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문학동네 동시집 18
정연철 지음, 이우창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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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이시를 처음 접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작가이름도 몰랐고, 그냥 가슴 멍한 시 한 구절이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언제 읽었는지도 모르면서, 누군가 시를 이야기하면 요즘들어 떠오르는 시가 이 시였다. 


-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

하루종일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손수레에 폐지 담는 할머니

내가 감기 몸살로 결석하자

일도 안 나가고

물수건으로 얼굴 닦아 주고

죽 먹여 주고

약 먹여 주고

이불까지 덮어 주고는

곁에서 걸레로

조용히 방을 닦는다

할머니 나 먹여 살리려면

일 나가야 하는데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

 

 이 짧은 시 한편에 눈물 콧물 다 빼고는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내게는 이런 기억이 없다.  손수레에 폐지 담는 할머니도 안계시고, 나 먹여살리려고 일하려는 할머니도 안계신다.  너무나 평온하고 다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딱 보통으로 결혼을 해서 알콩달콩한 아그들 낳아, 잘 살고 있는 내가, 왜 이 시 한편으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가슴 먹먹한것은 내가 아닌 내 주변에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답은 없다.

 

 시인의 마음은 아이의 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어른이 이런 아이의 마음으로 시를 쓸까하고 궁금하지만, 시인은 시를 쓴다.  세살 아이도 되었다가, 여덟살 초등학생도 되었다가,  아이의 눈으로 부모를 바라보기도 하고, 동물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시인이 이야기를 한다.  어린시절 세가지 소원이 있었다고.  투명인간이 되게 해주세요. 슈퍼맨처럼 되게 해 주세요. 꽃이랑 나무랑 동물이랑 이야기 할수 있게 해주세요.  불의를 보면 잘 참는 소심한 성격에 반영이었다고 시인은 이야기하지만, 시인의 세번째 소원은 이루어졌단다.

 

 투명 인간이나 슈퍼맨보다 힘이 센 동시를 짓는 시인. 마법을 부려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 마음에 푸른 물을 들여주는 시인. 시인의 말처럼 동시는 시인과 천생연분인가 보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뭘까?  시인의 시 한편에 마법에 걸린듯이 울다가 웃다가 하고 있으니, 확실히 마법에 걸리긴 한듯 하다.

 

-자동 우산-

 

비 오는 날

엄마랑 단둘이

우산 쓰고

걸어갈 때마다

우산은 내 쪽으로만 기우뚜

엄마 한쪽 어깨

한쪽 팔뚝

한쪽 다리

비 흠뻑 맞아도

우산은 모르는 척

자동으로

기우뚱



-울고 웃고-

 

외할머니 집에만 가면

엄마는 잔소리꾼 선생님으로 돌변해요

가장 먼저 방바닥 검사

- 방이 왜 이렇게 차?

그다음 보일러 검사

-보일러 기름이 그대로네?

그다음 화장실 검사

-으, 냄새. 창문 좀 열라고 몇 번을 말해!

그다음 냉장고 검사

-세상에 유통기한 지난 지가 언젠데!

어머, 이건 곰팡이까지 피었잖아!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한마디

-내가 못살아, 정말!

외할머니가 쩔쩔매도 아무 소용 없어요

근데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엄마는 외할머니를 꼭 끌어안고

 

용돈 봉투를 쓱 내밀어요

그럼 됐다고 되돌려 주는 외할머니하고

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지요

 

엄마는 울고 외할머니도 울고

아빠는 웃고 나도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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