 그 응어리가 남아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대문 밖을 넘지 못하고 숨겨진 이야기. 서로의 마음이 퍼렇게 멍들어 가고, 우리 가정, 사회는 한 집안의 일이겠거니 넘겨버리거나, 또는 부모의 자존심과 관련된 일이라 세상에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싸웠나요? 아니, 누나, 누구한테 맞았죠? 누가 누나를 괴롭혔어요?"..."씨이, 우리 찡코도 그렇게 죽었어요...씨, 아버지하고 형이 싸우는데 녀석이 나한테 달려들었어요. 내가 형하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데... 녀석이 못 나가게 할퀴었어요. 죽여 봐, 하면서.." (p.258~259)

 

  강민과 미나는 용감하게도 정신과를 찾고 비폭력대화를 시도한다.  용감하다는 표현을 쓰는이유는 알고 있으면서도 어렵기 때문이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러 다니는 친구가 있다. 강민의 가족들이 찾은 '비폭력대화'를 보면서 이렇게 변해가는구나, 아니, 맘속에 상처는 누구나 가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자신만의 상처라고 생각을 했기에 자신만이 피해자였는데, 동생이 아닌 형이 되는 순간 어느 누구도 가해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 주는 것. 내면에 꽁꽁 숨겨둔 아픔을 알아주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녹아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꼈던 이들에게 멈추지 말라고, 치유받고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것은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문 두드리고 두드려서 열게 하고 서로 안아줘야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또 다른 나의 분신에겐 평화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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