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이야기 - 당신은 아는가? 자유를 얻기 위하여 치른 희생을, 그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찰스 커핀 지음, 오소희 옮김 / 리빙북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날 몇일을 넘어가지 않던 책을 끝내고, 편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작년에 중국에서 선교를 하시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불법인 곳에서 그분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길은 그저 이불을 둘러쓰고 입을 뻥긋거리거나, 사람들이 없는 외딴곳에서 언제 잡혀갈지 모를 두려움속에서 성경을 읽고 또 읽어 머리속에 집어넣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절박함에 성경을 통으로 외우게 된다는 말씀을 듣고, 지금 나는 어떤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소리내어 성경을 읽을수도 기도문을 외울수도 있고, 성경을 필사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 시대에 나는 살고 있다.

 

 

 책을 펼치자 마자 나오는 말이 '이 책 "자유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이다. 5백 년에 걸쳐 인류가 속박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고귀한 진보의 과정을 보여준다.'(p.6)이다.  영국의 존왕(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사자왕 리처드의 동생이다)이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을 한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펼치지고 있다.  찰스 커핀이 이야기하는 사실들은 책을 읽는 순간 순간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이다.  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이야기들이 챨스 커핀의 유머와 재치, 예리한 관찰력과 거침없는 비판이 어우러져, 일반 역사책에서 들어보기 어려운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중세의 몰락에서 근대화의 시발점에 이르는 5백년 간의 사건들이 숨가쁘게 전개되는 이 책은 제국의 전쟁이나 왕의 영웅담이 아니라, 자유를 수호하는 이름없는 사람들, 그들이 자유를 위하여 치른 값진 희생을 얘기해준다.

 

 끊임없이 자유를 이야기한다.  자유는 완전히 소멸될 듯한 위기를 끝없이 직면하지만, 진리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 용감한 사람들에 의하여 그 명맥을 보존한다. 그런 사람들은 언어와 지역을 초월하여 이 세상 곳곳에 있었다. 그들은 진리를 발견했고, 그 진리를 전 인류에게 비추기 위하여 모든 장벽을 넘으며 희생과 죽음까지도 받아들였던 사람들이다. 흔치 않았던 소수의 정의로운 통치자들은 그들보다 더 강력한 독재권력에 항거하여 백성의 권리를 수호했으며, 이기적인 탐욕이 동기가 되었던 권세자들 조차 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인류의 자유의 진보에 공헌하였고, 부패한 제도에 항거하는 지혜자들은 칼보다 더 강한 펜으로 농부와 아이들이 책을 읽고 생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단념하지 않으려던 사람들은 기꺼이 고문실과 화형대로 끌려갔다.

 

 찰스커핀은 이야기한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들은 당장은 실패한 듯 보여도 그 실패가 결국은 승리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황제, 왕, 추기경, 사제, 교황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였지만 마지막에는 그들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이다.  그들은 황금사과를 땄으나 그것은 소돔의 열매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다.  찰스커핀의 <자유이야기>는 끔찍하리만치 책을 읽는 도중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불의가 판을 치는 상황 때문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알기라도 하듯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에게 가장 귀한 것은 인내 뒤에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하여 치른 희생이 무엇인지, 그 자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깨닫게 될것이라고 말이다.

 

 영국왕 존이 살기위에 마그나 카르타에 싸인을 한뒤, 이단이라 불리우던 위클리프의 뼈를 불사라 바다에 뿌린 후, 100년이 흐른 후 아침밥을 얻어먹기 위해 노래를 부르던 마틴루터를 통해서 위클리프의 가르침이 어떻게 전해지고, 진리와 자유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것인지 누구도 몰랐을것이다.  이단이 무엇일까?  만일 어떤이가 교황, 교회, 성마리아를 모독하거나, 혹은 성경을 읽었거나, 사제에게 고해성사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단이다.  그는 사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사제가 저속한 욕설을 했다면 약간의 벌금만 물리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게 교회는 감추려 할것이다.  이뿐인가? 이단은 만들기도 쉽다.  돈많은 과부는 이단이 될 가능성이 90% 이상이 될 것이고, 왕이 차지하고 싶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이단이 될 가능성은 상당하다.  그저 교황이 이단이라고 명명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신이 그것을 원한다'는 교황의 한마디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이단의 처형이었다.  이단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단과의 싸움에서 죽는것은 순교에 속하였기에 그들은 목숨을 바쳤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유럽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왕과 교황에 말 한마디로 이단이 되기도 했지만, 지식이 있는 이들 역시 이단이 되었다.  그들은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성경을 통해서 교황과 사제들이 얼마나 저속한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면죄부로 죄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죄를 사할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주고 궁핍한 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면죄부를 사는 자보다 더 선을 행하는 것이다"(p.203)라는 루터에 진실에 말로 인하여 교회에 재정이 줄어들 위험에 처해졌으니까 말이다. 

 

 교황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이 땅에서 신의 대리자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교황이 지옥에 떨어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풍자의 그림을 그리면서 순식간에 인간의 지성을 구속하고 있던 족쇄를 깨뜨리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자유다.  마틴 루터의 루터 성경이 쓰여지고, 인쇄술이 발달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산채로 불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로 부터 자유는 시작되었다. 1215년 영국 존왕을 시작으로 찰스 커핀은 1621년 메이플라워호에 104명에 청교도들이 자유에 땅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자유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있다.  끊임없이 사건들은 이어지고, 나비에 날개짓 마냥 하나에 행동이 거기서 그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클래식한 글처럼 중간 중간에 나온 삽화들도 클래식하다. 삽화와 함께 책을 읽는 재미가 상당했다. <자유이야기>. 이 글은 종교에 자유에 대한 글이다. 자신들의 종교, 교황만이 신에 대리인이 아닌 자신들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들에 이야기들이다.  찰스 커핀은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그또한 유럽인이다. 원주민을 묘사하는 장면은 유럽인들 편에서 미개인을 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상당히 많다.  그럼에도 찰스 커핀은 가능한 중립적이고자 했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희생을 통해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이다.  그것은 종교에 자유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자유에 한정되어 진것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이념을 위해서 불기둥에서도 '자유'를 외쳤던 이들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글을 읽고 사유해야만한다.  우리는 그들이 지켜낸 것을 진실된 '자유'로 여기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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