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공부 - 치매 어머니와 시장터에서 느리게 살기
이동현 지음 / 필로소픽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외할머니는 그 많은 자식들을 두고 막내딸네 집으로 오셨다.  친가의 조부모님이 안계셨기에 문제 될것도 없었지만, 살아생전 시부모님께 하셨던 어머니의 극진함에 아버지는 당연히 외할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생각을 하셨단다.  일흔이 갓 넘어 오신 외 할머니는 그렇게 십수년을 막내딸과 함께 지내셨다. 여든여덟에 할머니가 소천하시기 몇달전에 치매가 찾아온것을 알았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큰 아이를 가졌을 그 무렵 할머니는 매일 가스를 켜고, 껍질째 은행을 드시고, 사발가득 커피를 타서 드셨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문고리에 열쇠를 거는 거였다.  그날 내가 본 열쇠를 달면서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일주일 후, 할머니는 소천 하셨다.  그날...그날... 열쇠를 달기위해 문에 경첩을 다셨던 아버지는 그 일을 두고 두고 후회하신다.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머니 공부』는 그런 책이다.  아이들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어머니를 오로지 어머니로 보기 위해 하는 공부가 어머니 공부다.  치매가 찾아온 어머니를 알기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하고 그것을 '어머니 공부'라 명명하고 있는 작가. 그와 그의 사랑하는 연인, 어머니의 이야기. 『어머니 공부』. “어머니가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생전 처음 잊어버렸다.”(p.82) 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극진하게 봉양하시던 어머니가 아들의 생일을 잊어버리시면서 평생 해오던 빨래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밥 짓는 법도 잊어버리고, 어머니가 화장실을 넘어가지 못하고 마당에 똥을 흘리셨단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치매가 찾아왔단다. 이제 아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결혼도 하지 않고 중년이 되어버린 아들은 어머니가 할머니를 봉양한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어머니 노후를 돌봐야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떤 사물도 아닌 말벗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2008년 11월부터 어머니와 매일 출퇴근하고 늘 함께 이동했으니까 치매 노인의 순 이동거리만도 7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  어머니의 이 일상적인 7만 킬로미터 주행거리를 나는 ‘간병’으로 간주한다. 이 주행거리가 10만 킬로미터를 넘어 20만 킬로미터가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p.96)  24시간 어머니의 전속 기사가되었다. 아들은 이야기 한다. '살아오면서 그나마 제일 잘한 일이 늦게 배운 운전이다.'(p.197) 라고 말이다.  처음 어머니의 대리 운전 기사 일을 시작할때만 해도 아들은 이렇게 오래 가리라 생각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하면 그 애틋함도 는다고 했던가.  이제 아들은 7만 킬로를 넘은 이동거리보다 더 먼 이동거리를 기원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정신적인 시간뿐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으로도 길어지길 바라고 있다.  아들의 말처럼 치매 환자에게 치매 판정은 무의미한 동어반복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인간극장 '고마워요 엄마'편 캡쳐

 

 개인사업을 하는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출근을 한다. 어머니와 함께 출근을 한 사무실은 딱 어머니의 놀이터다.  만원짜리 지폐 헤아리기를 하시고, 퍼즐을 맞추시고, 변을 보시면 그걸 닦아드리는 놀이터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또 다시 어머니의 일과가 끝나면 아들은 어머니와 함꼐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의 일과로 어머니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일과에 맞춰서 아들이 움직이고 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이러이러한 것이 옳은 것이예요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에 맞게 아들은 움직이고 있다.  아들은 이야기한다.  한방과 양방을 병행해서 치매 증세는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일반 노인 수준에서 평안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와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간병하기에 따라 치매 환자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따라한다.  '무한 책임자식'이었다는 어머니의 행동을 보고, 아들은 어미니 처럼 행동을 한다. “효는 자기계발로 독학으로 깨치는 것이라기보다 선대의 계보를 이어받는 것이다.”(p.21)

 

 16년간 하숙생들의 속옷에 이름을 새기면 빨래를 하셨다는 어머니.  아픈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를 20년간 번갈아 모셨던 어머니. 남편의 환갑날 풍으로 쓰러지셨음에도 끝끝내 일어나셨던 어머니. 혹시 자신이 아프면 요양원에 보내라며 아들에게 통장을 넘기던 어머니. 해정씨.  아들에게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를 넘어서 연인이 되어있었다. <어머니 공부>의 연인이 TV 화면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 인간극장 <고마워요, 엄마>를 통해서 동현씨와 해정씨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두 연인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 버린다.  부모자식간의 사랑만큼 뜨겁고 변치않는 것이 있을까?  자식을 위해 모든것을 다 태어버리는 엄마. 그 엄마를 위해 자식은 자신을 태우고 있다.  당연하다 할지 모르지만, 읽는 이들은 알고 있다. 이것이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벌써 오래전에 끝나 버렸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에게 매일 전화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인 지금, 늙은 노모와 함께 천천히 걷기를 하고 있는 이동현 작가는 그래서 고개 숙이게 만든다.   작가는 어머니가 끊임없이 자기성찰의 동기를 제공하는 원천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걸 아는 것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건?  늙어가는 노모께 전화 한통 해야겠다. 건강하심에 감사드린다고.. 엄마의 딸로 태어나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