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대 2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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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라도 좋다! 강도라도 좋다! 나, 나는 그를 만나야 해!' p.299 

 

 아프면 아플수록 그것에서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접근해 가는 그녀. 눈물이 흐르면 고개를 숙이기 보다 얼굴을 쳐들어 웃고, 무서운 일이 있으면 도망치기보다 뒤돌아서서 가슴으로 바로 받아내는 그녀.  누가 베풀어주면 감사보다 더 크게 요구하는 그녀. 하인애가 외치고 있다.  그를 만나야 한다고 피를 토하듯 외치고 있다.   이 당당하고 안아무인인것 같은 그녀가 어떻게 할줄을 몰라 하고 있다.

 

 1964년부터 65년까지 부산일보에 연재되었던 <녹지대>가 근 5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박경리 선생이 작고하신지 4년이 흘러 출간되었다.  같은 시기에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파시>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빛을 보듯 나타난 <녹지대>는 지금 시대에서 조차도 파격을 이야기한다.  말할듯 말듯 1권에서 뜸을 들이던 이야기들이 폭포처럼 2권에서는 쏟아내지고 있다.  하인애를 중심으로 숙배, 은자.  그리고 그녀들의 연인인 김정현, 민상건, 한철이라는 인물들의 관계가 묘하게 엮여져 있다.

 

 숙배가 목놓고 바라보는 민상건과 김정현의 관계.  서로의 만남을 웃음이 아닌 정색으로만 바라보는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김정현만이 아니라, 인애가 악마라 느끼는 수예점 주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이 소설보다 어처구니 없을때도 많지만, 작가는 이들의 관계를 철저한 불륜으로 묶어 놓았다.   불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났다는 사전전 의미를 논외로 하고라도, 이들의 관계는 철저하게 비상식적이다.

 

 부인이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사랑만이 순결하다고 믿는 숙배, 사랑하기에 지켜준다면서 그녀외에 여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동침을 하는 민상건.  빼앗길것이 두려워 침범해 버리는 한철,  자신의 출생, 양공주였던 어머니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어하는 은자, 남편이 있음에도 친척동생을 가두는 민상건의 아내, 인애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벗어날수 없는 김정현.  그리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섬에서 그를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버린 하인애.  이들뿐인가?  하흥수, 한박사, 최경순여사까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일반인들은 상상을 할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이 애잔하다.

 

 출판사의 말처럼, <녹지대>는 젊은 박경리를 만나게 해주고 있다. 60년대를 살아 본적이 없음에도 그 시대의 말투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느낄수 있게 해주고, 박경리 작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투와, 단어들.   눈님이 오시는 거리를 까만 비구두를 신고 걸어가는 숙배에게서, 비를 맞으며 사랑을 찾아 미칠듯 달리는 인애를 보면서, 낯선 박경리 작가를 만나게 해준다. 은연중 할머니나 어머니가 이야기를 하듯 하던 작가의 말이 아니라, 그 시절 당돌한 스무살 섬머스마같은 아가씨가 하는 말들을 만나는 것 같다.

 

 <녹지대>2권은 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슬금슬금 녹지대가 무대로 나타난다.  하지만, 1권처럼 많은 배경을 할애하지는 않고 있다.  녹지대 속 동인지 그룹, 녹지대는 변화를 맞고 있다.  세상으로 나가고 있는 안경잡이의 말처럼 말이다.  

 

세대교체야.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말이지만, 벌써 녹지대에 나타나는 얼굴들이 달라지는걸.  그리고 이제 시니 예술이니 하는 따위의 설익은 대화도 가셔지고 합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비용이 덜 드는 미팅을 즐길 뿐이야. ... 허수아비 같은 눈을 하고서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친구는 이제 하나도 없더군.  p.242

 

 녹지대 속 세명의 연인들이 변화를 맞이하듯이 동인지, 녹지대도 변화를 맞고 있다.  <녹지대>1권에서 인애만이 진짜 비트족이라고 했었던 이가 있었다.  어떤것이 진짜 비트일까?  그 비트족이 사랑에 휘청거리고 사랑으로 절망 하고 있다.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사랑에 온 거리를 헤메고 있다.  그리고 떠나버린 사랑에 통곡하고 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시를 논하던, 사랑을 논하던 녹지대가 변하고 있다.  전쟁고아인 하인애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음에도 전후 사정보다는

사랑의 서사시를 풀어놓은, <녹지대>.   그곳에서 젊은 작가, 박경리와 사랑에 몸부림치는 하인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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