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세계문학의 숲 29
제임스 조이스 지음, 장경렬 옮김 / 시공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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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조이스 였기에 두근거렸던 것 같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때문이 아니라, 스무살에 만났었던 제임스 조이스의 마법같은 언어가 내겐 너무나 부드럽게 다가왔었다.  <더블린 사람들>속 한 장면이었던 것만 기억이 나고, 그 속에 나온 아줌마를 지칭하는 피스메이커만 기억이 나는데도, 한학기 동안 만났던 제임즈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그저 좋았었다.  어떻게 그 책을 읽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좋은 점수를 받아서 그 느낌이 좋았을 수도 있고, 여러번 읽을 수 밖에 없어서 처음보다 여러 차례 읽다보니 좋다는 느낌만 남아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마주하고 있을때에 느낌은 설레임이었다.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되는 설레임.  그의 자전적 소설을 만나는 설레임.

 

젠장, 너무 잘 썼군....  에즈라 파운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단다. 강하지 않는가? '젠장, 너무 잘 썼군..'.  부드럽게 다가왔던 제임스 조이스를 기대하면서 읽은 내겐 왜 이렇게 어렵게 다가오는지.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는 글들은 에즈라 파운드처럼 정말 잘 썼다는 느낌은 드는데, 너무 어렵다.  생각해 보니 장경렬 교수는 이 책이 <데미안>과 버금간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어린시절 <데미안>은 읽었어도,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읽어보지 못했기에 지금 이렇게 어려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이스를 20세기 최고의 혁신적 재능을 가진 작가로 확립시켜준 작품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란다.  그의 글들이 이렇게 어려웠던가?  5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거의 일주일째 잡고 있었다. 끊임없이 조이스에 대한 설레임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세뇌하다 시피 하면서 겨우 읽어내려갔다.  어느새, 나의 독서 습관이 자극적이고 강렬한것만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책한권을 이렇게 힘들게 읽다니,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어린 아이에서 청년까지 스티븐 디덜러스에 모든 이야기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담고 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부모님 덕분에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하고, 당연하다시피 예수회에서 설립한 클롱고우스 우드 칼리지에 다니면서 끊임없이 죄와 죄 사함에 대해 고뇌를 하지만, 그리 오래 다니지는 못한다.  아버지인 디덜러스씨가 1장에서는 교리에 문제등을 가지고 언쟁을 높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중산층'이던 집안이 몰락하게 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공부도 꽤나 잘하고 누구에게도 부당함을 이야기 할 정도로 당당한 스티븐 역시 경제적 몰락은 모든 면에 많은 영향으 끼치게 된다.  지금으로 이야기한다면 우울증 정도로 이야기 할것같은데, 스티븐은 자신의 삶이 초라해 지는것을 느끼면서 사색과 공상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린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스티븐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면서 낯선 곳에 들어서게 된다.  어린시절에 형성된 종교관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더 이상 경건하게 기도를 드릴수 없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면서 정신적으로도 무너져 가기 시작한다.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원죄에 대한 두려움은 망설임끝에 고해성서로 풀어지고, 스티븐은 죄를 고백하고, 신의 대리인에게서 용서를 받는다.  이제 모든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고 스티븐은 다시 태어난다. 종교적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면서 기도와 신앙생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사제의 제의까지 받을 정도로 변하지만, 제의를 거절하고 대학으로 가게된다.  대학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길 원하지만, 대학은 그에게 그런 힘을 주지 못하기에, 스티븐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떠나길 원한다.

 

 모던 라이브러리 선정 최고의 영문 소설 3위,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고전 100선,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청소년건장도서 50선, 미국대학위원회 선전 SAT 추천도서에 빛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책을 덮고 이 화려한 이력을 보면서 생각난건, 그래 어렸을때 읽어봐라다.  어렸을때 이 책을 읽으면 공부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토록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제임스 조이스의 글을 이렇게 힘들게 읽어 내려갈 줄 몰랐다.  내가 제임스 조이스를 좋아하긴 했던 걸까?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장결렬 교수의 주석까지 읽다보면, 맥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건 아닐까?  오랜만에 참 힘들게 책을 끝냈다.  '의식의 흐름기법'을 배웠던 기억이 나는 분들이라면, 그래서 그 심오함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강력 추천한다.  여유를 갖고 읽어 나가시길...  머리에 쥐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되실 것이다.

 

 "친구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는 사람, 한 인간이 일찍이 소유했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진정한 친구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는 사람을 포기할는 걸 뜻하기도 해" (p.469 / 이게 뭔말이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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