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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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p. 46

 

 김인숙 작가의 글이다.  <소현>을 읽으면서 역사소설을 이렇게도 풀어내는구나 싶었는데, 김인숙 작가의 역사소설과는 너무나 다른 글을 만났다. 같은 작가의 글이 맞나 싶을 정도의 글.  이 추운 겨울에 미칠것 같이 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힐러가 진에게 이야기를 한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지우게 될것이라고.  그리고, 이렇게 진의 기억속으로 들어가본다. 김인숙 작가가 만들어 낸 진의 기억속으로.

 

 그들은 이름이 같았다.  진과 진.  이름이 같은 것만으로도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운명인 듯 했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때는 말이다. 그들의 사랑이 끝이 나지 않을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 였을까?  섬을 여행하고 섬으로 간 유진.  여전히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진.  그녀의 기억은 7년전으로 되돌아간다.  아니, 그녀의 기억만이 7년전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섬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이야나,  이야나의 친구 만, 만의 알수 없는 양어머니, 이야나의 사랑이었던 수니 그리고 유진의 집의 서번트와 서번트를 사랑했던 춤을 추던 남자 아이.  어떤것이 진실인지 알수가 없다.   분명 7년전 유진의 집의 서번트는 임신한 몸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속에 진이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사라졌다.  살인자는 서번트를 사랑했던 아이.  정신지체 장애가 있던 아이. 그렇게 묻어버리는듯 했다.  진도 진 주변에 사람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묻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야나도 알고 있었다.  그냥 드라이버였을 뿐인데, 그가 진에게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을 지우려는 듯이 지진이 인다.

 

 사람은 다 똑같다.  진도 유진도. 이야나도 만도. 그들은 살아야만 했다.  어떤 현실이 닥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살아야만 했다.  사랑이 떠나가면 미칠 것 같았는데, 그냥 미칠 수 있지 않았다.  미쳐야지만, 살수가 있었다.  그래서 7년을 유진을 찾아서 헤멜수 밖에 없었다.  그를 꼭 만나려고 했던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치지 않는, 유일한 길을 찾은것 뿐이었다.  미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냥 살수가 없었으니까.  사랑... 얼마나 오래도록 사랑이 남을수 있을까?  케로피속에 있는 알몸에 임신한 써번트를 보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의 의지 없는 삶을 그냥 바라만 보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삶은 언제나 외롭다.  그리고 힘이든다.  진만 미칠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랑이라 이야기하면서 떠나는 수니를 보는 이야나역시 그렇다.  오직 하나, 양어머니의 자연사만을 바라는 만 또한 미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뒤덮는다.  지진. 땅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건물들. 살기위해서는 미쳐야 한다.  그냥 살기위해서는 미쳐야 한다.  그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찰튼 헤스턴은 혹성에 갇힌 것이 아니라 시간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가 탈출하여 돌아가야 할 곳은 그의 현재가 머물고 있는 과거였다. 현재가 머물고 있는 미래로부터 탈출하여 현재가 머물고 있을 과거로 돌아가야 하는 찰튼 헤스턴... p.190 

 

 폐허속에 파묻혀있던 자유의 여신상을 봤을때의 허탈감.  그리고 멀어져 가는 찰튼 헤스턴의 실루엣.   시간에 갇혀버린 찰튼 헤스턴처럼 진도 이야나도 시간에 갇혀버렸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야 하니까.  살기 위해서, 시간속에 갇혀서라도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삶은 그렇다.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진의 삶도 이야나와 만의 삶도, 그리고 내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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