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개정판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오늘 나는 몇잔의 커피를 마셨던가?  낮에 한잔을 마시고, 저녁 식사후에 남편과 한잔을 더 마셨다.  커피를 하루 한잔도 마시지 않았던 때도 많았었는데, 요즘은 두잔은 마시는 듯 하다.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커피도 마시지만, 보통은 믹스 커피를 마신다. 브리오니가 봤다면 상종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커피는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기호식품은 아니었다.  학부시절, 다량으로 마신 커피덕분에 심장의 떨림을 운명의 순간이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고, 그 커피의 영향으로 남편을 만난후로는 커피는 자제하는 편이었다.  언제 또 카페인의 영향으로 사랑에 빠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커피 향기-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를 읽던 사나흘간은 너무 많은 커피를 마셨다.  그래도 다행이라 해야할까?  또 다른 운명은 만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크레마의 기름기가 혀의 맛 봉오리를 자극해 입 안에 향이 아른거리게 했다.  커피가 한방울 한 방울 그의 혀로 흘러들자 더 마시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그래서 한 모금을 마셨다.  그 한 모금의 커피가 위를 따뜻하게 대우고 잘 달래서 힘을 내게 하는 게 느껴졌다.' p.21

 

 독자평중에 읽기 전에 반드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 평을 읽었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딱맞는 평이었다.  이 기이한 음모를 제외하더라도 브리오니가 이야기하는 커피는 마시지 않고도 금단현상을 일으키니 말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커피는 책을 통해서 향을 느끼고, 그 향에 빠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웃기지 않는가?  그렇다고 브리오니가 말하는 최고급의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면서, 책을 읽으면서 회사를 가는 날엔 아침부터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는 블랙커피를 들게 된다.  정말 싫어하는데도, 그 향도 한번 맡아보게 되고 책의 힘이, 브리오니의 커피 강연의 힘이 대단하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토요일, 대도시의 유명 커피숍에서 몇백 명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쓰러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커피를 숭배하는 광적인 커피로스터 브리오니는 누군가 세상에서 커피를 없애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배후세력을 찾아나선다.  그와 함께 수습기자인 아가테는 브리오니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에 곁에 있다가, 브리오니가  범인으로 의심받게 되면서 배후세력을 쫒기 시작한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브리오니는 커피협회와 요상한 논문을 쓴 교수들을 찾아내고, 중심인물로 크리스티네 사보이를 떠올리게 된다.  커피협회로 찾아간 순간부터 브리오니는 빨간 머리 남자로부터 미행을 당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정신없이 빨라져간다.

 

 부인과 이혼후 아들, 야콥과 사는 브리오니.  중국 출장길에 갔다가 상사 모리스의 병간호를 하다 사랑에 빠져버린 아가테.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중심에는 언제나 커피가 함께 하고 있다.  "커피를 손수 볶는 사람은 세 가지 선물을 받는 셈입니다.  볶을 때의 향기와 갈 때의 향기, 그리고 마실 때의 풍미, 이렇게 말입니다"(p.56). 브리오니는 도망 중에도 끊임없이 아가테에게 커피 이야기를 하고 아가테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면서 그의 말을 듣는다.   그런데, 왜 그의 말을 들을까?  "독일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커피 원두를 많이 수입하는 나랍니다. 커피를 빼앗는 것은 석유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정신의 연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지는 셈이니까요."(p.141)  광적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이 남자의 말에 아가테도 넘어간 것일까?

 

 이야기는 참 뜬금 없이 끝나버린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인 양 끝나버린 이야기는 브리오니와 아가테의 사랑으로 모든것은 축복이니라를 외치는 것 같지만, 브리오니가 말하는 '커피 음모론'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워낙에 음모가 많은 세상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음모론. 카페인 가득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혁명도 없다와 비슷하지만, 어쩌면 그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진 못한다면?  커피가 없는 세상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라는 가설하에 게르하르트 J.레겔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고, 그 중심에 커피에 대해선 모든것을 알고 있는 듯한 브리오니가 있다.

 

 커피에 대한 역사와 착한커피에 이르기까지 커피에 대한 모든것이 들어있다.  그리 커피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커피 한잔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은, 커피 속에 들어있는 카페인 때문인지, 브리오니의 쌉싸름한 말솜씨 때문인진 헛갈리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이 책을 읽기를 원한다면,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읽기 바란다.  읽으면서도 또 마시고 싶은 생각이 나겠지만 말이다.  책읽는 몇일동안 커피 몇잔 더 마신다고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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